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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 속 교생이 우영우(박은빈 분)의 뺨을 때리고 교실을 나가는 장면이 교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주변의 많은 교사들이 이 장면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그들은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교사 이미지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었다. 끊임없이 변화를 해도 과거 일부 교사들이 행한 비도덕한 행실로 인해 그들 또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 외부 사람들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달가워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사들의 가장 큰 걱정은 미디어가 현재 존재하지 않는 교사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사람들에게 교사들에 대한 잘못된 믿음 및 불신을 심어준다는 사실인 듯하다. 그리고 미디어는 과거 교사에 대한 안 좋았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불신을 계속해서 지니도록 할 우려도 있다. 이러한 사회의 불신은 교사 개인의 교육적 실천에 무력감을 낳기도 한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해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걸. 열심히 해도 욕 먹는데 굳이 열심히 해야 해?' 등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교사 지인들이 하는 말이다. 그들이 외부인으로부터 좋은 평가와 시선을 받기 위해 교육적 실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로부터 불신과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 교육적 실천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 문제는 교사 집단과 외부인이 바라보는 교사라는 직업의 정체성에서 나온 괴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괴리가 좁혀지지 않으면 교사들의 이러한 문제 제기는 끊임없이 나올 것이고 외부인들 역시 자신들의 경험을 최우선으로 하며 불신을 이어나갈 것이다. 집단 정체성에 대한 교사와 외부 집단의 괴리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이것은 교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에 속한 개인만이 그 집단의 성격이나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집단 정체성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축적돼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이다. 지금도 집단 정체성은 변화를 하고 있고 현재의 교사들이 이 한가운데에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축적된 교사 집단의 정체성에서 교사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이다. 과거의 교사들과 현재의 교사들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속한 집단의 과오를 완전히 지울 순 없다. 과거와 선을 긋고 그것을 단지 과거의 문제로만 치부한다면, 여전히 외부인과 신뢰 및 소통 문제는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을 무시한채 교사가 현재 변화했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과거 학생과 학부모로서 겪은 경험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그들은 그들의 경험에만 의존한 주장을 펼칠 것이다. 

교사 집단은 변화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집단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에선 과거 경험에 비춰서 교사 집단의 정체성을 부여할 수밖에 없다. '우리 교사는 변하고 있고 변화했어', '내 어린 시절의 교사는 나에게 아픈 상처를 줬어', 이 각자의 주장에 유용한 근거로 활용된다. 

나는 교사들이 자신들의 직업 정체성을 바꾸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대학교 입학전까진 교사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다. 하지만 교대를 다니면서 열정적으로 교육에 힘쓰는 교사들을 보면서 내가 알고 있던 교사들이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들 덕분에 교사라는 존재가 어떠한 존재인지, 그들이 어떠한 우리 사회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펼치는지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를 안다고 교사와의 안 좋은 기억을 삭제하고 교사를 무작정 분홍빛 시선으로만 볼 수 없었다.

나는 나이가 아직 30살도 안 된 비교적 최근까지 공교육에 머물렀던 사람이다. 사회인보단 학생으로서의 신분과 기억이 훨씬 더 강하다.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에서 과거의 일로 치부하는 교사의 만행들을 나는 초, 중, 고등학교에 걸쳐서 보고 경험할 수 있었다. 체벌, 촌지 등이 나의 학교에서 이뤄졌었는데 교사 집단이 '이제 우린 더 이상 이거 하지 않으니 당신의 기억을 지워버리세요! 당신의 경험이 전부가 아니에요!' 라고 이야기한다면 우리의 경험은 없던 것이 된 걸까? 아직도 그들의 얼굴과 그 상황이 머릿속에서 선한데 말이다. 내가 좋은 교육자가 되고 싶은 것 역시 이들 덕분이다. 이들과의 기억이 너무나도 뚜렷해 '반면교사'로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미디어가 교사에 대한 외부인의 불신을 야기함으로써 교사 개인을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교사들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그것이 드라마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보이콧을 선언할 만큼의 문제인지에 대해선 공감할 수 없다. 자칫하면 '교사'라는 집단만 미디어에서 성역처럼 다뤄져야 하는 요구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드라마는 본질적으로 작가의 상상력과 경험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이다. 작가가 전달하려는 이야기에 맞는 허구의 등장인물과 배경을 집어넣는 것이다. 드라마엔 무수히 많은 인물과 배경이 등장한다. 그리고 현재에도 무수히 많은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있다.

각 드라마는 주제에 따라 개인을 선하게 묘사하기도 하고, 악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드라마 속 개인은 작가의 주제의식을 전달하기 위한 극적 수단에 불과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그려진 우영우가 교생으로부터 뺨을 맞는 장면은 장애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고충과 그의 단짝 친구를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갖가지 직업들을 활용한다. 교사, 경찰, 의사, 기자, 변호사, 검사, 사업가, 요리사, 종교인 등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직업이 무수히 많은 드라마에서 등장한다. 과연 모든 드라마가 이들을 똑같은 시선으로 그려냈을까? 이들은 어떤 드라마에선 영웅이 되기도 하고, 어떠한 드라마에선 악인이 되기도 한다. 같은 직업이라도 그리는 작가에 따라, 주인공과의 관계에 따라 그려지는 방식이 상이하다. 이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교사, 경찰, 의사, 기자, 변호사, 검사, 사업가, 요리사, 종교인들은 그 안에서도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절대적 선인도 악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드라마에서 그려진 교생의 모습은 교사의 부정적인 부분만을 표현한 점에서 입체성이 떨어진다고 비판받을 수 있겠지만, 장애인으로서 학교에서 살아가는 우영우의 고충을 표현하는 것이 주인 장면에서 교사에게 입체적인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이 드라마에 대한 교사의 비판이 보이콧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부분이 현실과 맞지 않는지를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있다. 예를 들어,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를 현직 의사가 리뷰하는 영상이 있다. 이 의사는 드라마에서 어떤 점을 잘 표현했고 그렇지 않은 점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의사가 아닌 이상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의사의 모습만을 믿을 확률이 있기 때문에 팩트 체크의 형식으로 의사가 드라마를 리뷰하는 것이다. 이 장면이 왜 말이 안 되는지, 체벌 금지가 언제 됐는지 등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문제제기를 했다면 외부인과 소통함으로써 서로의 간극을 좁힐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나는 드라마가 각 직업군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적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적극 환영한다. 어느 집단이나 문제를 갖고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단의 자정 작용에 기댈 수 있으나, 외부적인 압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나는 드라마를 포함한 수많은 미디어가 이러한 외부적 압력에 힘을 보탠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현재 많은 사람들이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사회에서 검찰에게 조사를 받을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이보다 적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문제에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한 동력은 미디어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에서 그들만 알고 있는 문제들을 표면으로 드러냄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더 가까운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교사라는 직업이 갖고 있던 문제점 역시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촌지, 체벌 등 지금 사회에선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겨지는 것들이 과거에는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이뤄졌다. 나는 이것이 교사 집단만의 자정 작용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비판하는 무수히 많은 기사, 드라마, 영화 등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변화에 기여했다고 믿는다. 

이번 사건을 통해 교사들이 목소리를 더 내줬으면 좋겠다. 그들이 어떻게 변했고 미디어에서 그리는 교사의 모습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세상에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중들의 불신으로 무기력해지기 보다 그들이 대중들을 설득해줬으면 한다. 대중들이 갖고 있는 학교와 교사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나 일부 교사의 일탈로 치부하기 보단 그들의 아픈 기억에 공감해주고 현재 그 문제들이 어떻게 개선됐는지를 풀어낸다면 교사에 대한 불신이 나아지지 않을까?

태그:#교육, #교사, #우영우, #불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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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사는 교육을 공부하는 학생. 교육을 혐오해서 교육 대학교에 입학했고 현재는 교육의 희망을 그리고 있다. 나의 궤도에서 나만의 방향, 속도로 꿈을 나아가고 있으며 평생 배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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