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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전 완전 유명하지! 나는 부산 살기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부산에 취직하고 3년쯤 됐을 때였다. 부산에서 만나 친해진 타지 출신 M은 영화의 전당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직장 동료가 "거길 아직 안 가봤다고요?"라며 놀란 적이 있었지만, "부산하면 영화! 영화하면 영전!"이라고까지 외치는 M의 말이 좀 의아했다.

영화의 전당이 그렇게 좋은 덴가? 시네필까진 아니어도 자주 영화를 봤는데, 부산엔 갈 데가 너무 많았다. 바닷가만 해도 다대포, 이기대, 송정, 일광, 동백섬, 영도…, 그 외에 감천문화마을, 범어사, 해동 용궁사, 초량 이바구길 등. 거기에 비하면 영화의 전당은 그냥 건물 아닌가 싶었다.
 
영화의 전당은 부산의 센텀시티에 위치한 영상 복합문화 공간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전용관으로 2011년에 개관했다. 야외 광장 위를 덮고 있는 ‘빅 루프’는 하나의 기둥으로 지탱하는 캔틸레버 구조의 건축물 중 세계 최장의 지붕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 "빅루프"의 LED 조명 영화의 전당은 부산의 센텀시티에 위치한 영상 복합문화 공간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전용관으로 2011년에 개관했다. 야외 광장 위를 덮고 있는 ‘빅 루프’는 하나의 기둥으로 지탱하는 캔틸레버 구조의 건축물 중 세계 최장의 지붕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 영화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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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건물'이라니. 영화의 전당은 건물 자체로 해체주의 건축 미학을 구현한 하나의 예술품이라는 평을 듣는 곳이었다. 특히 밤에 보는 경관이 백미다. 처음 영화의 전당을 찾아갔을 때, 색색으로 일렁이는 빛 물결에 멀리서부터 시선을 빼앗겼다. 야외 두레라움 광장을 덮는 지붕인 '빅루프'와 야외극장을 덮는 '스몰루프'의 LED 조명이 이루는 빛이다. 이 빛이 수영강변에 비친 모습은 더욱 환상적이다.

두 지붕은 축구장 약 2.5배에 달할 만큼 넓어서, 지붕에 그늘진 광장은 탁 트여있으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준다. 주말에는 여기서 스케이트 보드나 자전거를 연습하는 사람들이 많다. 평지가 적어 광장이 많지 않은 부산에서는 어쩐지 보기만 해도 여유로워지는 풍경이다.
 
주말에는 스케이트 보드, 자전거, 킥보드 등을 연습하는 아이와 청소년이 많다.
▲ 야외 두레라움 광장 주말에는 스케이트 보드, 자전거, 킥보드 등을 연습하는 아이와 청소년이 많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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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영전 선배' M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 가보면 화려한 건축이 먼저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건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지."

실속이란 이런 것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영화의 전당이 가진 큰 장점은 관람 시 영화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영 시작 전 한두 편의 영화 예고편 외에는 광고가 없고, 영화가 끝날 때는 엔딩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불을 켜지 않는다. 엔딩 테마곡을 들으며 영화가 주는 여운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다.

나는 전주에 살면서 디지털독립영화관을 자주 이용했는데, 부산 영화의 전당은 규모가 커서 일부 대중영화는 물론 독립영화, 고전영화, 예술영화를 더 다양하게 볼 수 있다.
 
1.33 1.66 1.85 2.35화면을 구현할 수 있는 스크린이 있다. 4K 영사기를 갖추고 있고, 3D 구현이 가능하다.
▲ 중극장 1.33 1.66 1.85 2.35화면을 구현할 수 있는 스크린이 있다. 4K 영사기를 갖추고 있고, 3D 구현이 가능하다.
ⓒ 영화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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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 영사기를 갖춘 중극장(413석)에서는 주로 대중영화를 상영하는데, 타 영화관 2배 크기의 스크린으로 볼 수 있어 몰입도가 높다. 소극장(212석)과 인디플러스(36석)에서는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상영한다. 시네마테크(212석)에서는 소규모 영화제나 기획전을 연 13회 정도 운영한다. 
 
7월 17일까지는 제17회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BIKY)가, 오는 7월 19일부터 24일까지는 아랍영화제가 열린다. 사진은 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야외 상영.
▲ 다양한 소규모 영화제 7월 17일까지는 제17회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BIKY)가, 오는 7월 19일부터 24일까지는 아랍영화제가 열린다. 사진은 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야외 상영.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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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인사나 GV(영화 상영 시 작품 관계자들이 직접 방문하여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관객들과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무대) 행사도 자주 있어서, 홈페이지를 잘 지켜보고 예매하면 상영 후 감독과 배우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영화 <범죄도시2>상영 후 감독과 배우들을 만날 수 있었다.
▲ 무대인사 영화 <범죄도시2>상영 후 감독과 배우들을 만날 수 있었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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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강력한 매력은 역시 영화 관람료가 싸다는 것. 일반 극장과 같은 상영작을 성인은 8000원, 청소년 7000원에 볼 수 있고, 유료회원은 2000원 더 할인된다.

이렇게 영전의 매력을 영접한 뒤, 나는 운명처럼 '영세권'으로 이사하면서 문화생활을 구원받았다. 생활비를 줄이면 제일 먼저 문화생활을 포기하게 마련이지만, 한 달에 한두 번 자전거를 타고 영화의 전당에 다녀오는 것은 그리 부담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근처에 살지 않는 분들께도 권하고 싶은 게 있다. 올여름 부산에 며칠 머물 수 있다면, 휴가 중 하루 일정은 영화의 전당 피서 코스를 즐겨보는 것이다.

도심 속 피서란 이런 것

'영전 수요 피서'는 내가 만든 코스다. 일, 독서, 풍경과 영화 감상, 산책을 한 번에 할 수 있다. 시원한 데서 쉬면서 조용히 문화생활도 하고 싶다면 영화의 전당은 아주 괜찮은 피서지다.

우선 낮에 짐을 챙겨 영화의 전당 내 '영화도서관'에 간다. 작년에 개관한 영화도서관은 총 3만 8000여 종의 영화 관련 책과 음반, VOD 등을 갖추고 있다. 통창으로 아름다운 수영강이 보이고, 1인석, 2인석, 다인석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음료 반입도 가능해서 여유를 즐기기 좋다.
 
자료는 관내 열람만 가능하다. 1인석, 2인석, 다인석이 있고 개별 콘센트와 스탠드가 설치되어 있어 편리하다.
▲ 영화도서관 자료는 관내 열람만 가능하다. 1인석, 2인석, 다인석이 있고 개별 콘센트와 스탠드가 설치되어 있어 편리하다.
ⓒ 영화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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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1인석에는 노트북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앉는다.
▲ 수영강이 보이는 창가 자리 창가의 1인석에는 노트북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앉는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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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 자리에 짐을 풀고 담아온 음료를 마시면서 잠시 '강물멍'을 때린다. 책상 위에 개별 콘센트가 있어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기도 한다.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관내에 있는 LP 턴테이블로 영화음악을 듣거나, 한국영상자료원 VOD 전용 열람석에서 고전영화와 독립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다.
 
도서관 내 2곳에 영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턴테이블이 있다.
▲ 영화 음악 턴테이블 도서관 내 2곳에 영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턴테이블이 있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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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가 되어 선선해지면 나간다. 근처 상가에서 식사를 한 뒤(밀면집도 있다)  영화의 전당 바로 건너편 'APEC 나루공원'을 산책한다. 나루공원은 수영강변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는데, 곳곳에 부산비엔날레 조각프로젝트에 출품된 조각들이 있다. 벤치에 앉아 강물의 윤슬을 바라보며 마시는 캔맥주 한 잔도 좋다. 강바람이 잘 불고 노을이 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
 
2005년 APEC 정상회의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부산 센텀시티의 랜드마크 공원이다.
▲ APEC 나루공원 야외원형극장 2005년 APEC 정상회의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부산 센텀시티의 랜드마크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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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공원이 끝나는 곳에 공원과 수영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휴식 공간이 있다.
▲ 좌수영교에서 찍은 나루공원 나루공원이 끝나는 곳에 공원과 수영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휴식 공간이 있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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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가 되면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 간다. 매년 7월에서 9월 사이, 매주 수요일 밤 야외상영회를 한다. 영화제 개·폐막 등의 행사를 하는 야외극장은 2486석의 고정석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스크린도 크고 음향도 웅장하다. 넓은 지붕 덕분에 비가 와도 상영할 수 있는데, 비의 장막 속에서 영화를 보는 운치가 색다르다.

이 피서 코스의 매력은 '안정감'이다.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고, 구역 안에서 많은 이동이 필요치 않아 변수 없는 하루를 누릴 수 있다. 그만큼 자신에게 충실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가족과 편안한 하루를 보내기에도 좋다(야외상영 외에도 7~9월 중 토요일 오후 5시에 야외극장에서 '토요야외콘서트'를 한다. 비프힐 1층 다목적홀에는 'MOI 뮤지엄오브일루전 착시미술관'도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 좋다).
 
작년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중간 회차부터 상영이 연기됐는데, 이번에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운 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운동 삼아 근처에 왔다가 선 채로 체조를 하며 감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야외상영회 작년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중간 회차부터 상영이 연기됐는데, 이번에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운 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운동 삼아 근처에 왔다가 선 채로 체조를 하며 감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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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야외상영은 7월 6일의 <피아니스트의 전설>이었다. 음악영화와 야외극장의 압도적인 음향이 만나니 과연, 거리 두기 동안 정신에 쌓인 노폐물이 털려나가는 기분.

"여름엔 영전이지!" 한껏 만족한 내가 외치면 M은 또 의기양양해진다. "암!!" 본인이 지은 곳인 양 자부심 넘치는 M의 표정이 재밌기만 했었는데, 요즘은 이해가 된다. 나에게도 '영부심'이 생기고 만 것이다.

해운대 바다도 좋고 흰여울마을도 좋지만, 부산의 또다른 매력을 잊고 있다면 이번엔 선택지를 넓혀보는 게 어떨까? 영화는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영화의 전당에는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 영화의 전당 오는 길: https://www.dureraum.org/bcc/contents/contentsView.do?rbsIdx=196
- 영화도서관 이용 시간: 평일 오전 9시30분~오후 8시 / 주말,공휴일 오전 9시~오후 6시 (월요일 휴관, 15세 미만은 보호자 동반)
(https://www.dureraum.org/bcc/contents/contentsView.do?rbsIdx=341)
- 2022 야외상영회 일정: https://www.dureraum.org/bcc/mcontents/progMovList.do?rbsIdx=60&progCode=20220526001
- 2022 토요야외콘서트 일정: https://www.dureraum.org/bcc/ccontents/view.do?rbsIdx=39&contentsCode=20220428001


태그:#영화의전당, #피서, #부산, #여행,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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