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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10일 오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 인양돼 있는 세월호 선체를 둘러보고 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세월호 8주년을 앞두고 침몰 지점을 찾아 선상 추모식을 열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10일 오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 인양돼 있는 세월호 선체를 둘러보고 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세월호 8주년을 앞두고 침몰 지점을 찾아 선상 추모식을 열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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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목에 차고 다니던 노란 세월호 링이 끊어졌다. 물에 젖지도, 녹슬 리도 없는 고무 재질도 세월 앞에는 장사 없는 모양이다. 작년쯤 누렇게 색이 바래더니 끝내 삭아버린 것이다. 오래전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임시로 기억 교실이 옮겨졌을 때 가서 받은 것이니 얼추 6년 가까이 된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 천신만고 끝에 '4.16 민주시민 교육원'이 정식 개관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가보질 못했다. 비록 여기서 천릿길이긴 해도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한달음에 뛰어갔을 텐데 지금까지도 서운함이 가시지 않는다. 방역지침도 완화되었으니 세월호 링도 챙길 겸 주말에 한 번 다녀올까 싶다.

고무링이 끊어지고서야 새삼 깨닫게 된다. 낼모레면 어느덧 참사가 일어난 지 8주기라는 사실을. 해마다 벚꽃이 지는 이맘때면 교정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추모 음악회를 열었는데, 이젠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코로나로 지난 2년 동안 중단돼서다. 주관했던 학생회 아이들이 모두 졸업한 터라 행사를 재개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 듯하다. 

어김없이 찾아온 4월인데도 예년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낀다. 학급 회의 때 세월호 추모 행사는 거의 자동으로 상정되는 안건이다시피 했는데,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아이들이 여럿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언 8년. 역사책에 기록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가슴으로 기억하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다. 몇 해 전, 참사 이듬해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적어 교정 가로수에 매달았던 수천 개 리본을 철거하면서 기억도 리본과 함께 사라졌다. 이젠 계기 수업을 준비하는 교사도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

추모제 때 무대에 올라 교사와 아이들이 손잡고 함께 불렀던 '천 개의 바람이 되어'의 감동도 바람처럼 흩어졌다. 그 노래를 세월호 추모곡이 아닌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곡 정도로 알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지금 고1이면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으니 딱히 놀랄 일도 아니다. 

안산 화랑유원지 내 정부 합동 분향소가 문을 닫기 전, 학년 전체가 봄 소풍을 그곳으로 간 적도 있다. 분향소를 찾는 건, 또래로서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희생을 기억하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했다. 아이들이 추모의 마음을 담아 접은 노란 종이학을 건넸을 때 유가족과 함께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 

힐난의 목소리마저 들렸다

"선생님, 아직도 세월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나요?"

올해 반 아이 하나가 내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 배지를 보며 이렇게 물었다. 그는 참사 당시의 대통령을 권좌에서 내쫓은 시민들의 촛불 혁명으로 세월호 문제가 해결된 걸로 착각하고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데다 코로나까지 겹쳐 세월호라는 세 글자를 까맣게 잊고 지냈던 거다. 

아이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기성세대로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교사들조차 세월호에 관한 관심이 급속히 식어버린 듯하다. 수업 시간 아이들 앞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며 그토록 비통해하고선, 정작 4월 16일이 '국민 안전의 날'로 지정됐다는 사실조차 낯설어한다. 

두어 달 전쯤 칼바람이 유난히 매서웠던 주말, 가족과 함께 목포 신항에 다녀온 적이 있다. 세월호가 찾는 이 한 명 없는 황량한 겨울 바다 위에서 그 육중한 몸으로 세찬 눈보라를 받아내고 있었다. 검게 녹슨 선체와는 달리 또렷하게 남아있는 'SEWOL(세월)'이라는 글자가 유난히 서럽게 느껴졌다.

부두 입구에는 수만 개의 노란 리본이 울음소리를 내며 펄럭이고 있었다. 세월의 더께인 양 끝이 보풀처럼 헤지고 찢긴 리본들을 보노라니 순간 울컥했다. 그 리본들에 덮여 색이 바래다 못해 흐릿해져 가는 세월호 미수습자 다섯 분의 영정 사진은 죄송한 마음에 차마 쳐다보기조차 힘들었다. 

그때 다짐한 게 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데에 코로나를 핑계 삼지 말자고. 여럿이 한데 모이는 게 어려울 뿐, 소수나 비대면 방식으로 얼마든지 의미 있는 추모 행사를 열 수 있다. 방역지침이 엄격하고 제약 조건이 많다는 이유로, 지난 2년 동안 별다른 노력도 없이 손 놓고 있었음을 고백해야겠다. 

2019년 4월, 학생회 주관으로 교정에서 세월호 리본 플래시몹을 펼친 게 마지막이었다.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 세월호 추모 행사를 비롯한 학교 내 대부분의 단체 활동은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됐다. 교문이 닫히고 수업조차 비대면으로 진행해야 하는 마당에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지난 2년간 학교마다 태블릿 PC와 웹캠, 전자칠판 등이 보급되고 무선 와이파이가 상용화하면서, 언제든 비대면 수업 전환에 큰 무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 학교는 비대면 수업 준비에 '올인'하다 보니, 다른 교육 활동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었다. 당장 소풍과 수학여행도 못 가는 판국에 무슨 세월호 타령이냐는 힐난의 목소리마저 들렸다. 

세월호 진상규명이 필요한 이유

학교 밖은 더했다. 주변에 코로나로 생계조차 막막해진 자영업자들이 숱한데, 그들 앞에서 세월호를 기억해달라는 유가족의 바람을 마치 떼쓰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세월호 유가족들보다 더 불쌍한 건 우리"라며 모질게 대꾸하는 이들도 드물지 않다. 느닷없이 세월호는 코로나의 가장 약한 고리가 됐다. 

서로의 고통에 공감하며 다독이지는 못할망정 되레 가엾은 이들을 향해 화풀이하듯 쏘아붙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적 약자가 또 다른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고, 중재하고 해소해야 할 정치권은 되레 둘 사이를 갈라쳐 이득을 챙기며, 언론은 나 몰라라 하며 갈등을 부추긴다. 마치 자영업자의 고통을 세월호 유가족이 외면하고 있다는 듯이. 

"지금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와 코로나로 인한 경제난 극복에 힘을 보태는 게 우선 아닐까요?"

번갯불에 콩 볶듯 올해 세월호 추모 행사를 재개하자고 제안했더니 돌아온 한 아이의 답변이다. 아이들의 가슴 속에 세월호는 멀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는 가깝다. 이미 모든 교과서에 수록된 세월호는 그들에게 '역사'가 됐다. 그들이 임진왜란과 6.25 전쟁을 수험 지식으로 받아들이듯 세월호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더욱 안타까운 건, 세월호 참사의 교훈이 우크라이나 시민들과 자영업자들이 직면한 고통을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여긴다는 점이다. 아이들에게 '돈보다 생명'이라는 다짐이 구호로써만 겉돌고 있다는 뜻이다. 왜 수백 명의 생떼 같은 목숨을 수장시킨 참사가 벌어졌는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8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결과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은 자연스럽게 코로나로 힘겨워하는 이웃과 지구 반대편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향한 연대의 손길로 이어지는 게 당연하다. 생명과 안전에 내남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단언컨대, 우리가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당장 멈추라고 외치는 것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코로나가 여전히 기세등등하지만, 8주기인 올해마저 학교에서 추모 행사를 걸렀다가는 세월호가 박제화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소규모의 조촐한 비대면 방식일지언정 다시금 '돈보다 생명'이라는 다짐을 되새기는 계기를 어떻게든 만들어봐야겠다. 아이의 말마따나,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를 주제 삼아도 좋겠다. 우크라이나 시민을 살려야 한다는 외침이 세월호 진상규명이 필요한 이유를 아이들의 가슴에 각인시켜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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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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