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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읍내에서 남동쪽으로 40여 분을 가다 보면 산성면 시가지가 보인다. 여기에 핑크빛이 감도는 간이역이 있는데, 바로 군위군에서 유일하게 여객 취급을 하는 중앙선 철도역인 화본역이다. 흔히 보는 유리로 가득한 KTX역과는 다르게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역사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인지 뭔가 정겨운 마음이 든다.

화본역 북동쪽 가까이에는 현재는 폐교된 산성중학교 건물이 있다. 이촌향도의 여파도 여기는 예외가 아니었지만, 다행히 이 학교는 광복 이후 옛 시절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엄마아빠어렸을적에'로 탈바꿈했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산성면의 두 명소를 한번 탐방해보자.

2023년까지 운영되는 화본역

이번에는 토요일 오전 9시에 화본역을 가봤다. 날씨가 화창하고 동쪽에서 떠오르는 햇살이 간이역을 비쳐서 그런지 분홍빛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주말 아침에는 사람들이 좀 더 쉬고 싶은 심리가 있어서 그런지 나홀로 역 앞에 있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낮 시간과는 완전 다른 분위기였지만, 나처럼 조금 더 깊이 간이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이때가 황금시간대일지도 모르겠다. 건물을 보니 입구에 '화본역'이라고 써져 있는 곳에 도드라지게 보이는 삼각지붕과 뒤쪽의 굴뚝이 일제강점기 시절에 지어진 철도역 건물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아침 햇살 아래 핑크빛이 감도는 화본역
 아침 햇살 아래 핑크빛이 감도는 화본역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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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완공되어 1938년 2월에 개업했다고 하니 이 기본 건물 그대로 85년 동안 터를 지켜온 현역이기도 하다. 도로 교통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산성면 마을주민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철도역이었는데, 바로 기차를 타고 남동쪽에 있는 영천시장으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영천장날 화본역은 보따리를 들고 가는 마을 주민들로 가득했다.

도로가 놓이고 하나로마트가 개점한 오늘날에는 옛날과 달리 아침에 시끌벅적하지는 않다. 하지만 철길건널목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무궁화호 열차가 여전히 다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행은 부전행 열차가 2회, 동대구행 열차가 1회, 상행은 청량리행 열차가 2회, 동해행 열차가 1회 정차한다.

이렇게 달리는 무궁화호 열차도 2023년 12월이 되면 운행이 끝나는데, 중앙선 복선전철화가 되면서 다른 철로로 이설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철로만 남을 화본역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화본역 85년 역사. 도로가 발달하기 전 영천 장날에 보따리든 산성면 주민들로 가득했다.
 화본역 85년 역사. 도로가 발달하기 전 영천 장날에 보따리든 산성면 주민들로 가득했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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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현역인 화본역 철길. 하지만 2023년 중앙선 이설 후에는 추억의 공간으로 남는다
 여전히 현역인 화본역 철길. 하지만 2023년 중앙선 이설 후에는 추억의 공간으로 남는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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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본역에서 놓치면 안 되는 명소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철길을 건너 계단을 내려가 왼쪽 편에 보이는 급수탑이다. 급수탑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에 화본역 철길에는 증기기관차가 운행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높이는 무려 25m인데, 물을 저장한 곳은 급수탑 꼭대기에 물탱크처럼 튀어나온 공간이다.

급수탑 아래에 있던 급수정에서 냇물을 끌어온 다음 펌프로 탑 꼭대기까지 끌어올렸다고. 기차가 들어오면 급수탱크의 밸브를 열고 수압으로 급수전으로 물을 보내 열차에 채우는 원리다.

급수탑에 들어가면 백마처럼 생긴 조형물과 나비들이 있다. 무슨 의미인가하고 찾아봤는데, 임도훈 작가의 '설화가 시작되다'라는 작품이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했던 군위 인각사 산자락의 기린 형상과 나비떼가 창가를 통해 화본마을로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을 나타냈다고.

그 앞에는 삼국유사 책을 감싸는 소녀와 고양이가 있는 조형물도 있다(박상희 작가의 급수탑에서 삼국유사를 펼치다). 기린상 뒤로는 '석탄정돈', '석탄절약'이라는 글씨가 선명한데 탱크 아래에 증기기관차의 연료인 석탄을 저장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급수탑 내부는 고려시대와 근현대를 같이 조합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화본역을 갔을 때는 4월 초여서 급수탑 주변에 벚꽃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벚꽃시즌을 놓쳤다면? 그러면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는 9월 말 오후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철길에서 역사를 바라보면 분홍빛의 꽃과 건물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벚꽃이 둘러진 화본역 급수탑
 벚꽃이 둘러진 화본역 급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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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수탑 내부. 기린상 뒤로 '석탄정돈', '석탄절약'이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 석탄은 증기기관차의 연료였으니까.
 급수탑 내부. 기린상 뒤로 "석탄정돈", "석탄절약"이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 석탄은 증기기관차의 연료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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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어렸을적에

화본역을 감상한 다음 북동쪽 건너에 있는 엄마아빠어렸을적에를 다녀가는 것도 잊지 말자. 원래 이곳은 옛 산성중학교였는데 젊은 인구가 줄어든 농촌사정으로 인해 2009년 폐교가 되었다. 학교로서 운명은 다했지만, 관광객을 위한 뉴트로 공간으로 개조되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뉴트로 명소 엄마아빠어렸을적에로 개조된 옛 산성중학교
 뉴트로 명소 엄마아빠어렸을적에로 개조된 옛 산성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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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을 들어가 왼쪽 편을 보면 옛날 타자기와 아날로그 텔레비전들이 사람들의 옛 향수를 자극한다. 특히 옛날 부잣집에서나 볼 수 있었던 TV장이 내 눈에 확 들어왔다. 교실에 들어가면 내가 초등학교 때 봤던 풍금과 책상들이 보인다. 그리고 중앙에 옛 난로와 곽도시락들로 가득한데, 보온도시락이 대중화되기 이전이라 80년대까지는 이런 광경이 흔했다.

교실 바로 뒤에는 뮤직박스가 있던 옛 다방의 풍경을 잘 꾸며놓았다. 다방 오른편에는 현대자동차의 80년대 모델인 포니2와 추억의 장물들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목총이었는데, 군사정권시절 고등학교 군사학 교육인 교련과 연관되어 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유명무실한 과목으로 되었지만, 아버지 세대 때에는 얼차려까지 있었던 악명 높은 과목이었다고. 목총과 뒤에 있는 군사정권 시절 포스터가 독재정권시절의 어두움을 보여주지 않나 생각해본다.
  
옛 초등학교 교실의 추억. 교실 앞 풍금 2대와 난로 위 곽도시락이 눈에 띈다
 옛 초등학교 교실의 추억. 교실 앞 풍금 2대와 난로 위 곽도시락이 눈에 띈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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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장물들. 목총이 눈에 띄는데 군사정권시절 교련 교육의 흔적이다.
 옛 장물들. 목총이 눈에 띄는데 군사정권시절 교련 교육의 흔적이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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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반대편으로 가면 옛 시골 상점들의 모습들이 가득하다. 솔, 백조, 디럭스 마일드, 한라산 옛 담배로 가득한 역전상회, 70~80년대 옛 책으로 가득찬 경북서점, 작은 정사각형의 옛 타일장식이 남아 있는 화본이발소, 연탄집, 주황색 옛 공중전화가 재현되어 있다. 벽에는 원색으로 화려하게 디자인했던 영화 포스터와 흑백사진, 그리고 글자만 있어 너무 수수하게 보이는 선거 벽보가 있다.

학교 뒤편에도 구경거리가 많이 있다. 옛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화본사진관, 두더지 게임과 옛날 문방구 앞에서 봤던 오락기로 가득한 화본오락실, 그리고 딱총으로 인형을 맞추는 화본사격장이 있다. 이 외에도 방향제와 도자기체험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는데, 공예에 호기심이 많은 자녀분이 있다면 체험도 같이할 것을 추천한다.

산성면의 근현대사를 간직한 화본역과 엄마아빠어렸을적에. 아직 열차는 달리지만 중앙선이 이설되면 화본역도 옛 산성중학교와 함께 추억의 공간으로 된다. 마지막 열차가 운행을 마쳐도 산성면의 아기자기한 모습은 여전히 유지될 수 있을까? 일상으로 지칠 때 옛 추억을 생각하며 위로할 수 있는 공간이 계속되길 바라며 이곳을 나섰다.
 
옛 시골 슈퍼마켓의 모습
 옛 시골 슈퍼마켓의 모습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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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 동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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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행테마 중앙선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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