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조선에 파견된 나는 물론 외교관으로서 미국이 이득을 취할 것이 무엇인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을 희생시키면서 자국의 이득만을 취하는 제국주의자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과 조선이 협력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이 될 거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지요.

조선의 땅에는 금이 많이 매장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조선 동전의 가치는 급락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무역 대금으로서 금의 유통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었지요. 미국의 자본가가 이곳에 진출하여 사업을 하면 틀림없이 크게 성공할 수 있는 큰길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회사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 그들의 진출을 도왔습니다. 당시 조선 정부는 여러 근대화 사업에 착수하고 있던 터였지요. 철도 및 전선 부설, 농목축장 건설, 왕궁의 가스 및 전기 시설 등등이었는데 이들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서는 해외로부터 물자를 대규모로 구매를 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문제는 이 모든 사업이 자칫하면 영국 회사의 수중에 떨어질 상황이라는 점이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일본 측이 보인 행태는 고약했습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우리 미국인에게 조선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주고 있었으니까요. 나는 그러한 상황을 편지에 이렇게 담았습니다.
 
"조선에서 뭘 해보겠다는 사업 제안을 낸 미국인은 아직 아무도 없답니다. 조선에 관한 신문 보도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건 모두 일본인들이 만들어 유포한 것인데 말입니다. 서양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일인들이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는 것이지요. 한편 조선 측은 저에게 사업 프로젝트에 대해 자주 자문을 구한답니다. 그에 대하여는 보고서를 써서 본국에 보내렵니다. 하지만 무슨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답니다. 일에 치여 한국어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열심히 한답니다. 매일 조선 생활에 대한 새로운 면을 접하고 있지요. 이제 한국어로 의사 소통을 아주 잘 하게 되었습니다." -1884.8. 12일 자 편지에서

다행히 고종 임금은 서양 문물 도입에 매우 전향적이었지요. 미국 농장도 고종이 땅을 지원해 주는 등 큰 관심을 보였고 전기 도입도 마찬가지였지요.
 
"왕은 궁궐내 전기 시설이며, 육종 목축장 설립이며 해외로부터 물품 수입이며를 원한답니다. 저는 그러한 일들을 이끌어 가고 있지요. 그런 일들은 물론 해군 무관의 고유 업무와는 거리가 멀지요. 하지만 만일 제가 수수방관하면 모든 것이 영국인의 손에 들어가고 말 겁니다. 제 나라의 이익을 위해 알하는 것이 외교관의 임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미국의 상류층이 해외 무역을 등한시하고 교역을 터보려는 의욕이 없는 것은 고약한 풍조입니다.

미국 시민들, 상인들은 정부에 징징거리는 것을 일삼고 있지요. 정부가 도와주지 않는다느니, 해외 무역을 위해 길을 터주지 않는다느니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하더라도 그건 제가 모르는 다른 외국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겁니다. 이 곳 조선에 대해서만큼은  우리 정부가 모든 것을 확보하여 놓았지요.

그러나 미국 상인들은 아무도 우리 정부가 조성해 놓은 유리한 환경을 활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아무도 사업 제안을 내지 않습니다. 조선인들 속으로 뛰어 들어 통상을 해보려 하지 않는 거지요. 아마도 이 나라가 너무 알려지지 않은 까닭일 겁니다. 

한편 많은 영국인들이 조선으로부터 사업 요청을 받습니다. 그걸 제가 따돌리려고 애를 쓰는 중인데 아직까지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자부합니다. 한 예로 제가 전기 설비를 에디슨 회사로부터 수주 받았답니다. 뿐만 아니라 그 회사 직원 두 사람으로 하여금 여기 와서 체류하면서 기계를 돌릴 수 있도록 주선하였지요.

저는 또한 종축장에 보낼 종자 동물들을 주문하였답니다. 그곳에서 育種을 지도할 수 있는 미국인 한 명을 차차 구해 볼 생각입니다. 그 사람은 그 일 뿐 아니라 영농과 묘목장과 같은 제반 농업 개선 사업을 맡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중요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그 일을 수행할 적임자로서 랑카스터 카운티 사람을 찾아보려구요. "
- 1884.8. 12 일자 편지에서 
 
조선의 앞날에 장애물이 곳곳에 놓여 있었지요. 청나라의 횡포와 그들을 섬기는 조선인들이야말로 가장 큰 장애였습니다.
 
"여러 면에서 조선인들에 실망했다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특히 중국과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절단 사람들은 ​조선이 청나라로부터 독립된 나라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고 또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있지만 실제 내부 사정은 분명히 다릅니다. ​

청나라가 조선을 통제하고 있지요. 많은 방면에서 통제가  몹시 심하여 국왕과 조정이 우리의 문물을 수용하고 싶어도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엄두를 내지 못한답니다. 청나라가 우리의 문화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곳 수도에 1,500명의 청나라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요새에 상주하면서 왕궁을 통제하고 있지요. 요새에는 청나라 총감(COMMISSIONER) 한 명이 파견나와 있답니다. 영사나 공사가 아닙니다. 조선이 자주 독립 국가라면 당연이 영사나 공사여야 할텐데 말입니다.

중국인들은 조선 측의 허가도 없이 체류하고 있지요. 청나라 병사 외에도 저질적인 중국 상인 수백 명이 살고 있답니다. 그들은 장사로 모든 것을 빨아들입니다. 그러면서 조선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극렬히 가로막고 있지요.

​제가 이곳에서 여행을 하려면 조약에 따라 여행허가증을 소지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청나라 사람이라면 개나 소나 허가증 없이 아무데나 맘대로 다닌답니다. 마치 지네들 땅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미국이 선도하였습니다만, 일찍이 조선과 조약을 맺은 체약국들은 마땅히 청나라에게 조선과 조약을 맺으라고 해야 합니다."
-1884.8.31일자 편지에서

나에게 청나라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첫째, 미국의 위신 문제와 직결되었기 때문이죠. 중국의 속국과 미국이 조약을 체결하고 외교관을 파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둘째 청나라의 고삐에 꿰여 있는 한 조선의 발전은 불가능했고 미국과 조선의 관계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때문이었지요. 마지막으로 조선이 몰락하면 나의 열정과  보람과 명예도 묻히고 말겠지요.

태그:#조지 포크, #전기, #청나라, #일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좋은 만남이길 바래 봅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제2의 코리아 여행을 꿈꾸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