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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유행기의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이거나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관계 단절에서 입는 피해가 더 컸다. 노인은 그 중에서도 가장 취약했다. 확진자들은 높은 치명률과 '현대판 고려장'이라 불린 요양시설 코호트 격리로 많은 수가 숨졌고, 비확진자들 또한 사회적 활동의 단절로 어느 연령 인구보다 깊은 신체·정신적 피해를 받았다. 오마이뉴스는 노인 1인 가구 및 돌봄 현장 종사자들을 만나 코로나 2년여간 그들이 겪은 이야기를 들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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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노인종합상담센터 '노인온상담실' 상담사들이 24시간 상담 전화 업무를 보고 있다.
 경기도노인종합상담센터 "노인온상담실" 상담사들이 24시간 상담 전화 업무를 보고 있다.
ⓒ 경기도노인종합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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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에게 1388, 여성에게 1366이 있다면 경기도 '어르신들'에겐 '1833-2255'가 있다.

'속상하면 이리오세요'를 숫자화한 2255(이리오오)다. 365일, 밤 10시든 새벽 4시든 상담이 필요할 땐 24시간 언제든 전화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경기도식 노인의 전화다.
 
전화를 걸면 경기노인종합상담센터 '노인온(ON-溫)상담실'로 연결된다. 적게는 2명, 많게는 4명의 상담사가 상주하며 2교대로 자리를 지킨다. 코로나 시기 긴급 노인 심리 돌봄의 필요성이 커져 지난해 5월부터 도입됐다. 경기도 거주 노인이라면 경기도가 요금을 부담하고, 타 지역이라도 요금을 자부담하면 전화 상담이 가능하다.
 
이 시스템을 처음 구상한 이는 김미나 경기노인종합상담센터장이다. 2017년부터 센터장을 맡아온 그는 코로나 전에 24시간 상담 체계를 구상했으나 코로나 시기 필요성을 절감해 신속히 도입을 추진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5월 26일 김 센터장을 만나 경기노인상담센터의 지난 2년 코로나 위기 대응 이야기를 들었다. 

"토끼 인형과 대화하는 노인보고, 24시간 전화상담 마련" 
 
김미나 경기도노인종합상담센터장
 김미나 경기도노인종합상담센터장
ⓒ 경기도노인종합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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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시간 전화상담, 어떻게 구상했나?

"몇 년 전 1인 가구 방문 현장을 나갔는데 우리 사회 노인의 현실에 한스러웠던 적이 있다. 어느 산자락에 사는 어르신 댁을 방문했는데 집에 태엽을 감는 토끼 장난감이 있었다. 손주가 놓고 간 줄 알았더니 말동무라 했다. 움직이는 인형을 두면 살아있는 느낌을 받아서 '너 뭐하냐' '너 재밌냐'하며 토끼와 대화하는 거다. 이런 분들이 한 둘이 아니고 농촌·산간 등 교통 취약지에 특히 많다. 고민을 거듭하다 한 가지 답을 얻었다. 아무리 가난해도, 아무리 산골짜기여도 TV와 전화는 있었다. 전화가 저분들 마음 돌봄의 생명줄이었다. 그때부터 도입을 꾸준히 추진했다."
 
- 밤이나 새벽엔 상담 수요가 많지 않을 것 같은데 도입 필요성이 있었나?

"일반 복지시설 대부분 오전 9시에 문을 열고 저녁 6시에 닫는다. 그럼 '상담 소외 시간'이 생긴다. 그런데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잠이 줄어드는 변화를 겪는다. 노인은 낮보다 밤이 더 힘들다. 물론 물질적·정서적 자원이 많은 사람은 아닐 수 있지만, 어려우신 분들은 초저녁에 잠들었다 자정쯤 깨면 온갖 과거가 다 머리를 스친다. 과거 고생한 생각, 서운한 생각,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스며 올라오는 게 하루 이틀 반복되다가 깊은 우울감에 빠진다.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고 생각할 때 어딘가 전화할 곳이 있으면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안정감을,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위안을 느낄 수 있다."
 
- 주로 어떤 상담을 하나?

"하나로 말할 수 없이 다양하다. 거창한 상담이 아니어도, 그냥 곁에 있어 주는 존재가 되는 거다. 보호자 역할을 한 적도 있다. 1인 가구 어르신이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코로나 백신을 맞는데 혼자여서 아무도 나를 봐줄 수 없다. 몇 월 며칠 몇 시에 나한테 전화해서 괜찮은지 확인해줄 수 있느냐' 물었다. 그날 전화를 드리니 다행히 아무 문제없었다. 산술적으로는 전화 한 통 정도겠지만 그런 계산으로 따질 수 없는 의미가 있다. 실제 상담사들도 이 의미를 체감하고 있다."
 
- 코로나 기간, 센터가 지켜본 노인의 정서적 위기는 얼마나 심각했나?

"센터 통계상으로도 심리·정서 상담 비중이 2019년 33%에서 2020년 61%로 대폭 증가했다. 노인이 사회적 관계·활동 단절에서 겪는 피해는 젊은이의 시각에서 이해하면 안 된다. 노인의 일상은 180도 바뀌었다. 복지관, 경로당이 다 문을 닫았다. 여럿이 모이지 못하게 했고 외출도 제대로 못하는 환경이었다. 자식들도 방문을 삼갔다. 경기도 62개 노인상담센터들은 전화를 열심히 돌렸는데 '오늘 처음 입을 뗐네' 하는 분들이 많으셨다. 건강 악화도 뒤따랐다. 치매 증상이 있는 어르신이 한 분 계셨는데 코로나 기간 도중에 자녀분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치매 속도가 급속히 빨라졌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더라. 어떤 문제의 파급력과 연쇄반응이 젊은 세대에 비해 대단히 크고 빠르다."
 
- 실태를 지켜 보며 센터는 어떤 고민을 가장 많이 했나?

"센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담의 역할은 예방이다. 가령 자살 예방이라면 지금 위험에 처한 사람을 상담하는 건 '처치'이지 예방이 아니다. 위기가 시작되기 전, 일반적인 상황의 노인의 마음을 돌보는 게 예방이다. 경기도가 경기자살예방센터를 두고도 노인상담센터 체계를 따로 마련한 이유기도 하다. 나아가 '마음 돌봄', '심리사회적 안전망'의 역할이다. 상담센터장이다보니 물질적인 도움은 어떤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행복은 결코 물질에서만 오지 않는다. 복지 서비스가 생활 돌봄이라면 상담은 마음 돌봄이다. '그래 내가 잘 살았어'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회상하고 자기 존중감을 가지면서 '너도 괜찮고, 나도 괜찮아' 하고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는 돌봄을 고민했다."

'심리방역키트'가 만들어진 이유 
 
경기도노인종합상담센터 및 산하 62개 노인상담센터들이 코로나 기간 동안 마련해 지역사회에 배부한 '노인 심리 방역 키트'. 고령층에 맞추고자 키트를 천보자기로 만들어 그 안에 심리 방역 매뉴얼, 미술·공예 도구, 재배할 화초(새싹삼) 등을 넣었다.
 경기도노인종합상담센터 및 산하 62개 노인상담센터들이 코로나 기간 동안 마련해 지역사회에 배부한 "노인 심리 방역 키트". 고령층에 맞추고자 키트를 천보자기로 만들어 그 안에 심리 방역 매뉴얼, 미술·공예 도구, 재배할 화초(새싹삼) 등을 넣었다.
ⓒ 경기도노인종합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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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밖에 센터가 코로나 위기 대응에 노력한 부분은?

"코로나 초기엔 대면상담, 집단상담 등의 활동이 전면 중단됐으나 재빨리 대응 채비를 갖췄다. 우선 당시 50여개 산하 센터에 '센터를 이용한 모든 어르신들에게 전화부터 돌리자'고 했다. 대화를 이끌어가는 상담사 역량이 중요했기에 전화 상담의 이론과 실제 등의 강의를 열어 교육하며 장기화에 대비했다.

'심리방역키트'도 있다. 감염병 시기엔 심리 방역이 상담센터의 역할이라 여겨 대안을 찾다가 마침 유럽연합회 기관간상임위원회(IASC MHPSS RG)에서 만든 노인 심리 방역 매뉴얼을 발견했다. 영어에 능통한 우리 상담사가 자료를 번역했고, 함께 이를 한국어판으로 만들었다. 유럽연합회는 우리가 한국어본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사용을 허락했다. 이 책자와 미술, 공예, 새싹삼 재배 등의 활동 자료들을 천보자기(마음보따리)에 함께 담아 상담이 필요하신 분들께 배부했다."
 
- 다음 팬데믹을 대비하는 데 있어 교훈으로 남은 것은?

"먼저 노인 심리 돌봄이 행정 체계로 뒷받침 돼 예산과 조직 등을 제도적으로 지원받는 건 자부할 만한 일이다. '각 시설이 알아서 하세요'가 아니라 '도가 책임진다'는 의미다. 아직은 경기도에만 이런 인프라가 구축돼있다. 또 노인 심리 방역에 대한 국가 차원의 매뉴얼이 마련됐으면 좋겠고, 다방면에서 촘촘하고 통합적인 지원책이 강구되면 좋겠다. 예로 들면 우리 24시간 상담 (전화)번호가 4자리가 아니라 8자리인데, 4자리는 중앙 정부 사업에만 적용이 가능하다. 8자리는 어르신들이 기억하기 어렵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국은 OECD 중 노인 자살률 1위 국가인데 아동·청소년 위기 상담전화는 있으면서 노인에 대한 것은 없다. 걱정이라면서도 마련이 안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노인이 코로나에 취약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음에도 사회적 의제가 되진 않았다. 원래 노인 문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아동·청소년의 문제는 학교에서 문제를 발생시키거나 부모들이 나서서 의제화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은 노인에게 정말로 불친절한 사회다. 아무 것도 못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아이들은 귀찮아하지 않지만 노인은 귀찮아하고, 연령대마다 맞춤 동화책, 매뉴얼 등을 만들어주지만 노인에겐 아무 것도 없다. 휴대전화는 노인들에게 신문명 수준인데 기계는 마구 팔면서 그걸 어떻게 쓰는지 친절히 알려주는 매뉴얼은 어디에도 없다. 노인의 입장에서 정책을 짜고, 문화를 만드는 태도가 곳곳에 배어있으면 좋겠다."

태그:#코로나 , #경기노인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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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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