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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오늘 이야기는 1884년 10월 초에 이루어진 조선 여행입니다. 앞의 이야기에 이어집니다. 

우리는 강화천을 횡단하여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약 40마일 정도 서울 쪽으로 이동한 후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틀어 제물포로 갔답니다. 그 도중에 어떤 평범한 마을에 들렀지요. 그 고을 수령의 저택을 방문했는데 벼룩과 이가 드글거린 것 외에는 별로 인상적인 게 없었습니다.

제물포에서 나는 일본인 여관에 들어갔습니다. 수행원들은 조선여관에 묵었구요. 일본 여관에서는 서양음식을 먹을 수 있었지요. 제물포의 고관은 날더러 정부의 손님이라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그에게 짐꾼 수고비와 수행원들의 숙박비만 지불토록 하고 내 경비는 자담하였습니다.

제물포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우리는 한양의 남쪽에 있는 수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곳에서 편안하게 하루를 지낸 다음 다시 북동쪽으로 이동하여 광주라는 소도시에 도착하였답니다.

그곳은 높은 산으로 빙 둘러싸여 있는 컵 모양의 분지였습니다. 주위를 견고한 성벽이 두르고 있어 마치 요새 같았습니다. 그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높은 성벽에 오르니 사방 수 마일이 안전에 펼쳐지더군요. 작고 아늑한 고을이 눈부신 단풍으로 물든 채 숲 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한 무리의 소년들이 두껍게 땋은 댕기 머리를 하고, 얇고 긴 옷 차림으로 길 앞에 늘 나타났습니다. 아이들은 나의 앞쪽으로 걸어가면서 무언가 놀이를 하더군요. 나를  맞으러 한양에서 파견되어 온 비장 한 명이 동행했는데 청. 황. 홍색의 얇은 옷자락을 걸쳤더군요. 마을로 들어 서자 사람들이 나의 가마를 단풍잎으로 단장해 주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숙소를 향해 서서히 이동하였는데 필시 그 모습이 구경 거리였을 겁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날 서울로 떠났습니다. 차양을 친 두 척의 배가 송파에 이르자 악단과 음식이 들어 왔습니다. 송파는 광주에서 10마일 떨어진 강변 마을입니다. 그곳으로부터 고요한 강을 따라 미끄러지듯 나아갔습니다. 15마일 쯤 가니 한양을 마주 보게 되었지요. 한양 쪽 강변에 접안한 후 하선하여 한양으로 들어섰습니다.

청계천 집에 도착하니 10월 7일 저녁 6시이더군요. 나는 최초의 내륙 여행에서 돌아와 부모님께 쓴 편지에서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정말로 행복하였습니다. 벼룩과 이불 결함과 기타 여러 불편을 견뎌야 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런 것들도 조선의 한 부분입니다. 머지 않아 조선이 발전한 후에는 아마 향수를 느끼게 될 그런 것들이지요.

저는 그와는 다른 측면에서 매우 참신하고 독특한 조선적인 것들을 보고 경험하기도 하였지요. 저는 제가 조선을 본 최초의 서양인 혹은 미국인이라는 특이한 사실에 자아도취되지만은 않았답니다. 그 이상으로 사람들이 저에게 보여준 호기심과 분명한 호감을 즐겼지요.

가는 곳 마다 제가 사람들에게 매우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고 느낍니다. 실제로 제가 방문한 곳의 관리들이 그런 관찰을 조정에 올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짧은 한 번의 여행으로 이 나라에 대하여 개괄하는 것은 적절치 않겠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땅은 오래 전에 이곳으로 이주해 온 산림족(山林族)의 나라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그래서 모든 발전이 멈춘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그런 통상 같은 것은 없답니다. 원초적인 산림 습속을 지니고 있는 이 사람들은 중국 문자, 건축, 종교 등을 숭상합니다. 그외의 다른 세상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습니다. 모름지기 중국 문화만을 따른답니다.

통상을 할 수 있는 잉여의 제품이 없고 생산자에게 지불할 돈도 없지요. 이 나라와 외국과 정상적인 무역이 이루어지려면 필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금은 매우 많은 것 같습니다. 이것이 외국인들을 충동시킬 수 있을 겁니다."
-1884. 10. 10 편지에서

나는 이  편지를 쓴 후로 저는 두 주간 동안 숙소의 사무실에 콕 박혀 아주 바쁜 시간을 보냈답니다. 매일 새벽 한두 시까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내리 일을 했답니다.
그러다 보니 시력이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지요. 나는 열성을 다하여 보고서를 작성하여 본국에 보냈습니다. 새로운 건의사항을 간곡히 담았지요. 

나는 제 2차 내륙 여행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한 겨울엔 여행을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죠. 나는 당시 다음해 내년 5월까지는 가능하면 모든 여행을 마치고 싶었습니다. 전국 탐사 여행을 마치고 나서, 만일 이 나라의 장래가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조선을 떠나 귀국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땅에서 입신양명을 할 수 있고 아울러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기꺼이 머물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요.

조선에서 처음 맞는 가을은 맑고 상쾌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모두 감기로 고생을 했습니다. 나도 일주일간 몸이 으스스 하였답니다. 때로는 손이 곱고 얼얼해져 일을 멈춰야 하지요. 집에 난방이 잘 안 돼 있어 그렇답니다.

난방은 온돌로 하는데 밖의 아궁이에서 불을 땐 답니다. 온돌이 달구어지면 방이 숨막힐 듯 답답해집니다. 외국인은 이에 두통을 느끼기 십상이지요. 나는 차라리 추운 것이 나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온돌에 점점 익숙해지겠지 하고 바랄 뿐이었지요.   

사람들이 집 안팍에서 엄청 두꺼운 솜옷을 입었습니다. 서양인 옷보다 따뜻하답니다. 그리고 그들은 추위를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나의 다음 여행은 머나먼 여정이 될 겁니다. 조선 땅의 남반부를 돌 터이니까요. 한양에서 정남쪽으로 발길을 옮겨 지방 도시들을 지나 바다에 이를 것입니다. 그런 다음 동쪽 해안을 따라 가서 부산에 이릅니다.

부산에서부터는 산을 넘어 한양으로 돌아 올 생각이지요. 약 35일간의 여정이 될 겁니다. 외국인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일 것이고 또 조선 땅의 오지를 탐험하는 것이어서 벌써부터 마음이 들떴습니다.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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