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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는 "5천만 민족이 깨어나서 친일잔재, 독재?유신잔재를 청산해 아름다운 민족공동체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함세웅 신부는 "5천만 민족이 깨어나서 친일잔재, 독재?유신잔재를 청산해 아름다운 민족공동체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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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욕적인 단조로운 일상 - 일반인의 사제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많이 달랐다 '단조로움' 대신에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았다. 천당 가기 위해 예수 믿는다는 유아기적 기복사상에 절은 교계와, 신 위에 물신(物神)이 자리잡은 사회에서 그는 남들이 마다하는, 기피하는 다양한 활동을 했다. 

80세의 그를 30대의 모습 옆에 세워도 본질적인 면은 변하지 않았고 세월의 풍화작용만이 깃든 것 같다. 야만성이 짙었던 엄혹한 시대에 그는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지키며 다양한 삶을 올곧게 살아왔다.

옹근 반세기, 그가 지나온 시대는 양심적인 사제가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기는 힘겨운 격동기였다. 30대에 정의구현사제단을 조직하고 민주회복국민회의 대변인으로 역사의 무대에 섰을 때나, 50년이 되는 오늘, 여전히 생기찬 활동은 보기 드문 현상이다. 세월의 강하(江河)에서 익사하거나 변신하거나 제 잇속을 찾느라 신발을 거꾸로 신은 명사가 수없이 많았다. 
 
함세웅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원 안중근의사 묘역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11주년 추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함세웅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원 안중근의사 묘역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11주년 추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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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조음(主調音)은 '정의'이다. 이를 구현하고자 직선으로 걷는 길에서 과거에 머물지 않았고, 소속 교계와의 불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한 희생은 남에게 의존하면서 무임승차를 하지도 않았고, 한 번도 자신의 도정에서 뒷걸음치지도 않았다. 세속에 살면서 세상의 일부이기보다 오연히 시대의 징표를 찾는 구도자이기를 바랐다.  

참 사람은 삼기(三氣)가 있어야 한다 했던가, 의기ㆍ용기와 결기를 말한다.

"너희는 하늘의 징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표는 분별하지 못 하느냐"는 예수관에 따라 감옥행을 은총으로 여기며 박해의 늪 속을 걸으면서도 인간적 따뜻함과 온화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그것은 오로지 투철한 역사관과 '삼기'가 체화됨으로써 가능했다. 격변기에 동시대인들과 역사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내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현대사의 궂은 비를 온 몸으로 맞으면서도 여전히 맑은 성정을 간직하고 넉넉한 양덕(陽德)을 지켜낸 그의 삶은, 시대적 사표를 찾기 어려운 시대에서 대체가 쉽지 않는 인물임이 확실해보인다. "민주화운동에서 질적인 면에서나 양적인 면에서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 - 민주화운동의 막후 대부로 알려진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김정남씨의 증언이다.
 
임종국선생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 발족식에서 인삿말을 하는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임종국선생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 발족식에서 인삿말을 하는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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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자의식, 항상 자신을 담근질하면서 사제의 가장 내면적인 과제로서 정의를 설정하고 이를 추구하면서 강단있게 살아온 삶이었다.

 신에게 배반한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충실한 것도 아닌
 오직 자기만을 위한 저 비열한 천사의 무리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천사'들이 설치는 교계에서, 중독성이 강한 물신(物神)사회에서, 불의한 권력과 부패한 재력과 물신화된 교계 지도자를 예찬하는 풍각쟁이들 속에서, 누구라도 결곡한 자세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기는 쉽지 않았다. 함세웅 신부의 신념과 활동이 당최 그들의 도식에는, 그들의 문법에는 들어맞지 않았을 것이다. 해서 '이단자', '지가 뭔데', 비웃음과 따돌림이 따르고, 그 자리에 외롬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면 각자 그 책임이 있다. 대장부가 책임을 안다는 것은 인간 구실의 시작이며, 책임을 진다는 것은 인간구실의 마지막이다."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함세웅 회장을 비롯한 회원과 후손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제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무역 보복으로 답한 아베 정권을 규탄했다.

이날 이들은 아베의 만행을 항의하는 뜻으로 안중근, 윤봉길 의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와 임시정부 국무위원들 사진을 들고 일본 정부를 규탄했다.

이들은 “일본의 경제 보복은 경제 침략이고, 일본 제품의 불매운동은 제2의 항일운동으로 규정한다”라며 “국민은 과거 만행에 반성 없이 도발을 일삼는 일본 정부의 행태에 분노하며 일제 강점기 항일 의병처럼 더욱 단결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고 말했다.
▲ 독립운동가 사진 들고 소녀상에 모인 시민들 “일본은 경제 보복 철회하라”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함세웅 회장을 비롯한 회원과 후손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제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무역 보복으로 답한 아베 정권을 규탄했다. 이날 이들은 아베의 만행을 항의하는 뜻으로 안중근, 윤봉길 의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와 임시정부 국무위원들 사진을 들고 일본 정부를 규탄했다. 이들은 “일본의 경제 보복은 경제 침략이고, 일본 제품의 불매운동은 제2의 항일운동으로 규정한다”라며 “국민은 과거 만행에 반성 없이 도발을 일삼는 일본 정부의 행태에 분노하며 일제 강점기 항일 의병처럼 더욱 단결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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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혁명의 선각자 량치차오(梁啓超)가 '방관자를 꾸짖으며' 던진 말이다. 그는 세상에 태어난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며 살았다. 그리고 사람(신앙인)이 어찌 살아야 하는가의 길을 보여주었다. 

<워싱턴 포스트>가 '미국의 양심'으로 선정한 바 있는 존 매케인은 "자신에게 진실했고 다른 사람에게 거짓되지 않았다."고 <사람의 품격>에서 한 발언이 떠오른다. 함세웅 신부는 그리 살고자 하였고, 그렇게 살았다.  

함세웅이 말했다. "(예수)의 부활은 결코 관념적 교리가 아닙니다. 불의와 맞서 싸우는 정의의 실천입니다.(…) 부활은 정의에 대한 열망과 불의와 거짓과의 결별에서 확인됩니다."
 
함석헌 선생과 함세웅 신부
 함석헌 선생과 함세웅 신부
ⓒ 함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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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다시 변하고 있다.

'정의'라는 고전적인 그리고 보편적인 명제가 진영에 따라 바뀌고, '관제 정의'와 '관제 상식'이 날뛰기 시작했다.

'검찰공화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변할수록 옛 모습을 닮아가는" 한국정치의 비극이 재현되지 않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무엇보다 함세웅 신부를 다시 역사의 현장으로 소환하지 않았으면 싶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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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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