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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노래'의 수북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다시 꽃다지를 만나 '꽃 사람'이 되었다. 다시 그 의무를 되새긴다.
 "우리 시대의 노래"의 수북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다시 꽃다지를 만나 "꽃 사람"이 되었다. 다시 그 의무를 되새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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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장을 정리하다 먼지 수북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표지에 '2000년 개정 증보판'이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얼추 20여 년 전에 산 모양이다. 책 위에 쌓인 먼지는 화석처럼 굳어 털어지지도 않고, 종이는 이미 누렇게 바래서 접으면 부러질 것만 같다.

'우리 시대의 노래'. 민맥 출판사에서 발간한 노래책이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민중가요를 가나다순으로 실었다. 총 두 권으로 묶인 건데, 책장을 아무리 뒤져봐도 1권은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이사 다니는 과정에서 버려지지 않았나 싶다.

세월의 더께는 쌓인 먼지나 누런 종이로만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머리말에 '요즘 MP3가 유행하고 있다'는 소개 글을 읽다 격세지감에 순간 웃음이 터졌다. CD로 음악을 듣던 시절에서 MP3로 넘어오는 때에 발간됐다는 뜻이다. 당시 MP3의 등장은 가히 혁명적인 변화였다.

"민중가요는 단지 그것을 수용하는 대중들의 독특한 취향이나 즐길 거리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역사이고 대중들의 삶과 정서를 드러내는 표현 양식이다."

머리말에 적힌 대로, 대학 시절 민중가요는 노래라기보다 역사이고 삶 그 자체로 여겨졌다. 대중가요와 민중가요는 그렇게 구분되었고, 적어도 대학가에서 대중가요는 개인적인 감성에만 매몰된 저급한 노래로 치부됐다. 그때만 해도 대중가요를 캠퍼스 내에서 듣기란 쉽지 않았다.

당시 대학 동아리방이나 과방에는 거의 예외 없이 통기타와 노래책이 놓여있었고, 그곳에서의 만남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시작됐다. MT 때도 통기타와 노래책은 필수품이었고, 2학년쯤 되면 웬만한 노래는 악보 없이도 부를 정도가 됐다. 뒤풀이 자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학 시절 등 너머로 배운 덕분에 오십이 넘은 지금도 이따금 통기타를 퉁기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부르는 노래가 민중가요에서 대중가요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책장 한 켠, 통기타를 세워둔 곳에는 손때 묻은 '포크송 대백과'가 여러 권 꽂혀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고단한 삶에 치이면서 도리어 민중가요와 멀어져갔다. 대학 시절 그랬듯 방안에 홀로 앉아 통기타를 퉁기지만, 입에서는 달콤한 노랫말의 포크송만 튀어나온다. 언제부턴가 정태춘과 안치환, 심지어 김광석의 주옥같은 노래조차도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듣는 이 아무도 없지만, 노랫말에 파업이나 해방, 투쟁, 쟁취, 동지 등의 단어가 나오면 순간 움찔거려진다. 심지어 단결이나 전진, 새벽, 통일 같은 일상적인 단어조차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다. 차라리 손발 오그라들게 만드는 사랑과 이별, 눈물 등을 노래할 때가 더 자연스럽다.

먼지를 털어내고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면서 어느덧 닳고 찌든 내 삶을 성찰해보게 된다. 각자도생의 비정한 세상을 살면서도 더불어 사는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며 불렀던 노래가 도리어 외면받는 현실에 나 역시 공범이다. 노래가 잊히며 노랫말에 담긴 꿈도 시나브로 희미해졌다.

'꽃 사람'이 됐다

책장을 넘기다 만난 이름, 꽃다지. 대학 시절 너무나 좋아했고, 공연 때마다 쫓아다녔던 노래패였다. 당시 대학가에서 그즈음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비유하자면,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과 더불어 '민중가요계의 BTS'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년 전의 앨범을 뒤적이듯 소중했던 그 이름을 검색해봤다. 놀랍게도, 여전히 그들은 건재했다. 정기 공연 영상을 통해 그들을 다시 만났다. 공식 멤버로 단 두 명만 남았을지언정 음반도 내고 유튜브 채널도 개설하는 등 꽃다지 간판을 내건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었다.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너무나 반가웠다. 어느덧 중년이 된 꽃다지의 모습에 순간 울컥하기도 했다. 무대 위에 선 두 사람에게 미안했고, 고마웠다. 그들의 노래를 통해 힘을 얻고 위안 삼으며 젊은 시절을 견뎠으면서도, 그 고마움을 잊고 살아온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공연의 마지막 앙코르곡을 듣다 그만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중년의 꽃다지가 같은 중년의 내게 건네는 '당부'였고, 이는 곧 노래 제목이기도 했다. 인간다운 세상을 함께 꿈꿨던 젊은 날을 떠올리며 세상살이에 힘겨워하는 서로를 다독이며 위로하는 노랫말에 감정이 북받쳤다.

젊음과 분노로 세상에 맞섰던 이들 모두 '생각했던 것보다 단단하고 복잡한 세상 앞에서 무너졌고, 불안한 미래를 향해 떠나갔지만', 그들은 그대로 남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떠난' 자로서 '남은' 그들에게 빚을 갚고 싶었다. 그것은 기실 그들이 아닌, 나를 위로하는 일이다.

곧장 공식 사이트에 접속해 '꽃 사람'이 됐다. '꽃 사람'이란 꽃다지를 후원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입 신청하며 너무나 행복했다. 꽃다지라는 이름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어서다. '꽃 사람'은 내게 명함에 새겨진 그 어떤 것보다 귀한 직함이 됐다.

정기 후원만으로 진정한 '꽃 사람'이 됐다고 할 순 없다. 노래를 통해 그들이 꿈꾼 세상에 한 걸음씩 다가가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 한다. 당장 오늘부터 꽃다지의 노래들을 찾아 불러야겠다. 관심을 두지 않아 그렇지, 꽃다지가 부른 노래 중 대중적인 작품이 적지 않다.

앞서 말한 '당부'를 비롯해 '바위처럼', '노래의 꿈', '민들레처럼', '주문', '희망', '노래만큼 좋은 세상', '전화카드 한 장',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동지', '투쟁의 한길로', '불나비', '서울에서 평양까지', '민중의 노래', '단결투쟁가' 등 대자면 끝이 없다.

노래가 가진 힘
 
2013년 홍대 상상마당에서 꽃다지의 공연 모습
 2013년 홍대 상상마당에서 꽃다지의 공연 모습
ⓒ 꽃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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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같아선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불러보고도 싶다. 5.18 민주화운동 주간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데 스스럼이 없고, 몇 해 전 영화 <1987>이 인기를 끈 다음부턴 '그날이 오면'을 흥얼거리는 아이들도 있다. 노랫말이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건 그들도 동의하는 바다.

그런가 하면, '바위처럼'이나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등의 경쾌한 곡은 레크리에이션 때 활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노래로 알고 있다. 원곡에 나오는 해방과 동지 등의 노랫말은 시련과 친구 등으로 '순화'된 채 불리고 있다. 그저 민중가요라는 용어를 어색해할 뿐이다.

익숙함의 차이일 뿐, 요즘 아이들에게 민중가요와 대중가요 사이의 특별한 경계란 없다. 접할 기회가 늘어난다면, 민중가요가 대중가요처럼 널리 불리게 될 거란 이야기다. 통기타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미디로 작곡된 대중가요보다 민중가요가 배우고 부르기가 훨씬 쉬울 듯하다.

아이들도 노래가 가진 힘을 알고 있다. 한 아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니었다면, 우리 사회의 5.18에 대한 기억이 순식간에 희미해졌을 거라고 말했다. 함께 모여 부르는 노래가 미래세대를 위한 교과서이며, 시대를 증언하는 역사적 사료라는 점을 명확히 깨닫고 있는 셈이다.

말이 난 김에, 버스킹 삼아 점심시간에 부러 짬을 내 아이들에게 민중가요를 들려줄 작정이다. 대학 때 노래패에서 활동한 한 동료 교사에게 미리 도움을 청해야겠다. 꽃다지의 노래 중 흥겨운 리듬의 '바위처럼'이나 은유적 표현이 돋보이는 '희망'이 좋겠다.

아이들이 따라 부르진 못할지언정 노랫말을 보면서 곡에 담긴 의미를 헤아려보게 될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시나브로 익숙해지다 보면, 학교 축제 때 민중가요가 무대에 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화려한 조명 아래 현란한 춤 일색이었던 행사가 훨씬 다채로워질 것이다.

언젠가 지금의 40대가 민중가요를 부르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먼지 켜켜이 쌓이도록 '우리 시대의 노래'를 방치한 채, 통기타 곁에 '포크송 대백과'를 꽂아둔 나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부'를 들으며 '꽃 사람'의 의무를 다시 되새긴다.

사족 하나. '우리 시대의 노래' 1권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해봤지만 허사였다. 출판사는 이미 사라졌고, 중고 서점 사이트에는 품절이라는 메시지가 떴으며, 시내 헌책방에서는 흡사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였다. 구할 수만 있다면, 두세 배의 값을 치르고라도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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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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