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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치러진 모의고사장 모습(자료사진).
 최근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치러진 모의고사장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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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성적 자료를 학교끼리 공유하면 어떨까요?"

인근 학교의 교사로부터 뜬금없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지난 6월 9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치러진 전국연합평가의 성적표가 학교로 발송된 직후였다. 성적표에는 개인별 성적과 함께 학교의 교과별 성적과 등급 분포 등이 전국 평균과 비교해볼 수 있도록 자세히 안내되어 있다.

그의 제안에 순간 당황했다. 이미 오래전 사라진 관행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교육청이 일선 학교와 학부모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관내 모든 학교의 성적을 공개해왔다. 이는 그러나 학교들 간 맹목적인 점수 경쟁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비판적 여론이 들끓어, 공식적으론 금지됐다. 

해마다 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분석 결과 자료만으로도 학교는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다. 실제로 최근 교육감 선거 때 출마한 후보들이 이구동성 '실력 광주'를 공약으로 내건 것도 교육과정평가원의 공개 자료를 보고서다. 당시 지역 언론들도 부화뇌동하여 고장 난 레코드판인 양 연일 '실력 광주'를 거론했다. 

옆 학교 아이들의 성적을 알아서 대체 어디다 쓰려는 걸까. 혹시나 다른 취지가 있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이내 외마디 문자가 도착했다.

'네, 알겠습니다.'

아이들 간 성적 비교는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는 나의 답장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던 모양이다. 

한 줄 세우는 '무한경쟁'... 학교 성적은 민감한 정보

수능이든, 전국연합평가든, 하다못해 교내 시험까지도 대부분 상대평가다. 어떻게든 성적을 계량화하여 한 줄로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백분위와 등급이 중요할 뿐, 100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몇 해 전 수능에서 한국사와 영어 영역이 절대평가로 바뀌었지만, 교내 시험에서는 여전히 상대평가다. 

상대평가는 곧 무한경쟁을 의미한다. 매일 밤새워 공부하고 교과서를 통째로 달달 외운다고 해도 한두 문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시스템이다. 교육감의 공약이 뜻하는 '실력 광주'가 실현된다면, 결과가 어떻든 다른 지역에서는 성적이 하락했다고 뭇매를 맞을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이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이라고나 할까. 

그의 제안을 일언지하 거절했더니, 옆에 있던 동료 교사가 되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알음알음으로 다 알려질 텐데 굳이 옆 학교 교사에게 까칠하게 굴 필요 있느냐는 거다. 그러면서 문자를 보낸 그 교사는 이곳 광주에서 손꼽히는 입시 전문가라고 귀띔해주었다. 

그래서 더욱 아이들의 성적을 공유하자는 의도가 궁금하다. 명색이 입시 전문가라면, 아이들의 교과별 성적 추이를 분석해 향후 진로 탐색과 학과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자 광주시민으로서, 내 학교·네 학교 따지는 건 실상 부질없는 짓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개인별 성적을 타인과 공유하는 건 불가능하다. 성적은 주민등록번호나 전화번호 못지않게 민감한 개인 정보로, 본인과 보호자의 동의 없이 함부로 건넬 수 없다. 그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결국 그가 궁금해하는 건 학년 전체 아이들의 백분위와 등급별 분포였을 것이다. 

"선생님, 한참 잘못 짚으셨어요. 그분은 최상위권 아이들, 그러니까 영역별 1등급과 2등급 비율만 궁금해할 거예요. 우리도 솔직히 4~5등급 이하 아이들의 성적표는 거들떠보지도 않잖아요. 어차피 명문고라는 지역 사회의 평판은 그 학교에서 명문대를 몇 명이나 보냈느냐로 판가름 나니 어쩔 도리가 없죠."

"1-2등급 궁금했을 것"... 서열 부추기게 될 성적 비교, 옳은가

동료 교사는 되레 나의 '순진함'을 타박했다. 입시가 유일한 교육 목표가 돼버린 인문계고등학교의 현실에서, 입시 전문가로서 그의 열정과 노력만큼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다수 학부모들도 입학 때부터 수능 때까지 입시에 '올인'하는 그와 같은 교사를 가장 선호한다. 

복잡다단한 대입 전형을 죄다 꿰고 있는 입시 전문가라고 해도, 아이들의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별 소용이 없다. 결국 그는 전가의 보도처럼 학교 간 성적 공유를 통해 아이들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하려 했던 거다. 인근 학교의 최상위권 아이들끼리 백분위와 등급을 비교해가며 채근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성적 향상 방법은 없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려고 해도, 학교 간 성적을 비교하는 건 끝 모를 서열 경쟁만 낳는 반교육적 행태라는 생각만 든다. 성적표에는 서열을 매기는 통계 수치만 적시되어 있을 뿐, 학교와 개인별로 차이가 나는 원인과 대책에 관한 내용은 아예 없다. 그저 낙인 효과만 강화할 뿐이다. 

오로지 경쟁심만을 부추겨 공부하게 만드는 건 부적절하다. 공부하는 즐거움을 일깨우기는커녕 아이들이 공부에 환멸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학벌 사회 운운하며 현실을 핑계 삼는 것도 공감하기 어렵다.

그의 뜬금없는 문자가 서글펐던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수능을 앞둔 고3도 아닌, 고1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처음 치른 전국 단위의 모의고사에 그토록 큰 의미를 부여하고 부담을 주는 게 과연 온당한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직 영역별 시험 시간도 몰라 어리둥절한 경우가 태반인데 말이다. 

엄연히 고3을 위한 교육과정이 있고, 고1에게 적용되는 교육과정 또한 따로 있다. 고3이 수능 준비에 여념이 없다고 해서 고1 때부터 고3처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학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손에 쥐고 흔든다고 해서 고1 때부터 학교생활 전부를 대학입시에 맞추게 해서야 되겠는가. 
 
맹목적인 공부보다, 다양한 학교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친구들과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쌓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지난 5월, 아이들에 의한 교내 행사 '제1회 민주 광장'의 모습.
 맹목적인 공부보다, 다양한 학교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친구들과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쌓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지난 5월, 아이들에 의한 교내 행사 "제1회 민주 광장"의 모습.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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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싶은 과목이 있다면, 마음껏 배우도록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게 옳다. 진학 상담이랍시고 그게 입시에 보탬이 되는지부터 계산기 두드리듯 따져보는 건 아이들의 지적 성숙을 방해하는 일이 아닐까. 자기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모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고 반론한다면, 교사가 자신의 역할에 소홀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고1은 고1답게 교육하면 된다. 내게 고1다운 교육이 뭐냐고 묻는다면, 입시 공부보다는 자치활동과 생활지도에 방점을 찍겠다. 수능 D-day만을 헤아려가는 맹목적인 공부보다, 다양한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친구들과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쌓는 게 훨씬 중요하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훈련은 갓 입학한 고1 때가 적기다. 

더는 대화가 이어지지 못했지만, 나중에 혹 기회가 닿으면 그에게 꼭 건네고픈 말이 있다. 고1을 고3처럼 다루지 말아 주십사 부탁드리고 싶다.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서슬 퍼런 현실이라지만, 교육이란 진학 실적만으로 평가될 수 없는 숭고한 행위다. 교사라면 '백년지대계'의 의미를 한 번쯤은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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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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