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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교
 월영교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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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은 역사와 문화, 유물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곳이다. '한국 속의 작은 한국'이라는 말에 걸맞게 각종 볼거리가 넘친다. 이러다 보니 정작 일상과 가까운 평범한 것들은 놓치기 십상이다. 가장 평범하고 서민적인 것, 지역적인 것을 찾는 이유다. 

안동의 두 번째 여행지 월영교다. 이 다리는 무덤에서 발견된 조선 중기 원이 엄마의 미투리를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한다. 길이 387m에 폭 3.6m의 목책 인도교로 2003년 개통했다. 미투리는 삼이나 노 따위로 짚신처럼 삼은 신을 말한다.

먼저 간 남편 이용태를 위해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한 켤레 미투리(신발) 모양을 이 다리 모습에 담았다. 월영교란 다리 이름은 안동댐 건설 수몰로 월영대가 이곳으로 오게 된 인연과 지명 등을 참고로 시민 의견을 모아 지어졌다.  
 
"자내 샹해 날다려 닐오대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쟈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 긔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난고."(하략)

(당신 늘 나에게 이르되, 둘이서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자식은 누구한테 기대어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원이 엄마의 편지 중 일부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같이 살자든 남편이 31세에 사망했다. 이 편지는 420년 후인 1998년 무덤 이장 시 발굴되어 화제가 됐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편지를 쓴 원이 엄마에 대한 궁금증도 상당했다. 

이 편지는 한글로 쓰여졌다.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후에도 상소문, 시문, 실록, 일기 등은 대부분 한자로만 썼다. 선비들의 한글 반대도 심했다. 훈민정음 반포 후 100여 년 만에 쓰여진 한글 편지다. 아직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 글로 편지를 쓴 원이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원이 엄마가 병든 남편 이응태의 쾌유를 빌며 만들었다는 미투리(신발)은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실을 섞어서 삼았다고 한다. 그런 미투리를 신어보지도 못하고 죽은 남편에게 죽어서라도 가족을 보살펴달라는 애절한 당부와 함께 미투리를 한지에 고이 싸서 무덤에 넣었다. 

원이 엄마가 만든 미투리를 본따 만든 월영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다. 비를 맞으며 다리를 걷는 기분도 꽤 괜찮다. 월영교는 사랑의 다리로 부부가 같이 손을 잡고 걸으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백년해로한다고 전해진다.
 
월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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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5일 오후 안동호엔 물안개가 자욱했다. 보슬비를 맞으며 유유자적 보트 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한 것처럼...

인공호수나 몽리답의 저수지로 사용되었던 시설들이 둘레길, 원이엄마 테마길 등으로 관광 자원화 되고 있다. 안동댐 인공호수의 월영교는 일상에 지친 몸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태그:#안동, #월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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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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