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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자락의 호암산에서 뻗어나와 도림천 앞까지 이어지는 계곡에 자리한 동네. 예전부터 '난초가 있는 골짜기'라는 지명으로 불리운 난곡동은 과거에 신림동에 속해 있었으나 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현재의 난향동과 난곡동으로 나뉘어졌다. 난곡동에는 수령이 350년을 넘었다는 느타나무 보호수와 난곡초교 앞의 굴참나무가 1000년의 역사를 살아오고 있다.

이번 산책 루트는 난초 골짜기를 에워싸고 있는 야트막한 산길을 따라 원점으로 회귀하는 코스다. 신대방역에서 출발하여 호림박물관을 끼고 돌아 건우봉을 거쳐 관악산생태공원으로 내려와 독산자연공원에서 마무리한다. 중간에 남향하여 본 연재 10화에서 소개한 호암산으로 갈 수도 있다. 글쓴이와 같은 방향치를 위해 지도를 그려보면 아래와 같다.
 
난초가 자라는 골짜기 난곡동과 난향동 일대 지도.
▲ 난곡동 일대 산책 루트 난초가 자라는 골짜기 난곡동과 난향동 일대 지도.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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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림박물관 정문 왼쪽 계단을 오르면 산책의 시작이다. 좌측의 성보고교 담장이 제법 높아서 마치 보통 사람은 출입이 제한된 군부대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지만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난곡터널 방면으로 걸어보자.
 
성보고교 담장 옆 산책로에서 바라본 호림박물관.
▲ 호림박물관. 성보고교 담장 옆 산책로에서 바라본 호림박물관.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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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초등학교가 나오면 좌우측으로 관악구 신원동과 난곡동을 이어주는 생태다리를 건너서 건우봉에 다다른다. 사방으로 밀집한 아파트 단지에 난 조그마한 흙길이지만 수풀이 우거져서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주변을 굽어보며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배수지공원(하늘공원)에 다다른다. 이번 산책 코스에서 가장 풍광이 좋은 지점이다. 신림6배수지 위에 만들어진 공원으로 정자와 쉼터, 배드민턴장, 주민들을 위한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난곡동 일대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 배수지공원(하늘공원) 생태다리.
▲ 하늘공원에서 조망하는 난곡동 풍경. 난곡동 일대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 배수지공원(하늘공원) 생태다리.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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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쪽으로 관악산이 펼쳐지고 반대방향으로 난곡동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하늘공원에서부터 호압사로 이어지를 수 있도록 능선이 끊긴 곳에는 생태다리를 조성해 놓았기에 차량의 간섭없이 호젓하게 걸어볼 수 있다. 

광신고교를 지나 난향동으로 내려와 길을 건너면 관악산 생태공원으로 오르는 길에 정정공(貞靖公) 강사상(姜士尙) 묘역이 있다. 서울시 지정의 유형문화재이며 출입문을 잠궈놓았기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담장이 낮아서 안쪽을 훑어볼 수 있다. 강사상은 선조 때 여러 관직을 거쳐 우의정까지 올랐던 인물로서 축재를 멀리하여 집 한 채도 장만하지 않고 청렴한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을 위해 오욕을 뒤집어 쓴 강홍립

난곡의 원래 이름은 이리고개(狼谷)였으나 어감이 좋지 않아, 강사상의 장남인 강서(姜緖)가 자신의 호와 동네 이름을 난곡으로 바꾸고 현재까지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손자인 강홍립(姜弘立)이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난초를 많이 심어서' 이름지어졌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강사성이 죽고 나서 11년 후 임진왜란이 터지고, 강홍립에 이르러는 정묘호란이 발생하여 동북아는 전쟁의 한가운데 있었다. 

당시 중립외교를 펼치고 있던 광해군은 조·명 연합에 따라 부차 전투에 출정한 강홍립에게 명나라를 돕는 척 하면서 후금에 투항하라는 밀명을 내렸다. 임진전쟁을 겪으면서 여진족의 부흥을 눈여겨 본 광해군은 강홍립을 중용하여 실리외교를 펼쳤다. 큰 희생없이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 강홍립은 이후 8년간 후금에서 억류생활을 하며 기밀 정보를 조선으로 보냈기에 광해군은 정세를 낱낱이 파악하면서 양면외교를 펼칠 수 있었다.
 
▲ 난초골 따라 생태공원 탐방해볼까?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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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대주의에 함몰된 서인 세력이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내쫓고 정세는 급변한다. 정권을 장악한 사대부는 여진족을 적대시하여 후금이 쳐들어오게 만들고 다급한 인조는 강화도로 들어간다. 이때 후금과 함께 조선으로 온 강홍립이 수완을 발휘하여 양국은 '형제의 나라'로 화의가 이루어진다. 8년만에 조선으로 돌아온 강홍립이었지만 반정 세력에 의해 배신자로 낙인 찍혀 귀양을 갈 수 밖에 없었다. 

한줌도 안 되는 벼슬아치의 등쌀에 인조는 강홍립을 난곡으로 유배시켰고 귀국한지 3개월만에 세상을 떠난다. 당시 명나라를 떠받들던 지배층은 청나라(국호를 후금에서 청으로 바꿈)가 동아시아를 통일하는 정세를 살피지 못하여, 강홍립 사후 9년만에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는다. 인조는 청 태종을 향해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하였고 형제의 나라에서 '군신의 나라'로 굴복하고 만다.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와 세자빈, 훗날 효종이 되는 차남 봉림대군 그리고 조선 여인 50여만 명도 함께 볼모로 잡혀 청나라로 끌려간다. 우리의 불쌍한 여인네들이 모진 수모를 겪다가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을 때 당시의 양반들은 환향녀(還鄕女)란 멸칭을 쓰면서 손가락질 하기 바빴다.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 화냥년이란 비속어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350년 된 느티나무가 한 단독주택 앞에서 녹음을 드리우고 있다.
▲ 느티나무 보호수. 350년 된 느티나무가 한 단독주택 앞에서 녹음을 드리우고 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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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상묘역 옆에 350년 된 느티나무가 있고 난곡초교 앞에는 신림동 굴참나무가 아파트 단지 사이로 무성한 잎을 내며 1000년 넘게 자리하고 있으니 산책 도중 들러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공원에 조성된 작은 연못에서 수초가 자란다.
▲ 관악산생태공원. 공원에 조성된 작은 연못에서 수초가 자란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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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향공원으로 올라 관악산생태공원에 이르면 자그마한 연못 주변으로 몇 종의 수초가 자라고 쉼터가 꾸며져있다. 이 야트막한 산자락을 경계로 관악구와 금천구가 나뉘어진다. 여기서 서쪽으로 내려가면 독산동 우시장이 나오므로 부위별 소고기와 돈육을 도매가로 살 수 있다.

계속해서 북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독산자연공원을 지나 영남초교와 독산고 사잇길로 하산하여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난곡동 산책은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고 있는 샛길을 걸어보는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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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를 펴냈다. 컨택은 O|O.3EE5.28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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