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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트로이 코처와 시상자 윤여정 생중계 갈무리.
 2022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트로이 코처와 시상자 윤여정 생중계 갈무리.
ⓒ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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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윤여정 선생님께서 시상자로 나와 올해의 남우조연상 수장자인 배우 트로이 코처를 호명하기 전에 수화로 소통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손의 언어가 유려하지는 않을지라도 청각장애인인 트로이 코처에 대한 배려는 사려 깊었고 다정했다. 목소리는 지웠지만 더욱 큰 울림으로 무대를 꽉 채웠다.

이어진 모습도 감동적이었는데, 배우가 수상 소감을 수화로 말할 수 있도록 그의 트로피를 대신 들어주고 그가 하는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 모습이었다. 이 어른은 하시는 말씀, 행동 하나 멋지지 않은 날이 없다.

말은 상대에게 친근감을 표현하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대에게 미리 신호를 보내는 간편하고 효율적인 수단이다. 타인을 칭찬하거나 고마운 일은 고맙다고 표현하는 것은 타인과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좋다, 싫다, 할 만하다, 힘들다 등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은 나에게도 유리하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일수록 내면에 쌓아두는 것은 몸에 독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말을 하는 행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바로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들어주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잘' 들어주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잘 들어주려면 상대의 말에 충분히 공감을 하고 그에 맞는 리액션이 자연스럽게 동반되어야 하는데 대부분은 상대의 이야기에 자신을 얹는 오류를 범한다.

'그랬구나' 대신에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하거나,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말에는 '그게 아니지' 하고 상대의 말문을 막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고야 마는 것이다. 

특히 상대가 어린 아이이거나 부하직원일 경우 '내 말이 맞으니 잘 들어 봐' 하는 태도는 더욱 쉽게 나타난다. 내 말을 하다 보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다. 내 말에 도취되어 내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의 표정을 읽어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소통이 불통으로 변하는 건 이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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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1박 2일, 무한도전, 응답하라 1997 등을 집필한 유명 방송 작가인 김란주씨가 게스트로 나왔을 때이다(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얼마 전에 보았으니 아마 재방송일 게다). 함께 일했던 유명 PD(이명한, 나영석, 신원호, 김태호)들의 특징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고민 없이 '그분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끝까지 집중력 있게 들어준다'라고 답했다.

회의가 길어지거나 의견 충돌이 있을 때 계속 듣고 있기가 쉽지 않은데 그분들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MC 유재석 님의 경청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중구난방 쏟아지는 아이디어들 속에서 보석 같은 아이템을 발굴해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것도, 출연자들이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소소하고 잔잔한 감동을 이끌어 내는 것도, 모두 잘 들어주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말을 많이 하며 산다. 내뱉은 말 중에 가치 있는 말이 몇 마디나 있었을지 하루의 말들을 곱씹어 보곤 한다. 해서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말보다는 하지 말았을 걸 하는 말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 이런 후회도 없을 텐데 말을 많이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침묵을 견디지 못해서이다. 

특히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공간만 공유할 뿐 정서는 따로, 스마트 폰이라는 각자의 세상을 부유하는 게 싫다. 카페에 가면 눈빛을 나누고 마음을 공감하는 사람들보다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기 바쁜 사람들이 훨씬 많다. 대화가, 사람이 그리워 말을 한다.

다음에 누군가와 만나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더 많이 들을 것이다. 그가 요즘은 행복한지, 힘든지 그가 내는 목소리에 모든 세포들을 동원해 귀 기울여 들어줄 것이다. 그가 말하는 기쁜 일에는 같이 기뻐해 주고 힘든 일을 말할 때에는 가만히 그의 손을 잡아 체온을 나누어 줄 것이다. 

듣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열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줄 넉넉한 마음이다. 이야기는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향한 진심이 있어야 경청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발행되는 글입니다. 브런치 by 달콤달달


태그:#경청, #말은하는것보다듣는것이중요하다, #잘들어주는예쁜사람, #대화의기술, #사람사이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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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보았다가도 또 생각나서 찾아 읽게 되는, 일상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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