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04 17:46최종 업데이트 22.07.0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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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 전문가이자 토지정의 운동가인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전강수 교수가 경제정의와 부동산 문제에 관해 정론을 피력하고 그때그때 부각하는 경제 이슈를 해설하는 '전강수의 경세제민'을 연재합니다. '경세제민'은 세상을 잘 경영해 국민을 편안히 한다는 뜻으로 썼으며 이 말을 줄인 것이 '경제'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잠시 실현했던 '평등지권 사회'를 회복하기를 꿈꿉니다.[편집자말]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토지에서 자라는 밀. 자료사진. ⓒ 연합뉴스


토지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또 토지 없이 이루어지는 생산은 하나도 없다. 토지가 이처럼 인간의 생존에 필수 불가결하다면 또 천부자원으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면, 이를 어떻게 다루는 것이 옳을까?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토지사유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토지의 사적 소유를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과연 그 생각이 맞는 걸까?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유재산의 원칙은 어떤 사람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규율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자기의 소유권과 그로부터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이 원칙을 오남용하는 사람도 많다. 그들의 주장은 대개 사람이 어떤 물건이라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고 그의 소유권은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식이다.


어떤 경로로든 소유권이 성립하고 또 그것이 제도적으로 인정되면 거기에 절대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 옳을까? 성질상 소유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하는데도 어쩌다가 소유권이 성립한 경우라도 그렇게 해야 할까? 성질상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사람, 공기, 바다, 강, 투표권, 공직, 인체 장기 등 한둘이 아니다. 사유재산 제도의 철학을 정립한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가 살아 돌아와서 일단 성립한 소유권은 무조건 정당하다는 주장을 접한다면 아연실색할지 모른다. 그가 주장한 사유재산의 원칙은 이와는 전혀 다르니 말이다.

로크의 사유재산 원칙과 토지사유제
   
로크에 따르면, 어떤 물건에 사적 소유권이 성립하는 것은 누군가 그것을 만들기 위해 노동이라는 비용을 치렀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용을 치르고 획득한 물건에 대해서는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로크의 생각이었다. 개인의 인격과 신체, 그리고 노동력이 그 개인의 것이라면 그의 노동력을 발휘해서 생산한 물건도 그의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논거였다.

따라서 로크가 말한 사유재산의 원칙이란, 어떤 물건은 그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다시 말해 비용을 치른 사람이 소유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상식'을 근사한 형태로 표현한 데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식을 근거로 생각하면,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유하고 거래하는 노예제도는 당연히 부정된다. 공기, 바다, 강, 투표권, 공직, 인체 장기 등에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로크가 정립한 원래의 사유재산 원칙에 따르자면, 토지에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는 제도도 용인하기 어렵다. 토지를 만들기 위해 비용을 치른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거기에 사적 소유권을 부여할 수 있겠는가? 창조주 외에 토지에 대해 절대적·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자료사진. ⓒ 연합뉴스

 
시장 거래는 소유권 정당성을 보장하는가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시장에서 대가를 지불하고 매입한 소유권은 정당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매매란 정당성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소유권을 이전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도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재산권이 매매를 거친다고 해서 도덕적 정당성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헨리 조지, 김윤상 역,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 경북대학교 출판부, 2012, 39쪽)라고 했던 헨리 조지의 음성을 들려줄 필요가 있다.

조지는 노예를 사냥한 사람에게 노예 소유권을 인정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대가를 지불하고 노예를 매입한 사람에게도 노예 소유권을 인정할 이유도 없다고 주장했다. 부당한 취득으로 소유권을 확보했다면 대가를 지불하고 그 소유권을 매입하더라도 정당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매입으로 소유권이 생긴다는 생각은 의외로 뿌리가 깊다. 조지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제가 살아온 시기의 미국에서는 매입에 의해 소유권이 생긴다는 논리가 노예제 옹호의 공통된 근거였습니다. 정치인도 그랬고 법률가도 성직자도 주교도 그랬습니다. 온 나라의 대다수 국민이 이 논리를 수용했습니다. 아내와 남편 그리고 자식과 부모를 떼어 놓고 강제 노동을 시키고 노동의 결실을 가로채고 그리스도교도가 그리스도교도를 사고파는 일이 이 논리에 의해 정당화되었습니다."(헨리 조지,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 40쪽)

오늘날 문명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돈을 내면 사람을 사서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고파는 일이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수 세기 전에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서 했던 짓을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대로 한다면 그는 바로 납치범 또는 인신매매범으로 체포될 것이다. 세월이 지나는 사이에 사람들의 인식과 제도가 정반대로 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헨리 조지가 살았던 시대에 미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현대인들은 매입으로 소유권이 생긴다는 논리에 사로잡혀 토지사유제가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노예제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이 정반대로 바뀌었듯이 장차 토지사유제에 대한 인식도 그렇게 바뀔지.

인간을 소유의 대상으로 삼는 노예제와 마찬가지로 토지사유제도 강압과 폭력에 의해 성립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볼 때, 한 민족의 영토 확보에는 대개 무력이 동원되었으며, 확보한 영토를 사회 구성원에게 분배하는 데도 정치적 힘의 논리가 크게 작용했다. 개인의 근면과 저축이 아니라 강탈과 강점이 토지 소유권의 기원이었던 셈이다.

힘에 의한 토지 소유권 확보는 역사상 최초로 토지 소유권이 등장했던 시대에만 행해진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된 전쟁은 사실상 토지 쟁탈전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수자원, 유전, 주파수대, 오염권, 해안 접근권 등 '넓은 의미의 토지'를 로비와 압력 등 경제외적 수단으로 사유화하려는 시도가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고, 후진국 여러 지역에서는 선진국의 탐욕스러운 자산가들이 땅을 헐값에 대거 매입하는 사실상의 강탈이 행해지고 있다.

토지를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정당하지 않다면, 어쩌다 토지 소유권이 성립한 뒤 여러 번 거래가 이뤄져 소유자가 바뀌었다 할지라도 소유권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그러니 '내 땅은 내가 열심히 번 돈으로 산 거야. 아무도 손댈 수 없어!'라는 식의 주장은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토지사유제 부정은 사유재산 전체 부정으로 이어지나
 

헨리 조지 ⓒ 위키미디어 공용


모든 생산은 토지에서 원료를 얻기 때문에 토지의 사적 소유가 정당하지 않다면 노동 생산물의 사적 소유도 정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토지사유제의 부정은 사유재산 제도 전체의 부정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토지에서 얻는 원료에다 노동을 가해서 만드는 생산물에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과 토지 그 자체에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전자에는 노동하는 인간의 적극적인 노력과 희생이 들어가는 반면, 후자에는 그런 것들이 일절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 생산물에 대한 소유권은 사실상 일시적인 사용권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토지라는 '창고'로부터 원료를 얻어 생산물을 만들지만 그 순간부터 원료는 다시 창고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시작한다. 나무는 썩고 쇠는 녹슬고 돌은 분해된다. 헨리 조지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우리가 아는 한, 물질은 영원하고 힘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햇살에 떠다니는 작은 티끌 하나, 나뭇잎을 흔드는 미세한 자극 하나도 우리가 창조하거나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옮기고 결합한 생산물은 끊임없는 자연의 흐름 속에서 스러지고 맙니다. 그리하여 자연을 원료로 삼아 인간이 생산한 것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해도 단지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 우리 모두를 위해 마련된 원천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

인간은 자기 노동으로 생산한 토지의 결실은 사적으로 소유해도 됩니다. 이런 물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의 흔적을 잃고 원료가 나온 원천인 자연으로 돌아가므로 특정인이 소유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토지 그 자체를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토지는 계속해서 생산 원료를 추출해야 하는 원천일 뿐 아니라 인간의 몸 그 자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같은 책, 45~46쪽)
 
만든 사람에게 소유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스스로 만들지 않은 물건에도 적용하려면 상당한 논리 비약을 허용해야 한다. 흔히 강자들은 이런 억지 논리로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고 하지만, 상식을 가진 일반 시민이 여기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토지의 효율적 이용이 곤란한가

마지막으로, 토지에 절대적·배타적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토지자원의 효율적 이용이 어려워진다는 주장에 대해 검토해 보자. 토지사유제 옹호론자들은 토지에 절대적·배타적 소유권을 인정해야만 토지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가능하고, 오용을 막을 수 있으며, 토지 이용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도심의 공원이나 해양자원처럼 개인에게 어떤 권리도 인정되지 않는 토지나 자연자원은 오남용되는 경우가 많다. 국가가 철저하게 관리·감독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이런 자원으로부터 최대한의 혜택을 얻어내는 일에 몰두한다. 대가를 전혀 내지 않고도 혜택을 얻을 수 있으니 자원의 오남용이 극단화하기 쉽다. 1960년대에 생물학자 개릿 하딘(Garrett Hardin, 1915~2003)은 이런 현상을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이라고 명명하고, 자원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딘의 견해는 토지에 절대적·배타적 소유권을 인정해야만 오남용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의 유력한 근거로 활용되곤 한다. 중세 유럽 농촌의 공유지에서는 촌락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가축을 방목하거나 삼림 자원을 채취할 수 있었으므로, 그들 사이에 '공유지 사용 많이 하기' 경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결과는 공유지의 황폐화였다. 오늘날에도 개인의 권리가 성립하지 않은 공유자원에서는 이런 비극이 종종 발생한다. 공유지의 비극을 방지하려면 사용자에게 사용하는 만큼 대가를 내도록 하거나 공유지를 오남용하지 못하도록 공동체가 감시하면 된다.

문제를 해결할 정답이 엄연히 따로 있는데, 토지사유제 옹호론자들은 엉뚱하게 개인에게 소유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나는 결과를 자초하는 짓이다. 투기를 초래하고 소수에게 불로소득을 안겨주는 또 다른 심각한 폐해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사용자에게 일정 기간 배타적 사용권을 설정해주고 사용 분량에 상응하여 요금을 징수하거나 남용을 막기 위한 관리제도를 마련하면 충분함에도 왜 그들은 아예 절대적 소유권을 몽땅 개인에게 넘기자고 주장하는 것일까? 토지 사유화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을 챙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토지사유제의 폐해를 우려한 사상가들
 

장 자크 루소 ⓒ 위키미디어 공용

    
유감스럽게도 역사는 토지사유제 옹호론자의 주장대로 진행되어왔고 지금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지각 있는 사상가들은 토지제도가 이렇게 바뀌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이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와 같이 사회주의 사회를 꿈꾸는 좌파 계열 인사들이 아니었다는 점에 유의하라.
 
"처음으로 어떤 땅에 울타리를 두른 다음 '여기는 내 땅이다'라고 스스로 말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 말을 믿을 만큼 단순하다는 사실을 알아낸 인간이야말로 문명사회의 진짜 창시자다. 누군가 말뚝을 뽑고 구덩이를 메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저 사기꾼 얘기랑 듣지 마시오. 과일은 모두의 것이고 땅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당신은 파멸할 겁니다!'라고 외쳤다면, 얼마나 많은 범죄, 전쟁, 살인, 비참, 공포로부터 인류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인가?"(장 자크 루소 지음, 이재형 옮김, <인간 불평등 기원론>, 문예출판사, 117~118쪽).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소리높이 외쳤던 대표적인 계몽사상가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의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구체제(앙시앙 레짐)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의 길을 활짝 열었던 프랑스 대혁명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루소는 인류가 겪은 수많은 재앙의 기원을 토지사유제 도입에서 찾았다.
 

토머스 페인 ⓒ 위키미디어 공용

 
"경작과 함께 시작된 토지독점은 최대의 악을 초래했다. 모든 국가의 반 이상 국민에게서 마땅히 이뤄졌어야 할 보상도 하지 않은 채 자연적 유산을 박탈하는 바람에 그 이전에는 없었던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이 양산되었다. … 경작 및 문명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토지사유제는 마땅히 이뤄졌어야 할 보상도 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서 그 재산을 빼앗아 갔다."(Thomas Paine, Agrarian Justice, London: W. T. Sherwin, 1817, pp.7~8)

미국 독립전쟁, 즉 미국혁명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의 말이다. 페인이 1776년 1월 발간한 <상식>(Common Sense)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몇 달 만에 50만 부 이상이 팔려, 같은 해 7월 4일 발표된 <독립선언문>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나중에 그는 프랑스 대혁명을 옹호하는 글을 발표하고 혁명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토지에 대한 권리를 모두가 누려야 할 자연적 유산으로 보고, 토지사유제가 도입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그 권리를 박탈당하고 가난하고 비참한 상태로 떨어졌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페인은 기본소득을 주창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의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이 갖는 토지권에 대한 보상이라는 차원에서 제안된 것이다.

오늘날 경제학자 가운데 토지사유제를 정면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지만, 예전 경제학자 가운데서는 그런 인물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는 토지 소유자를 "스스로 노동도 하지 않고 조심도 하지 않고, 마치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처럼 자기의 의도·계획과는 무관하게 수입을 얻는 유일한 계급"이라고 혹평하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지주는 심지는 않고 거두기만 좋아한다"라고 기술함으로써 토지사유제에 대한 불만을 표명했다.

고전학파 경제학을 집대성한 존 스튜어트 밀(John S. Mill, 1806~1873)도 "사유재산의 신성함을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신성함이 토지 재산권에도 같은 정도로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토지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토지는 모든 생물이 생래적(生來的)으로 물려받은 유산이다"라고 하면서 토머스 페인과 유사한 견해를 피력했다.

한계혁명을 주도한 레옹 발라(Leon Walras, 1834~1910)도 "개인의 능력에 의한 생산물을 모두 개인에게 귀속시키기 위해서는 국가가 토지를 소유하고 그 임대료로 국가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에 와서도 이런 유의 견해를 펼친 경제학자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 중에는 로버트 솔로(Robert M. Solow), 제임스 토빈(James Tobin), 프랑코 모딜리아니(Franco Modigliani), 윌리엄 비크리(William Vickrey)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들어 있다.

사실 긴 인류 역사 가운데 토지사유제가 합법화한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고대 로마 사회와 근대 사회 정도가 거기에 해당한다. 더 오랫동안 지속했던 토지제도는 사회 구성원에게 평등한 토지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헨리 조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초기의 인류는-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언제나 평등한 토지권을 인정했었습니다. 노동 생산물에 대한 소유권을 보장하기 위해 개인별로 토지에 대한 배타적 사용권을 부여할 필요가 생긴 후에도, 평등을 충분히 보장하는 방법을 각 사회의 발전 단계에 맞게 마련해 왔습니다. 어떤 민족은 농토를 주기적으로 재분배하고 가축을 기르거나 땔감을 마련하는 토지는 공동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또 거주와 경작에 필요한 토지를 각 가족에게 분배하지만, 필요성이 사라지면 누구든 다른 사람이 그 땅을 차지하여 쓸 수 있게 하기도 했습니다. 모세의 토지법도 성격은 같습니다. 일단 토지를 공평하게 분배한 다음, 어느 가족도 토지를 빼앗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희년 제도를 두었습니다. 즉 매입한 토지라 하더라도 50년마다 원 소유자의 자손에게 되돌려 주도록 하였습니다."(헨리 조지, 앞의 책, 22쪽).
 
헨리 조지의 말대로라면, 인류는 긴긴 세월 동안 모두에게 토지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장치를 작동시켜 온 셈이다. 토지사유제가 합법화한 오늘날에도 세계 여러 나라의 법제 안에는 그 장치의 희미한 흔적이 남아 있다.

토지사유제가 합법적 제도로 정착한 결과는 참혹하다. 모든 사람이 비슷비슷하게 땅을 갖게 되리라는 생각은 몽상가의 머릿속에서만 실현 가능할 뿐, 실제로 땅은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어 갔다. 땅을 독점하면 인간을 소유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두 경우 모두 소유자가 다른 사람이 노동한 결실을 취할 수 있고 노동자의 상전이 될 수 있다. 토지 없이 생산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생존의 터전을 소유하면 결국 사람을 소유하게 된다.

더욱이 토지사유제는 다른 사람의 노동을 착취하기에 노예제보다 더 간편하고 경제적이다. 노예를 사냥하고 가두고 먹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노예제에서 흔히 사용했던 채찍질도 필요 없다. 가만히 두면 사람이 제 발로 찾아와서 주인으로 모실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현대판 노예제에서 노동자의 처지는 처량하기 짝이 없다.

"토지사유제는 맷돌의 아랫돌이다. 물질적 진보는 맷돌의 윗돌이다. 노동 계층은 증가하는 압력을 받으면서 맷돌 가운데서 갈리고 있다." 헨리 조지의 말이다(헨리 조지, 김윤상 옮김, <진보와 빈곤>, 비봉출판사, 2016, 362쪽).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서울사회경제연구소의 [SIES 이슈와 정책] 54호로 발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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