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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뭐 먹지?"

퇴근 후 텅 빈 냉장고를 보다, 핸드폰을 열어 온라인 장보기를 한다. 계란 한 개, 두부 한 모, 오이 세 개. 주문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5분. 내일 아침이면 문 앞에 온 먹거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뭘까? 이 못내 찜찜한 마음은?

먹거리를 더 빨리, 더 쉽게 주문할 수 있을수록 우리의 마음은 먹거리가 생산된 곳과 더 멀어진다. 깨끗하고 가지런한 포장은, 경작 과정에 대한 상상을 앗아간다. 이 오이는 누가, 어디서 재배한 걸까? 

그런 질문이 한 번쯤 든 사람이라면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공간', 언니네텃밭을 만나보길 권한다. 먹거리 너머에 대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 지난 4일 딴짓출판사 박초롱 대표가 가락 먹거리 융합 클러스터에 입주한 언니네텃밭 박지희 운영국장을 만났다. 
 
언니네텃밭 박지희 운영국장
▲ 언니네텃밭 박지희 운영국장 언니네텃밭 박지희 운영국장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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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 박초롱 : "언니네텃밭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언니네텃밭 박지희 : "언니네텃밭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라는 단체의 식량주권사업단으로 2009년 시작되었습니다. 2008년 세계적인 식량대란이 왔을 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과 많은 여성단체들이 모여 만들어진 전국여성연대에서는 이에대해 함께 공부하고, 토종씨앗을 지키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가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뭔가 해보자고 했죠. 2009년 '우리텃밭'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서, 2010년 '언니네텃밭'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 거고요. 2011년에 사회적기업이 되었죠. 강원도 횡성에 꾸러미공동체가 생긴 것을 시작으로 전국에 꾸러미공동체도 점점 늘어났고요. 조금씩 외연을 넓혀갔습니다."

언니네텃밭은 여성 농민들이 구성한 마을 공동체에서 직접 재배, 수확한 먹거리를 매주 1회 소비자 회원들에게 보내주는 정기구독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름은 제철꾸러미. 농약을 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만 치는 것이 원칙이다. 제철 먹거리를 보내는 서비스다 보니 받기 전까지는 어떤 생산품이 올지 소비자는 알 수 없다. 박지희 운영국장도 제철 먹거리를 이용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언니네텃밭 박지희 : "저도 이용하고 있죠. 최근에 받은 꾸러미에는 부추전 세트가 들어있었습니다. 두부, 계란을 기본으로  부추, 양파, 고추, 방아잎, 근대 같은 것들이 있었고요. 꾸러미마다 이 재료로 어떻게 요리를 해서 먹을 수 있는지 편지가 들어 있거든요. 생산자 소개도 함께 적혀 있고요. 그걸로 부추전 만들어 먹었습니다. 대량으로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담벼락 밑, 집근처 텃밭 같은 자투리? 공간에서 노지 농사를 하다보니 농작물들의 맛이 다 살아 있어요. 걔네도 다 자연이랑 싸워서 나온 것들이라 맛이 부드럽기보다는 약간 거칠지만, 그 자체의 맛이 살아 있죠. 그런 걸 좋아하시는 분들이 단골이 되세요."
 
언니네텃밭 제철꾸러미
▲ 언니네텃밭 제철꾸러미 언니네텃밭 제철꾸러미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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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 박초롱 : "원재료를 이용해 요리를 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당황스러워하지는 않으세요? 밀키트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특히 그럴 것 같아요."

언니네텃밭 박지희 :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조리해서 먹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생산물로 이런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다라고 저희가 소개를 하면 어떨까 고민은 했는데요. 소비자들을 모아서 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땅하지 않고, 그걸 운영할 인력도 여유가 없었어요. 생산자들에게 최대한 생산비를 보장해서 드리고, 수수료는 최소한으로 받으려다 보니 운영비도 넉넉하지 않죠. 이런 부분을 고민 중입니다."

마침 언니네텃밭이 입주해 있는 가락먹거리융합클러스터에서 6월부터 공유주방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언니네텃밭에게 공유주방이 고민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지 물었다.

언니네텃밭 박지희 : "이제 그곳에서 소비자 교육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소비자와 요리를 해볼 수도 있고, 생산자가 원물을 가지고 상품 개발을 하겠다고 하면 공유 주방을 활용하게 해드릴 수도 있겠죠."

우리나라 농민의 반 이상이 여성이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 농민은 생산자가 아니라 생산의 보조자로만 인식된다. 언니네텃밭은 농사를 지어도 권리를 인정받을 수 없는 여성 농민을 위해, 집 주위의 작은 밭을 활용한 경작물 판매라는 방법을 떠올렸다. 여성 농민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이 생기면서, 생산자들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그 세월이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 물었다.

언니네텃밭 박지희 : "일은 많이 하는데, 소득이나 인정은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죠. 텃밭은 여성 농민의 자립 의미가 커요. 그러나 텃밭 농사지어서 부자 될 수는 없습니다.(웃음) 농작물 가격이 높지 않거든요. 소득은 크지 않지만 소비자들이 내가 농사지은 걸 사준다는 걸 뿌듯하게 생각하시죠. 그러나 이제는 생산자분들도 나이가 많이 들었어요. 꾸러미 공동체는 평균 연령이 70대인 경우도 있어요. 60대면 젊으신 거죠. 이제까지 우리가 지속적으로 언니네텃밭을 할 수 있었던 건 생산자님이 계셨기 때문인데, 고령화로 생산이 끊기게 생겼죠. 젊은 생산자분들 찾기는 힘들고요. 귀촌하신 분들이 다 귀농하시는 것도 아니고, 소득이 높지 않으니까요. 또 저희가 무제초에 가온을 하지 않는 농작물만 받고 있으니까 그 조건에 맞추시기도 힘들죠."

지금 언니네텃밭의 꾸러미공동체는 10개, 장터공동체는 7개, 조합원은 약 330명 정도다. 조합원 중 실제로 먹거리를 소비자에게 보내는 생산자들은 140여 명이다. 
 
언니네텃밭 사무실
▲ 언니네텃밭 사무실 언니네텃밭 사무실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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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 박초롱 : "생산자의 가치를 모두가 좀 알아주면 좋겠네요."

언니네텃밭 박지희 : "먹거리가 공장에서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이 키우고 따는 건데요. 생산자와 소비자가 너무 단절이 되다보니, 우리는 먹거리가 마트에 가면 당연히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모든 게 너무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서 나오니까 생산하는 농민들의 존재를 잊고 살아요. 소비자도 공동 생산자라는 약간의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잘 알아야 크게는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딴짓 박초롱 : "식량 위기에 있어 우리나라가 몹시 취약하다고 하잖아요. 언니네텃밭에서 관련 활동도 하고 계시죠?"

언니네텃밭 박지희 : "토종 씨앗 사업단이라는 게 있어요. 언니들이 토종 종자 심어서 수확한 작물, 곡물들을 모아서 팔고 있어요. 토종 종자가 많이 없어졌어요. 우리나라 청양고추도 가서 씨앗을 사와야 하잖아요. 지금이라도 종자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딴짓 박초롱 : "또 먹거리 문제 관련해서 어떤 점을 노력할 수 있을까요?"

언니네텃밭 박지희 : "농업 정책이 지속가능한 농업, 지속가능한 생산으로 갈 수 있는 방향으로 펼쳐져야 할 것 같아요. 그냥 산업의 하나로만 보고 효율성만 따지다 보면 계속 할 수가 없습니다. 농업 선진국들 중에는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는 얼마간 기본 소득을 주는곳들이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농업도 땅 주인 기준이라 귀촌귀농을 하더라도 빌린 땅에서 하면 현실적으로 그런지원을 받는 게 어려운 부분도 있고요. 한편으로는 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가 먹는 식재료들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재배 과정에 사람의 손길이 다 들어가 있는데, 그걸 뚝 떨어뜨려 놓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먹거리는 공통의 책임이고요.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콘텐츠 제작 : 딴짓 출판사
본 콘텐츠는 서울 사회적경제 뉴스레터 [SE:LETTER]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태그:#사회적경제, #언니네텃밭, #여성농민, #제철꾸러미,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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