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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얼음골하면 흔히 떠올리는 곳이 경남 밀양이다. 천황산 북쪽 해발 600m 지점에 한여름에 얼음이 얼고 처서가 지날 때 얼음이 녹는 신비한 지대라 여름철 휴가지로 명성을 더한다.

그런데 의성 빙계군립공원에도 풍혈이라는 곳이 있다. 여기도 여름에는 매우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이곳도 밀양 못지않게 세종실록지리지에서도 언급한 유서 깊은 명승이자 천연기념물 제527호이기도 하다.

빙계군립공원과 의성 탑리 사이에는 사촌마을과 쌍벽을 이루는 전통마을이 하나 자리 잡고 있는데, 영천 이씨의 집성촌인 산운마을이다. 산운마을 한가운데에는 바로 국가민속문화재 제237호인 소우당 고택이 있다. 고택 왼쪽으로 연지와 정원이 있는데 조선시대 주택으로는 매우 드문 형태 중 하나다.

의성 탑리 동쪽 빙계계곡과 산운마을을 한 번 탐방해보자.

의성 빙계군립공원

빙계군립공원에 가려면 탑리리 오층석탑이 있는 금성면에서 68번 지방도를 타고 가음면 방향으로 쭉 가다가 현리2리 마을회관에서 좌측으로 꺾자. 쭉 가다보면 다리 건너 양쪽에 빙벽으로 표현한 돌기둥들이 나오는데, 이곳부터가 빙계군립공원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편에 목조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빙월루라는 현판이 보인다. 누각 아래로 들어가보니 빙계서원이라는 현판이, 좌우로 시습재와 학이재가 있다. 중앙에 강당이 강당 앞 양쪽에 기숙사 두 건물이 동서로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옛 사립학교인 서원의 구조다.
 
빙계서원 전경
 빙계서원 전경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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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빙계서원은 1576년 '장천'이라는 이름으로 왕실에서 서원의 이름현판과 노비와 서적을 지원받았다. 이를 사액서원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이후 불타 오늘날 위치로 이건되어 이름을 '빙계'로 고쳤다. 건물 부재는 요즘 지어진 것처럼 보이는데, 구한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폐허가 된 후 거의 100년이 지난 2006년에 유교문화권 관광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이다.

이날 날이 더워서 그런지 계곡에 사람들이 많이 있다. 무지개다리를 지나 보이는 오토캠핑장에도 수많은 차박 관광객들이 많았다. 나는 다시 차를 세우고 무지개다리 방향으로 걸어서 내려갔는데, 마을 쪽에 있는 석탑을 하나 보기 위해서다.

석탑은 오층석탑으로 이뤄졌는데, 내가 며칠 전에 봤던 국보 탑리리 오층석탑과 빼닮았다. 이름은 보물 제327호 의성 빙산사지 오층석탑. 실제로 신라 말 또는 고려 초에 탑리의 것을 복제하여 건립된 탑이라고 전해진다. 복제품이라서 그런지 탑리 것보다 격이 떨어진다고 말하지만, 임진왜란 때 불탄 빙산사와 함께했기에 탑리 것보단 덜 외롭지 않았을까?
 
보물 제327호 의성 빙산사지 오층석탑
 보물 제327호 의성 빙산사지 오층석탑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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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에서 북쪽으로 가면 왜 이곳이 빙계(氷溪), 우리말로 풀면 얼음골짜기라고 이름 지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가 있다. 가지런한 벽돌건물 현판에는 '빙혈'이라고 써 있다. 빙혈 안에 들어가니 몸에 한기가 서려온다.

빙혈 내 온도는 영상 4도. 크고 작은 암설(풍화 작용으로 파괴되어 생긴 바위 부스러기)이 퇴적된 경사면에서 겨울에 저장된 차가운 공기가 여름의 더운 공기와 만나서 물방울과 얼음이 만들어진다. 반대로 겨울에는 암설에서 따뜻한 공기가 나와 얼음이 얼지 않는다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이곳을 '풍혈'이라고 했는데, 일부 내용을 적어본다.
 
빙혈 외부
 빙혈 외부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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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 내부. 영상 4도.
 빙혈 내부. 영상 4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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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지리지의 <풍혈>. 빙혈 입구 왼쪽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면 볼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풍혈>. 빙혈 입구 왼쪽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면 볼 수 있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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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夏後, 氷始凝, 極熱則氷堅, 霾雨則氷釋。 春秋不寒不熱, 冬則溫氣如春...(...입하(立夏) 후에 얼음이 비로소 얼고, 극히 더우면 얼음이 단단하게 굳으며, 흙비[雨]가 오면 얼음이 풀린다. 봄과 가을에는 춥지도 하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며, 겨울에는 따뜻한 기운이 봄과 같다...)

오늘날도 조선시대처럼 여름에 얼음이 어는 시원한 곳이 되면서 여름 피서지로 삼기에는 딱 좋은 곳이다. 아까 봤던 쌍계천 위 무지개다리로 다시 돌아오니, 날이 더워서 사람들이 계곡에 들어가 더위를 식히는 광경이 눈에 띈다.
 
쌍계천 무지개다리. 날이 더워서 그런지 시원한 계곡물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쌍계천 무지개다리. 날이 더워서 그런지 시원한 계곡물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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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이씨 집성촌 산운마을

빙계계곡에서 다시 탑리방향으로 나오면 오른편에 한옥들로 가득한 마을이 보인다. 내가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마을에서 가장 왼쪽 편 세 유허비 옆에 있는 전통 건물인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학동 이광준의 공을 기리고 후배를 양성하기 위해 영조 때 지은 건물인 학록정사다.

이광준이라. 영천 이씨로 평산 신씨의 딸과 혼인하면서 처가가 있던 이곳에 정착했다. 이후 오늘날까지 영천 이씨의 집성촌인 산운마을로 이어졌다. 이광준을 비롯해서 그의 아들 둘 민성과 민환 그리고 이민환의 아들 정상과 정기가 삼대에 걸쳐 문과 급제를 한 명문가이기도 하다.
 
산운마을 학록정사. 영천 이 씨 마을 시조인 학동 이광준의 공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는 기관이었다. 학록정사 현판은 표암 강세황의 작품이다.
 산운마을 학록정사. 영천 이 씨 마을 시조인 학동 이광준의 공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는 기관이었다. 학록정사 현판은 표암 강세황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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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록정사 옆에 나란히 있는 고택들도 들어갈 수 있었다. 먼저 내가 들어간 곳은 점우당 고택. 사랑채가 상당히 깨끗하게 보이는데, 죽파 이장섭이 1900년 무렵에 지은 집이다. 사랑채와 안채가 서로 연결되어 'ㄷ'자형을 하고 있고, 건너편에는 일자형 헛간채가 있다. 중간에 공간이 트인 'ㅁ'자형인데, 경상도 고택의 변형구조다.

점우당 왼편에도 고풍스러운 저택이 하나 있는데, 현판을 보니 운곡당이라고 적혀 있다. 점우당보다 약 100년 전 이희발이 영월부사로 있을 때 지은 집이다. 운곡당을 자세히 보면 중간에 기와가 있는 담장이 가운데에 떡 하고 서 있는데, 안채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담장 안으로 들어가니 안채의 방문들이 촘촘히 있다. 분지 지형으로 인해 더운 여름을 대비할 수 있는 집 구조라고 해야 할까나.
 
점우당. 트인 'ㅁ'자형 구조의 저택이다.
 점우당. 트인 "ㅁ"자형 구조의 저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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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당 사랑채. 가운데에 담장이 눈에 띄는데, 안채가 보이지 않도록 막은 것이다.
 운곡당 사랑채. 가운데에 담장이 눈에 띄는데, 안채가 보이지 않도록 막은 것이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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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운마을의 명물 국가민속문화재 재237호 소우당 고택은 반드시 빠지지 말고 관람하자. 고택에 방문했을 때 집 주인이신 이견 선생님을 뵐 수 있었다. 소우당을 지은 사람은 집주인 어르신의 7대조인 소우 이가발. 19세기 초기에 지었다. 'ㄴ'자의 사랑채와 'ㄱ'자의 안채가 혼합된 'ㅁ'자형 양식의 경상도 고택이다.

하지만 고택만 보고 가는 불상사가 없도록 하자. 소우당의 핵심은 왼편에 있는 후원이다. 보통 후원의 경우 왕실이나 사찰 건물에서 주로 보는 형태지만, 조선 시대 때 사택에 후원을 조성하는 것은 상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후원에는 소나무, 상수리나무와 가지각색의 나무들로 운치를 더한다. 특히 가을에는 단풍으로 물든다고 하는데 이때 소우당 후원을 잊지 말고 감상하자.

후원의 설계도 풍수지리에 맞게 이뤄졌다. 원래 소우당은 금성산의 음기가 상당히 강한 지역이라 남자들이 장수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후원 위 아래로 삐죽삐죽한 돌을 세워놓았는데, 남근석을 꽂아 두어 음양의 조화를 꾀했다. 남근석 북서로는 평평한 직사각형 돌이 있는데, 한양의 임금을 바라보고 유교의례를 행했던 망궐례의 흔적이다.
 
소우당 고택 사랑채
 소우당 고택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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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우당 후원. 조선시대 개인 저택에 후원이 있는 것은 상당히 드물다.
 소우당 후원. 조선시대 개인 저택에 후원이 있는 것은 상당히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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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우당 후원의 남근석. 금성산의 강한 음기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소우당 후원의 남근석. 금성산의 강한 음기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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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는 일자형으로 이뤄진 작은 별채가 하나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정남향이 아니다. 주인 어르신의 말씀에 의하면, 정남향으로 짓게 되면 마을의 재산을 독점해 버려서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과의 조화를 위해 약간 틀어서 지었다고. 그래서인가, 별당 자체도 드러나기 보다는 오히려 후원의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다.

여름에 얼음이 얼고 가을에 얼음이 녹는 풍혈로 유명한 빙계군립공원과 영천 이씨 산운마을. 둘 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유서 깊은 관광지다. 여름 휴가철 의성에 올 일이 있다면 쌍계천에서 시원한 물을 즐긴 다음, 산운마을 고택으로 가서 한옥스테이를 체험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여름을 놓쳤으면 늦가을에 산운마을의 소우당을 찾아가 연못과 어우러진 단풍들을 만나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 동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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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행테마 중앙선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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