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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거제옥포조선소 1도크 내 하청 노동자의 농성 현장.
 대우조선해양 거제옥포조선소 1도크 내 하청 노동자의 농성 현장.
ⓒ 정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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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끝 거제도,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앞에서 사람들이 "이대로 살 순 없습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란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서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걸 보는 순간, 13년 전 '그날'의 기억이 다시금 살아났다.  

"너무 걱정 마. 우리들의 목소리를 세상 사람들이 듣게 될 거야. 그럼 우린 강제로 쫓겨나지 않게 될 거고, 용역깡패로부터 더 이상 폭력에 시달리지도 않게 될 거야. 그러니 며칠만 기다려줘."

난 이런 말을 하고 가족들의 걱정을 뒤로한 채 그렇게 내가 살던 용산대로변 건물 옥상에 올라 망루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 하루만이었다. 단 하루 만에, '대화'가 아닌 경찰특공대가 우리 앞에 와 있었다. 나중에 경찰내부문건을 통해 우리가 건물에 진입한 뒤 3시간 만에 경찰특공대 투입이 결정되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망루를 다 짓지도 못한 시점이었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재개발지역에서 농성중인 철거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특공대가 크레인에 매달린 컨테이너 박스를 타고 고공진압 작전을 벌이는 가운데 옥상에 설치된 농성 가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시커먼 연기와 불길이 치솟고 있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재개발지역에서 농성중인 철거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특공대가 크레인에 매달린 컨테이너 박스를 타고 고공진압 작전을 벌이는 가운데 옥상에 설치된 농성 가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시커먼 연기와 불길이 치솟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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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용산 한강로3가에 살던 사람들이었고, 장사하던 이들이었다. 개발이란 명분 하에 온 가족이 아무 대책없이 쫓겨나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용산구청, 조합, 어느 누구도 우리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았다. 매일 용역폭력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래서 마지막 방법이라 생각하며 이렇게 하면 대화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건물옥상에 올랐다. 하지만 경찰과 정권는 건설사와 가진 자들의 편이었고, 그렇게 '용산참사'라는 살인진압이 자행되었다.

그 참사로 난 아버지와 동지를 잃어야했고, 감옥에 갇혀야만 했다.

10여년이 지나서야 당시 일이 경찰의 무리한 진압이었음이 밝혀졌고, 경찰청장이 직접 유가족과 생존자들에게 사과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이미 무너진 뒤였다. 그 상처는 지금까지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이 된 터라 매일이 악몽이고, 매일이 고통뿐이다.

7월 23일, 거제도로 향해야 하는 이유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6월 22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 바닥에 가로세로 1미터 크기의 철판을 붙여 만든 공간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6월 22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 바닥에 가로세로 1미터 크기의 철판을 붙여 만든 공간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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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22년, 정권이 바뀐 지 3개월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대통령이 '불법시위를 엄단하겠다'며 또 다시 공권력 투입을 언급하고 있다. 2009년에서 2022년으로, 이명박에서 윤석열로 이름만 바뀌었지 그들의 눈엔 우리가 아닌 재벌과 기득권 세력들만 보이는 듯하다. 

남쪽끝 거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유최안 동지가 가로 세로 높이 1m짜리 철창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정당한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금이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의 살고 싶다는 요구에 공권력 투입을 운운하는 그런 세상이란 말인가. 정부가 나서서 대화로 해결할 수는 없단 말인가. 십 몇 년이 흘렀음에도 힘없는 약자인 비정규직이나, 철거민들의 벼랑끝 삶은 달라지지 않은 듯하여, 한탄스럽기만 하다.

지난날 나는 고립된 용산에서, 0.7평 독방에서, '벼랑 끝' 삶을 살 수밖에 없었고,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어느 누구하나 내편이 아닌 듯했다.

그런 내게 매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미사를 해주시는 신부님들, 참사 현장를 찾아주시는 문화예술인들, 많은 사람들의 소식은 희망이었고, 살 힘을 주었다. 

13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용산참사란 말만 나와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공권력이란 말만 들어도 머리가 삐쭉삐죽 서고, 뭔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산참사란 말을 뉴스에서 듣더라도, '공권력 투입 임박'이란 글자를 보더라도 외면하지 않는다. 대우조선소 0.3평에 있는 유최안동지가 2009년 나이기에, 그의 외로움과 고립됨을 알기에 그에게 더 이상의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

오는 23일 전국의 희망버스가 거제 대우조선소로 향한다고 한다. 부디 많은 희망들이 모여, 13년 전 내가 봤던 희망이 0.3평에 갇힌 유최안 동지에도 전해지길 바란다.

더 이상 비정규직, 철거민들이 벼랑 끝 삶이 아닌, 사람답게 사는 세상. 사람이 우선되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야만 한다. 그 첫 시작이 7월 23일이 되도록, 거제로 우리 모두 향하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용산참사 유가족입니다.


태그:#대우조선, #공권력 투입, #윤석열 대통령, #용산참사, #이충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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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유가족 , 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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