메뉴 건너뛰기

close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각 정당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각 정당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지난 4월 11일 오후 5시,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연설이 국회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이 화상연설을 진행하는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 국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미 세계 각국 의회와 국제기관 등에서 이루어진 화상연설을 통해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은 많은 화제를 낳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국회에서의 연설이 결정되면서 기대하는 국민도 상당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화상연설이 진행되는 상황을 유튜브 생중계로 지켜보며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국회 본회장이 아닌 국회도서관 대회의실

이번 화상연설 개최 장소부터 문제가 되었다. 과거 미국 트럼프 전대통령이 재임 중 방한했을 당시, 대한민국 국회의 본회의장에서 연설한 바 있다. 이렇듯 외국 정상이 국회에서 연설하는 경우,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현재 전쟁 중으로 대통령이 나라를 비울 수 없는 만큼, 세계 각국에서 화상연설을 개최하고 있다. 화상연설임에도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의회 본회의장에서 이루어져 왔음은 이미 많은 보도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장에서 화상연설을 진행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이광재 외통위원장은 '화상회의를 위한 설비가 설치돼 줌 회의가 가능한 장소가 국회 도서관 대회의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설명에 의아한 점이 있다. 화상 줌 회의는 인터넷만 연결 가능하면 얼마든지 진행할 수 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들이 인터넷 서핑을 하며 딴짓하는 사진은 조금만 검색해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본회의장에는 중앙 연단을 기준으로 양 옆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다. 이 대형 스크린에는 본회의에서 발언자를 화면에 비추기도 하고, PPT 등의 자료화면을 띄우기도 한다. 자료화면을 띄울 수 있다는 것은 당연히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고, 이는 화상회의 설비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상대국 정상의 화상연설을 본회의장이 아닌 국회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진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남는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의식도,
희생당한 민간인에 대한 연민의식도 보여주지 못한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장이 아닌 장소도 문제지만, 그것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이 참석자수였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의석수는 300석이다. 하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대통령 연설에 참석한 정치인은 50여 명이었다. 과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방한 당시 본회의장을 가득채웠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더욱 놀라운 장면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직후 이어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국의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마리우폴의 처참한 모습과 피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 죽고싶지 않다고 울먹이는 아이의 인터뷰 영상을 보여준 후, '슬라바 우크라이나(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을 외치며 연설을 마쳤다. 그런데, 연설을 마치자 마자 연결화면은 꺼졌다. 연설을 들은 국회의원들이 박수를 보내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사의를 표하는 모습은 대한민국 국회 연설에서는 볼 수 없었다. 

한국 측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어려운 상황에 연설에 응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나, 직전에 상영된 마리우폴의 피해 상황에 대한 언급 역시 없었다. 그러한 인사의 말이나 기립박수 등의 표현도 없는 상태로 연결화면이 꺼진 것이다. 이보다 더 한 외교적인 결례가 있을까?

게다가 화면이 꺼진 후, 이광재 외통위원장은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왔다. 자신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연설을 추진한 것에 대한 자축이었을까? 아니면, 상대국이 전쟁 중임에도 연결이 끊기거나 하는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난 것에 대한 안도였을까? 

직전에 마리우폴의 상황을 영상으로 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환한 표정에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마리우폴 영상이 흘러나온 후, 젤렌스키 대통령의 마지막 인사말을 울먹이며 통역하던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의 목소리와, 이광재 의원의 표정은 너무나도 상반되었다.

대한민국 국회는 이번 화상연설을 진행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의식도 보여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처참하게 희생당하고 있는 민간인들에 대한 연민의식 마저도 보여주지 못했다. 

누구를 위한 토론회인가
 
4월11일 1시부터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4월11일 1시부터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 박신영

관련사진보기

   
같은 날, 오후 1시부터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주제만 보면 우크라이나 전문가들이 나와 이야기할 것 같지만, 발표자와 토론자는 대부분 러시아어과 교수나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온 국제관계학과 교수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신대학교의 이해영 교수는 피렌체의 식탁이라는 대안매체에 러시아 프로파간다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주장을 실어 논란이 일었던 인물이다. ([이해영 칼럼] 서방 언론은 허구였다! 러시아 뜻대로 끝나가는 전쟁)

한국에는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우크라이나어 고등교육기관인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가 있다. 그러나 이번 토론회에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나 우크라이나 전문가는 찾아볼 수 없었다. 

토론이라는 것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는 자리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토론을 한다면서 우크라이나 전문가가 자리하지 않았음을 통해 이번 토론회가 제대로된 역할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향후 세계질서 속에서 한국의 설 자리는

한국은 24번 째로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연설을 개최한 나라가 되었다. 24번 째라는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필자는 향후 새롭게 자리잡을 세계질서에 있어서 한국의 위치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무기를 보내주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지금 같은 전쟁상황에서 무기를 많이 보내줄 수 있는 나라가 우선순위에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무기를 보내지 않은 일본만 보더라도 우리보다 3주가량 앞선 3월 23일에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연설을 진행했다. 게다가 회의장을 가득 채워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를 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연설은 현재 우크라이나에 가장 중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들 순서로 진행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것은 다시 말하면 세계가 뭉쳐야 할 때 국제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의 순서이기도 한 것이다. 

러시아는 침공을 시작했고, 그 순간 세계는 이미 갈라졌으며, 우방국들끼리 강하게 뭉치고 있다. 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일으킨 침공전쟁과 다수의 전쟁범죄를 통해, 유엔 무용론과 유엔의 변화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져 가고 있다. 

이번 전쟁은 과거 아프가니스탄이나 시리아 등지의 전쟁과는 다르게 전 세계 수많은 국가들이 함께 대응하고 있는 만큼, 이 전쟁이 끝난 후에는 어떤 식으로든 세계질서가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다가올 새로운 세계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서의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번 우크라이나 대통령 화상 연설에서의 국회의 태도와 대처를 보고 있자면, 다가올 미래에 국제사회에 있어서 한국의 설 자리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태그:#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 #화상연설, #국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학박사. 다문화사회전문가. 다문화사회와 문화교류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