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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할 때 지하철역 부근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사방에서 전력 질주를 시작한다. 직장인에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상이다. 매일 전국에서 펼쳐지는 평범한 모닝 달리기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쏜살같이 달려 거뜬하게 버스를, 지하철을 잡아타고 출근하던 때가 있었다. 아들 유치원 체육대회에서 아빠 달리기 일등을 하고, 계주까지 나가 우승한 경력도 있다.

영하 12도의 날씨, 실외 환승역으로 열차가 들어오고 있어도 이제 나는 뛰지 않는다. 출근길에 지하철이 코앞으로 들어와도, 마을버스가 눈앞에서 떠날 기척을 해도, 녹색 신호등이 깜빡이며 유혹해도 절대 뛰지 않는다.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걸으며 다음을 기다린다.

느긋한 성격이라서, 초조하지 않아서 벌이는 행동이 아니다. 그깟 소소한 시간 따위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도 아니다. 허리가 아파서 뛰지 못할 뿐이다. 3년 정도 됐을까. 나이 먹음과 동시에 서서히 허리도 맛이 가기 시작했다.

8시간 이상 앉아서 일하는 '직장인'
 
MBC에브리원 '무한걸스'에서 드라마 '직장의 신'의 '미스김'을 패러디한 '미스 무걸'이 회사에서 아침 운동을 하는 장면.
▲ 드라마 "직장의 신"의 "미스김"을 패러디한 "미스 무걸" 캡처 MBC에브리원 "무한걸스"에서 드라마 "직장의 신"의 "미스김"을 패러디한 "미스 무걸"이 회사에서 아침 운동을 하는 장면.
ⓒ MBC에브리원 무한걸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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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신나게 달리고 춤추던 시절을 떠올리면 그리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불과 3~4년 전에는 회사에서 댄스 동우회 활동을 했다. 허리가 아프면 진통제를 먹고 동우회 활동을 한 적도 있다. 과한 열정이 부메랑이 돼 허리에 다시 박힌 듯하다. 직장생활 십수 년, 하루 8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아서 보내는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다.

한국인 80% 이상이 평생 한 번 이상의 허리 통증으로 고생한단다. 영업팀 선배가 길을 걷다 주저앉았다. 허리 통증을 참아오던 선배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고 3개월 동안 휴직했다. 팀장은 '너 없어서 나 혼자 접대하러 다니느라 힘들다. 빨리 나와'라고 재촉했다. 선배는 휴직을 마치고 허리를 조심스럽게 부여잡고 술자리에 따라다녔다.

한 후배는 허리가 아파 2개월 휴직을 했다. 돌아왔더니 생뚱맞은 부서로 발령이 났다.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픈 서러운 현실에 한동안 후배는 입에 욕을 달고 살았다. 직장에서는 아픈 사람만 손해다. 건강에 '소싯적' 따위는 아무 소용도 없다.

족저근막염을 앓고 있는 친구가 있다. 장시간 앉아서 일하는 사람은 허리디스크에 시달리지만, 장시간 서서 일하는 사람은 발바닥 질병에 시달리기도 한다. 큰마음 먹고 수술을 했는데도 나아지지 않았다. '나 아픈 사람입니다'라고 회사에 알리고 수술한 게 후회막심이라고 했다. 그저 조금 서 있고 조금 걸으면서 통증을 조절할 뿐이다.

길을 자유롭게 걷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친구 마음을 알 것 같다. 지하철 놓칠까 봐 뛰는 사람이 부러운 내 마음과 똑같다. 출퇴근길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 내려가는 사람들의 모습, 내 눈에는 장관이다. 장마철 빗길에 삐끗해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갈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길을 걷다 실수로 움푹 파인 곳에 발을 내디디면 허리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만 왕복 2시간 34분 머문다. 콩나물시루 전철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한참을 서 있으면 허리가 살려달라고 소리친다. 장시간 앉아 있어도 허리가 불편하다고 눈치를 준다. 마라톤 회의 시간, 안절부절 노심초사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선 채로 회의에 참여했다.

평범한 일상이 깨지면 불행이 찾아온다. 똑같은 직장인인데 왜 나만? 수시로 억울하고 분하다. 타인을 향한 부러움이 수시로 엄습한다. 허리 불편함 없이 살아가는 일상 속 사람들. 그들은 자신이 평범한 축복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모른다.

기립근 강화 운동만이 답이지만

퇴근길 현관 앞에 택배 상자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묵직한 노트북 가방을 메고 허리 숙여 상자들을 정리했다. 들어 올리려던 순간, 찌릿한 통증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무겁지도 않은 택배 상자를 그대로 방치한 아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해 버렸다. 괜한 아이들만 눈 똥그랗게 뜨고 아빠의 화딱지에 봉변당했다. 물론 사과 했다. '아빠 허리가 너무! 아파서' 그랬노라고.

"나의 면밀한 자가진단에 의하면 과도한 운동으로 무릎 디스크가 내려앉은 것 같았다. 그러나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그런 병에 병원에 가면 약이 아니라 물리 요법이나 보조기를 처방할 것 같았고 그게 싫고 무서웠다. 내가 내 몸을 함부로 혹사해서 난 병이니 우선 몸을 달래볼 작정이었다. 제발 죽는 날까지 화장실 출입은 내 발로 하게 해달라고 빌기도 하고 애걸도 해가며 내 몸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성을 다했다."

책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박완서 작가가 67살에 쓴 에세이 내용 중 일부다. 나 역시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박완서 작가보다 내가 훨씬 젊으니 조금은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는 날까지 화장실 출입은 내 발로 가게 해달라고...'라는 문장은 섬뜩했다. 허리를 숙일 수 없어 욕조 앞에 무릎 꿇고 샤워기로 머리 감았던 순간이 불현듯 떠올랐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명확한 그림이 그려졌다. 무조건 내 허리의 비위를 맞추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 

병원에서는 아래쪽 요추 간격이 조금 좁아졌다고 한다. 기상했을 때의 통증은 디스크가 튀어나와 있어서 발생하는 염증 때문이라고 했다. "나이 들어서 그런가요?"라는 질문에 의사는 "이 정도 상태 혹은 더 심해도 50~60대까지 별다른 통증 없는 분도 많아요"라는 씁쓸한 답을 주었다. 

주사도 맞고 약도 먹었다. 도수치료도 한동안 받았다. 병원 조치는 그때뿐이니 운동을 해야 한다. 기립근 강화 운동만이 답이다. 잠자기 전 몇 가지 운동을 한다.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의사는 회사에서 30~40분마다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산책을 하라고 했다. 하지만 일에 파묻혀 있다 보면 금방 점심시간이고, 퇴근 시간이다.

세상 모든 직장인의 허리를 응원합니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주인공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하고 나와 점프를 뛰는 장면
▲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한 장면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주인공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하고 나와 점프를 뛰는 장면
ⓒ 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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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해야겠기에 아침마다 10층까지 계단을 이용해 걸어 올라간다. 의식적으로 바른 자세 유지를 위해 애쓴다. 기립근 강화 운동량을 늘려야 하는데 매일 마음과의 전쟁에 무너진다. '운동하고 자!' Vs. '피곤해, 그냥 자' 내적 갈등에 또 한 번 피곤하다.

그렇다고 침대로 다이빙하듯 눕지도 못한다. 일어날 때도 느릿느릿 조심스럽다. 통증도 경험이다. 허리 대신 허벅지에 힘을 주는 법을 배웠다. 재채기할 때 허리 통증 최소화하는 법도 터득했다.

마을버스가 방지턱에서 덜컹거릴 때마다 허리와 간이 둘 다 내려앉을까 봐 심장이 벌렁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허리를 부여잡고 출근하는 내 모습이 초라하면서도 대견스럽다.

삶을 풍요롭지는 않지만, 일관성 있게 유지하게 해주는 직장이다. 그런데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흉이 되는 직장이기도 하다. 허리 통증 따위를 핑계로 회사를 당장 관둘 수 없는 현실. 그렇다면 운동을 해야 한다. 가족과 함께 먹고 살기 위해 그리고 내가 먼저 살기 위해.

몸무게뿐만 아닌 삶의 무게까지 오롯이 떠받들고 있는 세상 모든 직장인의 허리를 응원합니다.

태그:#직장인, #직장인고질병, #직장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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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직장인,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아빠, 매 순간을 글로 즐기는 기록자. 글 속에 나를 담아 내면을 가꾸는 어쩌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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