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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앞서 이야기했던 선죽교를 뒤로 하고 우리는 산을 향해 이동했습니다. 거기에서 성곽을 보았는데 한양 근교의 요새와 꼭 같더군요. 깊은 산성인데 승려이자 군인인 자들이 살고 있었지요.

여기에서 우리는 험준하고 긴 협곡을 타고 고난도의 등반을 감행했답니다. 길이 워낙 험하여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지요. 귀로에 오르기도 전에 이미 밤이 되어 버렸어요.

중군(中軍)은 약 30명의 수행원 규모가 너무 적다고 생각했는지 "Pusan"(부상負商)이라고 불리는 단체의 사람들을 다수 소집하더군요. 그들로 하여금 하산 길을 안내하도록 했습니다. 이들 (보)부상들은 빈민, 행상, 짐꾼 등으로 이루어진 거대 집단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수백년 전부터 조직체를 결성하였습니다.

누가 죽임을 당하면 그들은 엄히 보복을 한답니다.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그들의 조직은 매우 강성해졌답니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 그들의 수효는 전국적으로 약 10만 명에 이릅니다. 

그들의 세력이 강해지자 조정에서는 그들을 회유할 필요를 느꼈고 그래서 그들을 합법적인 정부 조직이 되도록 했습니다. 부상 담당 관리가 임명되어 조직의 일원으로 참여하지요. 관에서 인정받는다는 생각에 부상들은 긍지와 충성심이  매우 높습니다. 조정에서는 무슨 일이든 필요하면 그들을 동원하지요. 군대처럼 말이지요.

그들의 주된 역할은 정탐이랍니다. 이를테면 도주한 살인범이나 절도범을 정부에서 잡으려 할 때 부상 담당 관리를 통해 범인에 대한 정보나 인상 착의를 확보하여 부상의 우두머리에게 넘기지요. 그러면 우두머리는 그걸 통 안에 적어 넣은 다음 통을 꼭꼭 밀봉합니다. 그런 다음 그걸 부상단원에게 전달하면 그 정보가 전국 방방 곳곳에 퍼지게 되지요. 그렇게 되어 십에 아홉은 범인이 체포됩니다.

어둠이 깃들었는데 보부상들이 산 넘어 산지사방에서 몰려오더군요. 누더기를 걸친 강인하고 험한 사나이들이 큰 횃불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횃불을 보고 몰려든 무리가 금방 80명 가량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의 안애로 우리는 어둠을 뚫고 깊고 험준한 협곡을 헤쳐 나갔습니다. 도중에 갑자기 앞이 칠흙같이 깜깜해지더니 급류가 쏟어지는 굉음이 들렸으며  거기를 지나 우리는 외딴 정자에 다다랐습니다. 정자 주위에는 소나무 관솔로 이글거리는 횃불과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도 보부상들이 모여 있었는데 적어도 100명을 헤아렸습니다.
  
정자 안에는 큰 멍석이 깔려 있었습니다. 내게 제공된 찬합은 그 크기가 중군 것의 두 배였습니다. 찬합에는 기이한 음식이 담긴 작은 접시들이 층층이 놓여 있더군요. 중군은 보부상단의 원로 대여섯명으로부터 인사를 받더군요. 나를 이곳 산속에서 접대하기 위하여 주변의 보부상들을 이렇게 불러 모은 거라고 중군이 내게 설명해주더군요.

조선의 심산유곡에서 기이한 복장을 한 용맹하고 거친 무리들로부터 홀로 접대를 받게 되었으니, 나로서는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지요. 식사 잔치가 끝난 후에 우리는 전적으로 보부상의 호위에 의존하여 길을 나아갔습니다.

수행원들은 후미로 물러났고 행렬은 길어졌습니다. 구불구불한 산모퉁이를 감아돌 때에는 행렬이 서로 떨어지기도 하였지요. 길 양옆쪽으로는 횃불을 들고 달리는 보부상들은 길게 소리를 내지릅니다. 메아리가 골짜기에 울려 퍼지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우리의 소재지를 조직원들에게 알리는 거였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새벽 2시가 되었고  인가의 문은 모두 닫혀 있었지요. 그러나 주막과 푸줏간은 열려 있더군요. 푸줏간에선 다음날 팔기 위하여 도살한 돼지를 씻고 있었습니다.

이후의 여정에 대해서는 간단히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는 송도 즉 개성을 떠나 구릉진 논길을  따라  지루하게 종일 길을 간 끝에 평택(Pungtak)이라는 마을에 이르러 하루를 보냈답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에 바로 한강변의 영종포 Yong-jong-po(영종도 예단포)로 향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강화에서 온 군관 한명이 나타나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포구에 마련된 두 척의 큰 돛단배에 올라 한 시간을 가자 강화도 해안에 닿더군요. 그곳은 1871년 우리 미국의 전투병들이 포격했던 요새와 기까운 곳이었습니다. 

해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더군요. 그 중에 우리를 영접하기 위해  나온 판관도 있었는데, 가장 높은 벼슬아치였습니다. 여덟 명의 짐꾼이 물살을 헤치고 우리 배쪽으로 다가 오더군요. 그들은 호피로 덮힌 가마 한 채를 끙끙대며 가져 왔답니다. 나는 그 가마에 앉아  해안에 이르렀습니다. 가마에서 내리자 마중나온  판관이 내게 붉은색의 초청장을 건냈습니다. 

기이한 전통 악대가 앞장서서 행렬을 안내하더군요.  악대는 송도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했습니다. 우리는 악대가 내는 기괴한 저음을 따라 이동한 뒤 이윽고 강화도 성벽에 나 있는 육중한 아치형 대문으로 들어갔답니다. 우리는 인근의 요새로 안내되었는데 그곳의 누각에서 큰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뚱뚱한 판관은 고령으로 노쇠해 보였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응시했습니다. 나는 누각에서 그와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그에게 조선 밖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오페라 안경과 같은 물건들을  보여 주었지요. 그는 잠시 수수께끼 같은 표정을 짓더니갑자기 웃음을 띄며 " 왜 당신은 중국인과 전혀 같지 않나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군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는 아직 외국인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으며 외국인들은 해만 끼치는 야만인이나 다름 없다고 여겼다는 군요. 뭐 당시, 조선인들은 거의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요. 

강화에서 이틀을 보냈습니다. 바깥 구경도 좀 하였지만 많은 시간을 밥 먹는데 보냈죠. 강화에서 아름다운 화문석과 말 잔등에 가득 실린 한약재를 선물로 받았구요. 

태그:#조지 포크, #강화도, #보부상, #송도, #오페라 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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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만남이길 바래 봅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제2의 코리아 여행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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