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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지난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수학연맹(IMU) 필즈상 시상식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뒤 메달과 함께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지난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수학연맹(IMU) 필즈상 시상식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뒤 메달과 함께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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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마흔 살도 안 된 그의 삶과 말은 우리 교육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울이 됐다. 한국인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프린스턴대 허준이 교수 이야기다. 기말고사가 끝난 뒤라 그와 관련된 언론 기사를 교과서 삼아 계기 수업을 진행했다. 

"천재란, 말 그대로 타고나는 것 아닐까요?"
"학창 시절, 그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언론에선 연일 호들갑이지만,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일 뿐이죠." 


아뿔싸. 아이들이 건네는 부정적인 시선에 순간 당황했다. 그저 '허준이가 허준이했을 뿐'이라는 그들의 말에 더는 수업을 이어갈 수 없을 만큼 분위기가 데면데면해지고 말았다. 내심 대학입시 공부에 치인 아이들을 다독이고 격려할 요량이었는데, 하지 않음만 못한 꼴이 됐다.

"허준이가 허준이했을 뿐"

지금의 고등학생 중 절반이 '수포자(수학 포기자)'라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 시기 또한 점점 빨라져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수학 공부를 내려놨다고 선선히 말하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들에게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 소식은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겠다고 봤다.

그것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다. 아이들 대부분은 허준이 교수를 부러워할지언정 자신과는 무관한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여겼다. 주옥같은 그의 인터뷰 기사를 발췌해 들려주어도 하나같이 시큰둥해하는 표정이었다. 이 경우에 딱 들어맞는 신조어가 '어쩔티비'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어쩔티비'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냥 TV나 봐'라는 뜻이란다.

거칠게 말해서, 아이들은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 소식에 손톱만큼의 자극도 받지 않았다. 그와 비슷한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없다며 푸념하는 아이들이 대다수였다. 출신 배경도, 성장 과정도, 학창 시절도, 심지어 지금 사는 나라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그와의 연결 고리가 없다는 투다.

허준이 교수와 주변 지인들이 꼽은 수상 이유도 아이들의 생각과는 사뭇 결이 달랐다. 당사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언론에서는 가정에서의 심리적 안정감, 자유와 창의성을 중시한 부모의 교육철학, 그리고 타인과의 협력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제시했다. 아이들은 이를 미사여구를 동원한 '언론의 말장난'이라고 무질렀다.

한 아이는 언론 기사의 내용을 '쉽게 풀어서' 다시 설명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지식인 부모를 둔 가정환경과 공동 연구를 장려하는 외국 교육의 수혜 덕분이라고 명토 박았다. 이조차도 허준이 교수의 '지나친 겸손'이라며, 애초 천부적인 수학적 재능을 타고났다고 보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몇몇 아이들은 이미 그의 신상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부모가 각각 통계학과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명문대 교수 출신이고, 현재 그가 미국 국적이라는 점까지 알고 있었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유복한 환경에다 천재성까지 타고났으니 그깟 필즈상이 대수냐며 웃어 보이기도 했다.

노벨상보다 받기 어렵다는 필즈상의 권위를 무람없이 깎아내릴 만큼 죄다 그의 남다른 가정환경을 시샘했다. 고등학교 자퇴 후 검정고시를 거쳐 '넘사벽'인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합격한 것도 강남의 고액 과외 덕일지도 모른다며 눈을 흘겼다. 시인을 꿈꾸며 학교를 그만둔 고등학생이 서울대에 합격하는 경우를 단 한 명이라도 봤느냐며 뜬금없이 되묻기도 했다. 

자퇴도 '능력'이라는 아이들

화제는 자퇴 문제로 이어졌다. 고등학교 자퇴라는 과감한 선택은 그만한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학교 밖에서 대학입시 준비를 시킬 수 있는 경제력과 지적인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결행할 수 있는 선택지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앞뒤 재지 않고 자퇴를 선택하는 것도 능력이라는 이야기다. 

단순 비교하기는 좀 뭣하지만, 최근 스스로 학교를 관두는 아이들의 면면을 보면 허준이 교수와 유사한 면이 있다. 인문계고등학교에서는 학교 수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대학입시를 효율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선택한 경우가 드물지 않다. 지금도 자퇴를 준비하며 기숙학원 등을 알아보는 아이들이 있다.

"만약 제가 학창 시절 허준이 교수와 같은 여건이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학교를 그만두었을 것 같아요.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수능만 준비하면 되잖아요. 아예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5년, 10년 반복하면 가능하지 않겠어요? 윤석열 대통령도 9수 만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잖아요."

나아가 한 아이는 천부적인 재능조차 경제력을 이길 수 없다고 단언했다.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천재성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일부 학교에서 운영되는 영재반 아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나고 자란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령 허준이 교수처럼 수학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해도, 우리 대학입시의 현실에서는 걸출한 수학자가 나오기 힘들다. 아무리 수학이 좋다고 해도 교사가 되고 싶어 수학교육과에 입학할지언정 이른바 순수학문인 수학과에 진학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자면 돈벌이에 초연할 수 있는 경제력이 받쳐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학 최상위권 학생의 진로는 십중팔구 의치대다. 만에 하나, 수학자가 되고 싶다는 아이가 있다면 부모와 교사의 손에 이끌려 이내 진로를 바꾸게 된다. 그때마다 수학자는 배고픈 직업이라며, 순간의 선택이 평생의 행복을 결정한다는 식의 민망한 처세술을 인생 선배의 충고랍시고 건넨다. 

수학자의 길을 걷는다고 모두 허준이 교수처럼 되진 못하지만, 적어도 의사가 되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는 사탕발림에 아이들은 쉽사리 넘어가고 만다. 어른이고 아이고 사회적 명예와 부에 솔깃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우리 사회에선 대학 진학을 앞둔 고작 열여덟 살에 꿈이 획일화하고 재능이 꺾이는 일이 다반사다. 

그럼에도 "교육의 근본적 변화를 바랍니다"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필즈상 수상 언론 브리핑에 온라인으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필즈상 수상 언론 브리핑에 온라인으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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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좋아한다고 모두 손흥민이 될 수 없고, 수학을 좋아한다고 모두 허준이가 될 수 없겠죠. 다만, 손흥민 선수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수상이 우리나라에 축구 붐을 불러일으켰듯이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이 부디 우리나라 수학교육에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 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면서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데다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한 만큼 모쪼록 그의 능력이 우리 사회 공동체를 위해 쓰였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에 못지않은 천재성을 지니고 태어나도 끝내 발현되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마는 현실을 그도 모를 리 없다며 이렇게 매조지었다. 

"필즈상이 순수 수학 연구자들만을 대상으로 한다는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최소한 수학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죄다 의치대 진학만 꿈꾸는 현실만큼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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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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