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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1884년 가을여행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여름철 그토록 역겨웠던 악취가 말끔히 가셨습니다. 정말이지, 조선의 가을은 형언하기 어려운 무엇을 느끼게 합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도성에서 악취는 사라졌지만 밤이 되면 요상한 공기가 떠돌았습니다. 집집마다 구들 아래 큰 아궁이가 있는데 밤이 되면 짙은 연기가 피어나 도시를 온통 덮고 말지요. 연기 때문에 숨쉬기도 어렵고 앞을 볼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벌써 겨울 옷을 걸쳤습니다. 엄청나게 솜을 많이 넣은 옷을 입고 있어서 흡사 둥근 공처럼 부풀어 오른 모습이었지요.

세상은 흉흉했습니다. 수구파와 개화파의 반목 갈등이 타오르고 있었지요. 미국 방문에서 돌아온 홍영식, 서광범, 변수 등은 개혁의 열정으로 달아오르고 있었지만 위험을 느낀 기득권 수구파는 더욱  강한 철옹성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에 민영익이 있었지요. 최초로 세계 여행을 하고 돌아온 사절단의 수장이자 실세 중의 실세였던 그가 완전히 수구파의 앞잡이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수구파는 청나라의 하수인을 자처했습니다. 그 정점에 민왕후가 있었구요. 진보개혁 세력은 친청수구파에 의해 거세당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린 개화파들은 끔직한 계획을 세우게 되지요. 그 해 12월에 발발한 갑신정변이전에 나는 변란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본국정부에 장문의 보고서를 보냈지요. 훗날 그 보고서는 정세를 정확히 판단한 문서로서 찬탄을 받게 됩니다. 내가 정변을 내다볼 수 있었던 것은 서광범을 자주 만나 대화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의 정황이 나의 10월 26일자 부모님 전상서에 나타나 있군요. 같이 볼까요?
 
"저는 이곳에서 곧 변란이 일어날 징조를 느끼고 있답니다. 수구파(anti-foreign part)는 개혁을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고 개화파들은 몇 사람의 목을 날려야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그 길 밖에는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 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고 개화파들은 생각하고 있답니다. 열사람이 처단될 것 같다고  서광범은 제게 터놓고 말을 한답니다. 그 중 여섯 명은 고관대작이라는군요. 나는 그런 말은 듣고 아연실색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제가 조선의 관계에 얼마나 깊숙이 발을 들여 놓고 있는지를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지요. 저는 물론 만류하고 있지만요.

놀라시겠지만, 머리가 날아갈 사람 중에 틀림없이  민영익이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그가 조선의 개화를 가로막고 있으니까요. 그가 개화를 싫어해서가 아니랍니다. 청나라가 자신과 자신의 가문에 가할 앙갚음을 두려워해서이지요. 그는 겁쟁이랍니다. 대서양에서 트렌톤호가 돌풍을 만났을 때처럼 말입니다.

오늘 저녁 저는 공사관에서 조선의 요인들과 만찬을 가졌습니다. 만찬이 끝난 뒤에 저는 공사에게 심상치 않은 조선 정세를 말해 주었답니다. 공사로서는 금시초문이겠지만  제 이야기에  수긍하더군요."



당시 조선인들은 본능적으로  외국인들을 배척했고 바깥 세계에 대해 어이없을 정도로 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외국인에 대한 혐오도 심하였지요. 그래서 나는 밤에 경호원을 대동해야 했고 무장을 하고  다녔지요. 다행히 공격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욕 소리를 가끔 들었지요. 모든 외국인들이 위협을 느끼며 지냈습니다. 조선인들이 왜 그렇게 외국인을 혐오하는지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문을 걸어 잠근 채 오직 자신들만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도덕적인 사람들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외국인들은 미개한 오랑캐들이지요.

극히 소수가 외국에 나가 볼 기회를 가졌는데 그들만큼은 고정 관념에서 즉시 벗어났지요. 그들은 귀국한 후 동포들에게 나라 밖에서 견문한 것과 세상 물정을 전하지요.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 당신  이야기는 너무 허풍스럽다.
그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야만인들이 만든 강력한 迷藥을 먹은 것이다.
그 약이 그대로 하여금 자기 나라를 얕보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나라 밖 이야기는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일수였지요. 

해외 견문자들은 위험 분자나 중독된 자로 치부되고 마는 거였어요. 오해하지 마세요. 이게 하층계급의 무지랭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상층 계급의 지체 높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배층은  대부분 나라 바깥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 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귀를 기울이는 것 자체가 불충이라고 말하더군요.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나는 조선 왕국이 얼마나 닫혀 있고, 얼마나 쇠락했으며, 얼마나 미신적인가를 느끼게 되었지요. 서광범은 자신이 근대화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라는 이유로 항상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하더군요. 

수구와 진보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푸트 공사가 국무성에 사직원을 낸 것입니다. 까닭인즉 의회가 지난번 회기에서 그의 직위와 봉급을 깎아 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공사 지위에서 총영사급으로  강등된 것입니다. 이제 공사라는 타이틀를 떼라는 것이었으니, 세상에, 그건 미국의 큰 과오였고 남스러운 외교 참사였지요. 그래서 그가 사직원을 내지 않을 수 없었지요. 

당시 푸트는 조선에서 유일한 특명 전권 공사였어요. 다른 나라들은 서울에 공사를 파견하지 않고 (총)영사를 보냈습니다. 오직 미국만 최고위 외교관을 파견해주는구나 싶어 조선인들은 미국에 대하여 큰 신뢰감을 가지고 있던 차였지요. 조선인들은 미국이 장미 빛 약속을 다 해 놓구서는 이제 와서 등을 돌린다고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직위도 낮아지고 보수도 깎이게 된 푸트 공사는 뼈속깊이 모욕감을 느끼면서 짐을 싸기 시작했지요. 한 마디로 그 일은 미국이 조선인의 뒤퉁수를 친 첫 배신행위로 기록될만한 외교참사였지요. 

태그:#조지 포크, #갑신정변, #서광범, #푸트 공사, #민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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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만남이길 바래 봅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제2의 코리아 여행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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