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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김주현 여신금융협회 회장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중구 여신금융협회에서 열린 소감 발표 및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금융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김주현 여신금융협회 회장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중구 여신금융협회에서 열린 소감 발표 및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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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분리 완화'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윤석열 정부 초대 금융위원장으로 지명된 김주현 후보자가 지난 8일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를 완화하겠다면서 금산분리를 언급하면서다. 14일에는 금융당국이 금융협회들과 규제 완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금산분리란 금융자본인 은행과 산업자본인 기업이 서로의 업종을 소유하거나 일정 지분 이상 지배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산업자본이 금융산업을 지배하게 될 경우 생길 수 있는 시장 경쟁 제한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한 장치다. 

예를 들어 특정 대기업이 시중 은행을 지배하게 될 경우 고객이 맡겨놓은 예금인 은행 돈을 쉽게 동원해 투자에 나설 수 있고, 이는 은행을 가지고 있지 않은 기업들보다 자본 조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특히 투자 부실이 생길 경우 은행에 돈을 맡긴 국민들에게도 큰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산업자본의 금융회사 소유를 엄격하게 제한해 왔다. 

하지만 그동안 산업계에서는 기술 발전 및 사업 환경 변화를 이유로 금산분리 완화를 요구해 왔다. 특히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일부 대기업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금산분리 완화 필요성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져 왔다. 

그런데 최근 금산분리 완화를 외치는 이들은 오히려 시중은행이다. 이들은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에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은행 또한 산업 영역에 진출할 수 있도록 활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중은행들이 입장을 바꾸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플랫폼 사업, 우리도 하겠다"는 시중은행들
 
신한은행은 지난해 12월 금융업계 최초로 배달앱 '땡겨요'를 출시해 배달앱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2월 금융업계 최초로 배달앱 "땡겨요"를 출시해 배달앱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 땡겨요 웹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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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기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점주님을 위한 상생 배달앱"

지난해 12월 배달앱 시장에 등장한 신한은행의 배달 플랫폼 '땡겨요'의 홍보 문구다. 땡겨요는 낮은 중개 수수료를 앞세워 스스로를 소상공인들을 위한 상생 배달앱이라고 소개한다. 땡겨요는 금융업계가 배달앱 시장에 진출한 첫 사례다.

다른 업종 진출을 선언한 건 신한은행뿐 아니다. 국민은행 또한 지난 2019년 10월 '리브엠'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금융권 최초 알뜰폰 사업자로 변신했다. 저렴한 통신 요금과 금융 서비스와의 결합 혜택을 선보이면서 리브엠의 가입자 수는 지난달 30만명을 돌파했다.

이처럼 시중은행이 고유 업무인 금융업이 아닌 다른 산업으로 눈길을 돌리는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출현으로 비대면·모바일 금융거래가 각광받으면서 오프라인 위주 서비스를 제공해온 은행권으로선 수익 다변화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환경 변화로 시중은행은 예금·대출 등 고유업무 보다 부수업무에 더 공을 들여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은행이 수행할 수 있는 부수업무는 은행법에 적힌 몇 가지 분야로 제한된다.

때문에 은행업계에선 역차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카카오뱅크나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과 비교하면 시중은행에 대한 제약이 과도하다는 것. 불만의 핵심에는 금산분리제가 있다.  

실제 금산분리에 따라, 특정 회사의 전체 자본 총액의 25% 이상을 계열사인 비금융회사의 자본이 차지하고 있거나 비금융회사의 자산 총액 합계액이 2조원 이상인 '비금융주력자'는 시중은행 주식을 4%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의결권이 없는 주식이라면 최대 10%까지도 가능하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쏘아올린 '금산분리 완화'
 
 카카오 뱅크 모바일 및 PC 화면.
  카카오 뱅크 모바일 및 PC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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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인터넷전문은행에 적용되는 기준은 보다 넉넉하다. 2018년 제정된 인터넷전문은행법에 따라 산업자본은 의결권 있는 인터넷전문은행 지분을 최대 34%까지 보유할 수 있다. 인터넷은행이라는 혁신 기술과 중·저신용자들에게 중금리 가계대출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로 금산분리를 일부 완화해준 까닭이다. 다만 지분을 보유할 수 있는 산업자본은 정보통신업(ICT) 그룹으로 제한했다.

실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비금융주력자'에 해당하는 카카오는 현재 27.2%에 달하는 카카오뱅크 지분을 갖고 있다. 국내 최초로 탄생한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의 최대주주는 비씨카드로 34%의 지분을,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토스뱅크 보통주의 34%를 보유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부수업무 규제와 금산분리 제도로 은행권이 비금융사업으로 진출하기가 쉽지 않다"며 "금산분리가 완화되면 더 자유로운 시장 진출이 가능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인터넷전문은행에만 적용되는 특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시중은행(1000억원) 기준보다 적은 250억원의 자본으로 은행을 세우고 여신업무를 할 수 있다. 이 또한 특례에 따라 최저자본금 기준을 완화해준 덕이다. 설립 초기,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자본비율 관련 특혜도 받았다. 시중은행이 지켜야 할 각종 자본비율을 촘촘하게 정해둔 '바젤Ⅲ'이 아닌 총자본비율 기준만을 정해둔 '바젤Ⅰ'을 적용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융위원회는 올 초 은행법 감독규정 개정안을 통해 인터넷전문은행도 기업 대출 시 시중은행과 동일한 '예대율 규제'를 받도록 했다. 기업대출 심사에 필요한 현장 실사, 기업인 대면 거래도 허용했다. 기업대출이 가능하도록 물꼬를 터준 셈이다. '중·저신용자들을 향한 중금리 가계대출'이라는 당초 인터넷전문은행의 설립 목적이 무색해진 셈이다. 

물론 원칙적으론 대면 영업을 할 수 없다거나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를 금지한 점 등 인터넷전문은행에만 적용되는 별도 규제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산분리 제도상 지분이나 자본금 기준 등 '수치'만 놓고 보면 시중은행과 비슷한 업무를 하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규제를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은행권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과 함께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요구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최근 은행권은 내친 김에 부동산·유통·헬스 등 비금융 업종뿐만 아니라 가상자산 서비스까지 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3월 은행연합회는 '은행업계 제언'이라는 제목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제출용 보고서를 통해 "공신력 있는 은행이 가상자산 관련 사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은행법상 은행의 부수업무에 가상자산업을 추가해달라"고 요구했다. 

금산분리 완화를 둘러싼 우려들

전문가들 역시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이 '동일 기능 동일 규제' 원칙에 어긋나는 기준을 적용받고 있다는 데 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산분리를 완화해 시중은행이 다른 산업군으로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에는 '은행 부실'을 이유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은 다른 규제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규제를 풀어 시중은행이 가상자산 등 다른 업종으로 진출한다면 은행의 부실 위험은 커진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 경우)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는 등 새로운 규제를 추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은행예금으로 물건을 살 수 있도록 결제 수단으로 인정해주는 등 시중은행은 그동안 은행으로서의 특권을 충분히 누려왔고 은행은 그 자체로 엄청난 수익을 내는 사업"이라며 "시중은행이 금산분리 규제를 피하겠다고 한다면 그간 받아온 특권까지 내려놓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그룹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에만 15조원에 육박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 역시 "(금산분리 완화는) 우려가 크다. 은행의 건전성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라며 "금산분리 완화로 위험한 투자나 자금 운용이 이뤄져 저축은행 사태처럼 은행 또한 부실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저축은행 사태란 지난 2011년 부산저축은행 등 상호저축은행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분별없는 대출을 감행했다가 부실이 발생하면서, 투자자들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사건이다. 예금자 보호 대상인 5000만원 이하 예금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예금보험공사는 27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도 했다.

'동일 기능 동일 규제' 원칙을 지키기 위해선 시중은행의 규제를 풀어줄 게 아니라 오히려 인터넷전문은행에게 주어졌던 특혜를 거둬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황세운 자본시장 연구원은 "빅테크가 지배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출현으로 금융 건전성은 오히려 느슨해지고 있다"며 "점차 인터넷전문은행이 빅테크를 기반으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릴 가능성도 커지고 있는 만큼 그동안의 혜택을 거둬들이고 인터넷전문은행쪽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그:#금산분리, #인터넷전문은행, #금융위원회, #김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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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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