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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씨의 일상적 이동에는 늘 자전거가 함께 한다. 비가 내리던 날 만난 오씨는 우의를 입고 우산을 받친 채 퇴근 중이었다.
▲ 퇴근길에 만난 오충렬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씨의 일상적 이동에는 늘 자전거가 함께 한다. 비가 내리던 날 만난 오씨는 우의를 입고 우산을 받친 채 퇴근 중이었다.
ⓒ 김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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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가 몰아치고 비나 눈이 내리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어찌할까? 자전거를 꽤 오래 타본 입장이지만 나 역시 아직껏 명확한 해답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기자의 경우 호우 수준이 아니라면 가급적 자전거를 타려 노력하는 편이다. 자전거 대신에 버스 편을 이용하기도 하고 시원한 에어컨에 맛을 들여 또 한동안 승용차를 이용하여 일상적 이동을 하기도 한다. 빈도수로 볼 때 주를 이루는 나의 일상적 이동 수단은 '그래도 자전거'라 할 수 있다.

자전거 문화가 일찌감치 꽃피운 네덜란드 등에서도 처음에 고민이 되었을 것이다. 집중호우가 있는 우리와는 다소 다르겠지만 자전거를 많이 타는 도시에서도 비나 눈이 내린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연중 비나 눈이 내리는 날이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58일이다. 강수일만 비교하면 전주시는 연중 122일, 암스테르담은 132일이다.

이들은 난관을 점차 해결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를테면 비가 내려도 타되 직장에 출근해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시설과 라커룸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보통 짐작하듯 비와 같은 난관만으로 자전거를 못 타게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 이 도시들에서는 지자체가 직장 내 샤워시설 설치에 관한 지원을 하고 있다.

비가 제법 내리는 날 길 위에서 만난 오충렬(49)씨도 바로 이런 점을 주목했다.

"비 좀 맞으면 어때요. 오히려 저는 좀 즐기는 편이고 시원하게 샤워하고 갈아입으면 뽀송뽀송한 자전거 후의 느낌이 더 좋더라고요. 자전거 활성화라는 게 도로 만들고 인프라 만드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실제 자전거 타면서 겪는 문제점을 하나씩 해결해 가는 게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출근 후 직장에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게 만드는 것 같은 부분 말입니다."

오충렬씨의 이동 수단은 95% 이상 자전거라고 한다. 비가 내려도 타고 태풍이 불 때도 타고 눈이 내려도 탄단다. 장애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즐긴다고 하니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보통은 자전거 타기 편한 복장을 입지만 직장에서의 업무상 정장을 입거나 한복을 입은 채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여름 같은 날 그렇지 않아도 더운데 자전거 타면 덥지 않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해 "몰라서 그렇지 자전거를 타면 오히려 시원합니다. 살갗으로 느끼게 되는 날파람이 그렇게 만드는 주인공. 그걸 안 타본 사람들은 모르겠죠"라고 표현한다.

전주천의 자전거 길을 출퇴근 경로로 이용하는 오씨는 비가 내리면 우산을 받쳐 들고 탄다. 좀 많이 쏟아질 경우 우비를 안에 입고 우산을 든다고 한다. 눈이 다져지고 그 위에 눈이 내린 날엔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잠깐잠깐 브레이크를 활용해 자전거로 썰매를 즐기기도 한다는 오씨. "도로 위에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차보다 자전거가 훨씬 빠르더라고요"라는 증언담을 곁들인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오씨의 직장은 전주시 인후동에 있다. 집에서 인후동 직장까지의 출근길은 대략 8.5km가량이다. 시간은 넉넉하게 잡아 40여 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천변의 자전거 길을 오가며 이런저런 사색과 해찰을 즐긴다는 오씨는 직장 근처의 오르막길 구간을 억지로 자전거를 타고 오르지 않고 중간쯤에서 내려 끌고 올라간다고 한다.

"자전거 탄 이력을 통해 유추해볼 때 그게 힘들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을 것 같고"라는 기자의 질문에 "충분히 오르죠. 다만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며 음미하는 걸 저는 즐겨하는 편"이라고 설명한다.

오씨는 2020년에 자출(자전거 출근) 10년의 여러 사색을 담아 책을 펴내기도 했다. 책에서 본인을 '자전거 생활자'라고 굳이 규정한다. 책에서 못한 표현을 더 정확하게 담아보자면 "전주천을 오가며 느낀 여러 가지 사색을 즐기는 사람"이라 표현하고 싶다고 한다.
  
10여 년 간의 자전거를 통한 출퇴근에서의 사색을 다룬 책이다.
▲ 오씨가 펴낸 "나는 자출사다" 10여 년 간의 자전거를 통한 출퇴근에서의 사색을 다룬 책이다.
ⓒ 북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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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펴낸 <나는 자출사다>라는 책 말미의 에필로그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출근길.

유유히 흐르는 물을 보며 갑니다.

오리들의 자맥질은 여전하고 새들의 날갯짓은 힘찹니다. 어느덧 피어 버린 억새들은 하늘거리고 능수버들은 더욱 흐드러졌습니다. 느닷없이 얼굴에 달은 물방울. 한 방울이 연이어 셀 수 없이 내립니다. 달리기 시작하자 더욱 세차게 내립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요. 비를 흠뻑 맞았습니다. 가을비를 제대로 느낍니다.

자전거와 함께 비도 맞고 햇빛도 받습니다.

어느덧 천변으로 자출을 한 지 십 년이 훌쩍 넘어 버렸습니다.

흐르는 물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늦은 적도 있고, 오리들의 힘찬 날갯짓에 힘을 얻어 살아가는 힘도 생겼습니다.

함께한다는 것은 비가 올 때 우산을 받쳐 주는 것이 아니라 비를 함께 맞는 것이라고 신영복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자전거와 나는 비를 함께 맞아왔는지 모릅니다.

(중간 생략)

청춘의 자전거는 열정이었습니다.

불혹의 자전거는 느림입니다. 

- <나는 자출사다> 중에서
 
'해찰 라이더' 오씨는 자전거를 타고 날마다 전주천을 오가는, 사색을 즐기는 생활인이었다. 비 따위 바람 따위 문제 될 게 없고 오가는 길을 묵묵히 즐기며 하루를 함께 넘겨 보내는 오충렬의 자전거.

출근길 꼭 하는 의식 하나가 있다고 한다.

"양발을 페달 위에 올려 놓은 채 다리를 쭉 뻗고 섭니다. 그리고 고개는 하늘을 향해 바라보며 잠시간 눈을 감고 여러 가지를 빌어 봅니다. 나와 우리 가족의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즐거움이 가득하기를 비는 거죠." 

날마다 천변으로 내려서면서 치른다는 이 의식. 오충렬씨에게 자전거는 그것을 함께 치러내는 동반자이자 증언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출사다

오충렬 (지은이), 북컬쳐(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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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한의사, 자전거 도시가 만들어지기를 꿈꾸는 중년 남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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