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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금요일, 학부모 상담 주간이 마무리됐다. 코로나로 인해 석 달 가까이 연기된 것이다. 예년 같으면 입학식이 끝나고 반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이 익숙해지는 3월 중순쯤 열렸다. 부모에게 직접 전해 듣는 아이들의 습관이나 핸디캡 등은 추후 생활 지도에 큰 도움이 된다.

아버지의 학부모 상담 의뢰가 늘었다
 
학부모 상담
 학부모 상담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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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의 경우, 학부모 상담 주간은 내내 북새통을 이룬다. 듣자니까, 갓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초1이나 중1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2학년만 돼도 썰렁한 분위기다. 담임교사를 만나기 위해 부러 학교를 찾기는커녕 전화 상담을 의뢰하는 학부모조차 한 손에 꼽을 정도다.

물론, 학사일정 상 학부모 상담 주간이 끝났다고 해서 상담이 멈추는 건 아니다. 당장 다음 주에도 세 건의 대면 상담과 여러 건의 전화 상담이 예약되어 있다. 연일 수업에다 업무까지 빡빡한 일과지만, 학부모 상담에 소홀할 순 없다. 교육의 절반은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만남은 교사인 내게도 큰 보탬이 된다. 대개 적게는 한두 살에서, 많게는 대여섯 살 터울의 비슷한 또래라서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의 모습을 비춰보기도 하고, 그들의 자녀 교육법과 나의 그것을 견줘보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막내가 반 아이들과 같은 또래다.

또, 예년의 경우와 자연스럽게 비교되어 우리 교육의 현실을 곱씹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과거와 달라진 풍경은 어떤 것이고,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는 건 또 무엇인지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언뜻 그들과의 상담이 오랜 친구와의 수다처럼 반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예년과 확연히 달라진 풍경이라면, 아버지의 상담 의뢰가 늘었다는 점을 첫손에 꼽겠다.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가 홀로 학교를 찾아오는 경우가 태반이긴 하다. 부러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하면 다짜고짜 어머니와 대화하라며 부리나케 전화를 끊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근래 들어 달라졌다. 부모가 퇴근 후 함께 오는 경우도 많고, 되레 아버지와 상담하라며 황급히 전화기를 건네는 어머니도 있다. 아이 교육 문제라면 앞으로 아버지에게 연락하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이유야 여럿일 테지만, 그만큼 가정환경이 각양각색이라는 뜻이다.

고작 몇 달 만난 담임교사보다 아이를 더 모르는 학부모가 있다는 점도 두드러진다. 아이의 유별난 행동 특성을 말하면, 설마 하는 눈빛으로 놀라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편식이 심하다거나 지나치게 산만하다고 하면, 집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꾸하기 일쑤다.

하나같이 아이가 방과 후에 누구와 어울리는지, 어떤 운동을 즐겨하는지, 요즘 무슨 일로 스트레스를 겪는지 등에 대해 잘 모르는 눈치다. 심지어 아이의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조차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도 있다. 그럴 땐 묻는 게 실례인 양 느껴졌다.

멋쩍어하며 담임교사더러 아이의 생활 습관을 바로잡아달라고 눙치는 건 학부모 상담의 오래된 공식이다. 식습관을 비롯한 기본적인 생활 습관은 가정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학교만 믿겠다는 투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는데, 자꾸만 그 거울을 외면하는 꼴이다.

아이의 성적만 궁금한 학부모
 
아이들의 성적만 관심 있는 학부모
 아이들의 성적만 관심 있는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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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아이가 성장해온 모습을 듣고 싶은 담임교사의 바람과는 달리 학부모는 자꾸만 아이의 성적만 꼬치꼬치 캐묻는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상담 내용의 팔 할은 아이의 성적 이야기다. 담임교사의 학부모 상담 준비는 아이의 성적표를 출력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굳이 성적표를 꺼내 보여줄 필요가 없는 학부모들도 적지 않다. 교내외 시험을 막론하고 아이의 교과별 점수를 줄줄 읊어대고, 전문가 뺨칠 만큼 성적 추이를 분석해내는 이들도 있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 교사의 경우, 그들로부터 입시 지도 연수를 받게 되는 셈이다.

심지어 담임교사 앞에서 주변 학교의 입시 지도 방법을 들려주며 장단점을 비교하는 이들마저 있다. 오지랖 넓게도, 그들은 인근 학교의 대학 진학 실적까지 훤히 꿰고 있다. 정시와 수시의 모집 비율은 말할 것도 없고 전형 별 대비 항목에 이르기까지 '1타 강사'가 따로 없다.

어디서 구했는지, 다른 중학교를 졸업한 반 친구들의 성적까지 상세히 알고 있어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들과 상담하다 보면, 우리 교육을 황폐화하는 주범이 '이웃집 엄친아의 부모'라는 말을 실감한다. 이 또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뿐더러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만 같다.

입시 정보에 관한 그들 사이의 양극화는 어찌 손써볼 수 없을 만큼 극심하다. 교사의 설명에 하품할 정도로 해박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내신 성적을 9등급으로 산출한다는 것조차 모르는 학부모도 있다. 한 학부모와는 원점수와 표준점수의 차이를 설명하다가 상담이 끝났다.

어려서부터 학원에 길들어져 온 것도 달라지지 않은 풍경 중 하나다. 방과 후 수업과 야자를 신청하지 않았다면, 열이면 열 모두 곧장 학원에 가는 경우다. 요즘처럼 기말고사를 앞둔 때엔 멀쩡히 방과 후 수업과 야자를 하던 아이도 '족집게 특강'을 듣기 위해 학원을 찾는다.

학원가에도 대학처럼 서열이 존재하고 학원별로 특화된 교과가 있다고 한다. 특정 학원은 별도의 입시를 거쳐야만 등록할 수 있고, 일부 학원 사이에선 아이의 성적과 특성을 고려해 서로 추천하는 곳도 있다. 이는 상담 도중 학부모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다.

기실 명문대 입시의 3요소 중 하나라는 '엄마의 정보력'이란 것도 십여 년 동안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같은 고민을 하는 학부모들과 교류하면서 체득한 결과물이다. 거칠게 말해서, '학원 중독'의 증표와 같은 것이다. 학원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들이 '갑'이고 교사가 '을'이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아이에 대한 덕담이 오간 뒤 일단 성적과 학원 이야기가 시작되면 상담이 끝날 때까지 주제가 고정된다. 당최 다른 게 끼어들 여지가 없다. 분명 아이에 관한 내용이지만, 담임교사가 알고 싶어 하는 것과 학부모가 듣고 싶어 하는 것 사이의 괴리가 커서다.

아이의 건강조차 성적의 종속 변수처럼 여기는 이들도 의외로 많다. 건강해야 하는 이유를 수능이 치러지는 고3 때까지 버티기 위한 조건처럼 여긴다. 체력이 너무 약하다며 운동을 시키라고 하면, 되레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며 대학에 진학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대꾸한다.

요즘 학교에선 계단을 걷다 인대가 손상되고, 어깨를 두드리다 탈골되고, 축구공에 맞아 뼈가 부러지는 황당한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걸핏하면 두통과 복통 등을 호소하며 조퇴시켜 달라며 하소연한다. 4층 교실까지 걸어 오르기 힘들다며 승강기를 타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학원을 보내는 대신 그 돈으로 아이에게 보약을 지어 먹이라는 조언을 학부모들은 농담처럼 받아들인다. 대뜸 고등학생에겐 경중이 다르다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면 저절로 아픈 곳도 낫게 되고 체력도 좋아질 거라며 장담하듯 말했다.

주야장천 성적만 되뇔지언정 아이의 학교생활에 관심을 두고 전화를 걸고 부러 찾아오는 학부모는 그나마 낫다. 정작 상담이 꼭 필요한 아이의 학부모들은 만나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언제든 학교로 찾아와주십사 부탁하면, 그들은 십중팔구 시간 내기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전화 상담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담임교사는 학부모로부터 아이의 가정생활에 대해 많이 듣고 싶지만, 그들은 질문에 예와 아니오로 답하기 일쑤다. 대화가 워낙 짧고 자주 끊기다 보니, 통화 도중 데면데면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전화를 끊기 전 상담의 마지막 멘트는 전가의 보도처럼 "선생님만 믿겠다"는 거다.

본디 학부모 상담은 서먹한 아이들을 사전에 파악하기 위한 목적인데, 올해처럼 아이들과 친해진 뒤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들의 교육관과 말투, 행동 등을 통해 아이들의 모습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진리를 새삼 깨달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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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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