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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로 일하면서 우리 조상들이 남긴 다양한 옛그림과 한의학과의 연관성을 들여다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해 온 문화와 생활, 건강 정보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기자말]
에어컨, 선풍기가 보급되기 훨씬 이전, 아니 인류 역사의 초기부터 부채는 더위를 쫓는 대표적인 여름 필수품이었다. '부치는 채'를 줄인 '부채'란 말 역시 오랜 역사를 이어져왔는데, 거의 천 년 전인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단어이다.

조선시대의 사치품, 부채 
 
김홍도, 18세기, 종이에 수묵 담채, 가로 23.9 x 세로 28.1cm
▲ 그림감상 <단원 풍속도첩> 김홍도, 18세기, 종이에 수묵 담채, 가로 23.9 x 세로 28.1cm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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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527호 <단원풍속도첩> 25폭의 그림 중 하나이다. 김홍도의 유명한 풍속화인 <씨름>, <서당>도 모두 이 화첩에 속해있다. '그림 감상'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유생들이 모여 그림을 감상하는 장면을 담았다. 그 중 한 사람은 부채로 코와 입을 가린 채, 눈만 빠끔히 내놓고 그림을 보고 있다.

부채는 크게 방구 부채와 접부채로 나눌 수 있는데, 방구 부채는 둥근 형태의 부채이며 접부채는 접을 수 있게 만들어진 접는 부채이다. 방구 부채는 주로 집안에서 남녀 모두 사용한데 반해, 접부채는 남자가 외출할 때 가지고 다녔다.
 
김정희필선면죽도, 김정희 / 해인사, 정선
 김정희필선면죽도, 김정희 / 해인사, 정선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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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추사 김정희의 '부채에 그린 대나무' 그림이고, 오른쪽은 겸재 정선이 경남 합천에 있는 절인 해인사를 그린 것이다. 

이처럼 이름난 명필가와 화가들은 부채에 그들의 글씨와 그림을 남겼는데, 주로 친한 친구들에게 우정의 징표로 준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부채는 더위를 식힌다는 본래의 목적보다는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아 부챗살을 떼고 보존하여 전해진 것들이다.
 
광복 이후, 길이 21cm / 조선시대, 길이 23.5cm
▲ 선추 광복 이후, 길이 21cm / 조선시대, 길이 23.5cm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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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에 매다는 장식품인 선추이다. 선추는 벼슬을 지낸 양반들이 주로 사용하였는데, 비취나 호박, 나무, 뿔, 금속 등으로 만들어졌다. 때로는 금이나 은을 사용했는데, 이 때문에 부채는 조선시대에 상당한 사치품이기도 했다.

때때로 선추로 옥추단을 달았는데, 옥추단은 벌레나 짐승, 식물, 금속 등 일체의 독을 해독하는 약이다. 단오에 내의원에서 제호탕과 함께 금박을 입힌 옥추단을 임금께 바치는데, 이를 다시 신하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신하들은 옥추단을 오색실에 꿰어 차거나 부채 끝에 선추 대신 달고 다녔고, 이는 재액을 물리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독이 든 음식을 먹거나 독사, 독충에 물렸을 때, 더위로 체증이 생겼을 때, 구토와 설사를 할 때 등 위급한 상황에서 구급약으로 사용했다. 옥추단에는 사향, 웅황, 주사 등의 약재가 들어간다.

부채에도 조상의 지혜가 담겼다
 
이명기, 1792년, 120 x 79.8㎝, 보물 1477호.
▲ 채제공 초상(시복본) 이명기, 1792년, 120 x 79.8㎝, 보물 1477호.
ⓒ 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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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공은 영정조 때의 명재상이자 남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의 초상은 여러 개가 남아있다. 특히 이 초상화는 정조가 화가인 이명기로 하여금, 어진을 그린 이후 채제공의 초상을 그리도록 명한 것이다. 채제공을 얼마나 아끼고 신임했는지 그를 향한 정조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옅은 분홍색의 관복을 입은 그는 손에 부채를 들고 화문석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부채에 매달린 선추 안에는 향을 넣어 향낭이나 향합으로 활용하거나, 이쑤시개나 귀이개, 나침반을 넣어 이용하기도 했다. 부채와 선추 역시 정조가 그에게 하사한 것으로, 이 초상 속 향낭은 현재까지도 남아있다고 한다. 초상화의 왼쪽에는 채제공이 직접 적은 글인 선시군은 향역군은(扇是君恩, 香亦君恩, 부채도 임금님의 은혜 향낭 또한 임금님의 은혜)이라고 적혀 있다.

향낭 안에 들어가는 향이 나는 약재로는 사향, 침향 등이 대표적이다. 사향은 사향노루 수컷의 사향선 분비물로, 적은 양으로도 향이 진하고 오래간다. 역사적으로 조선시대 황진이를 비롯하여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중국 당나라 시대의 양귀비까지 많은 미인들이 사랑한 향이다.

향수나 화장품의 원료로 현재까지도 많이 사용되며, 지금은 머스크 혹은 무스크 향(musk)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사향은 막힌 것을 통하게 하는 힘이 강하여, 혈액 순환을 돕고 정신을 맑게 하는 효능이 있다.

침향은 침향나무의 수지가 함유되어 있는 목재를 말한다. 그 이름(沈; 가라앉다, 잠기다 침)처럼 위로 몰린 기운을 밑으로 내려주는 작용이 있어, 천식이 있거나 숨이 찰 때, 구토를 하거나 딸꾹질을 할 때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사향과 침향은 모두 공진단의 재료로 이용되는 약재이다. 공진단은 녹용, 당귀, 산수유 그리고 사향(혹은 침향이나 목향)으로 이루어친 처방으로, 타고난 기운을 튼튼히 하고 인체의 위아래가 순환이 잘 되도록 한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고 그에 비해 신체의 움직임이 적은 현대인들은 가슴과 머리 쪽은 화와 열이 몰리고 상대적으로 배와 하체는 차가워지기 쉽다. 공진단은 이렇게 위로 몰린 열을 내리고 냉한 아래를 따뜻하게 해준다.

더위를 식혀주는 부채, 그리고 부채를 장식하는 선추. 멋과 아름다움을 위한 장식품인 선추가 때로는 구급약으로 때로는 건강에 좋은 향을 담은 주머니로 기능했다는 것이 새롭다. 이것 또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하나의 예가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윤소정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nurilton7)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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