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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를 굽이굽이 흘러가는 낙동강에는 오늘날까지 손꼽히는 관광명소가 많다. 그 중에 가장 핵심이라면 유네스코 문화유산이자 국가민속문화재 제122호인 하회마을이 있다. 하회(河回)라는 말 그대로 낙동강이 마을을 휘돌아가면서 흐르고 있어, 부용대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마을과 논밭이 서로 어우러지는 광경을 자랑한다. 또한 풍산 류씨의 집성촌이자, <징비록>을 기록한 서애 류성룡이 유년기와 말년을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하회마을에서 낙동강을 따라 동편으로 한 시간 반 도보 거리에는 서애가 배향되어 있는 병산서원이 있다. 병산(屛山)이라는 말 그대로 여기는 좌우뒤편으로 산이 둘러 싸여있고, 남쪽으로 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구조다. 특히 7월에 분홍빛 꽃들로 가득한 배롱나무들이 옛 서원의 역사와 낙동강과 함께 운치를 더해준다. 지난 16일 풍산 류씨의 주무대인 하회마을과 배롱나무로 가득한 병산서원에 갔다왔다. 

풍산 류씨 집성촌 안동 하회마을

안동 하회마을도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에서 가깝다. 나들목에서 예천방향으로 34번 국도를 타고 914번 지방도를 따라 경상북도청신도시 방향으로 가자. 이후 경상북도 교육청 아래를 지나는 지하차도 우측 출구로 빠진 다음 좌회전 하여 하회마을 이정표를 따라가자.

하회마을로 들어가보니, 기와집과 초가집이 흙담, 돌담과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그런데 입구에서 가장 눈에 띈 이정표가 하나 있었는데, '하회교회'였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의 집성촌이자 안동 유교문화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마을 안에 교회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교회는 마을 남편 외곽에 있다. 예배당은 전통 기와 형태의 수수한 건축양식인데, 원래 마을의 중앙부에 있었다가 마을의 새벽 종소리 소음을 줄이고자 1990년 현 위치로 이전했다고 한다. 최근에 지어져서 역사가 짧은 걸로 생각했는데, 무려 1921년부터 100여 년 역사가 있는 교회다.
 
하회마을 흙담돌담길
 하회마을 흙담돌담길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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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역사 하회교회. 원래는 마을의 종택인 양진당 근처에 있다가 1990년 바깥편으로 이전했다.
 100년 역사 하회교회. 원래는 마을의 종택인 양진당 근처에 있다가 1990년 바깥편으로 이전했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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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전통이 가득한 이곳에서 교회가 들어선 이유는 마을 사람들이 개화기 선교사를 통해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풍산 류씨 가문에서 6.25전쟁 때 북한군에게 순교당한 류전우 전도사를 배출하기도 했으니, 이제는 어엿한 마을의 일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마을 중심부로 돌아가 고택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둘러본 고택은 하회마을 북촌의 가장 큰 집인 화경당이다. 조선후기 통훈대부 출신 유도성이 고종 1년(1864)에 완공했는데, 2013년 디딜방앗간에서 담배꽁초로 발생한 화재로 인해 관람을 제한하여 솟을대문에서 화경당과 북촌유거만 눈으로 볼 수 있다.

솟을대문 옆에는 '독립유공자의 집'이 표시되어 있는데, 화경당 8대 주손인 고 유영하 선생께서 1941년 비밀결사 5인 독서회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비교적 최근인 2019년 광복절에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다.
 
국가민속문화재 제84호 화경당과 북촌유거
 국가민속문화재 제84호 화경당과 북촌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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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경당 뒤편으로는 무려 600년이나 된 큰 나무가 있는데, 마을 중앙에 위치한 삼신당이다. 말 그대로 신성한 나무여서 그런지, 새끼줄 위에 사람들이 적은 소원들로 가득하다.

삼신당은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정월 대보름 다음날 아침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올리기 때문이다. 또한 성황님께 마을의 풍년과 평화를 기원하는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이곳에서 시작한다. 별신굿탈놀이라면 양반을 바보 역할로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데, 유교전통으로 중무장된 하회마을 조선 양반가문들이 민간신앙과 자신들을 향한 풍자를 오랫동안 받아들인 것이 놀랍다.
 
600년 삼신당 느티나무. 여기에서 하회별신굿탈놀이를 시작한다.
 600년 삼신당 느티나무. 여기에서 하회별신굿탈놀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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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당에서 다시 왔던 길로 나와 오른편으로 가다보면 큰 저택이 둘 있다. 오른편에는 현판이 '양진당(養眞堂)'이라고 적혀 있는데, 풍산 류씨의 대종택이다. 풍산에 살던 류종혜 공이 하회마을에 처음 들어올 때 터를 잡았는데, 류성룡과 형 겸암 류운룡의 부친인 류중영이 이곳에 집을 지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양진당 사랑채를 보면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는 현판이 새겨져 있는데, 류중영의 호다.

양진당 건너편에는 봉정사를 방문했던 엘리자베스 2세가 방문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구상나무, 배롱나무와 무궁화로 둘러싸인 고택이 하나 있다. 이름은 충효당. 임진왜란 때 행정과 군사를 총괄하고 이후 징비록을 저술한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다. 사랑채를 보니 상당한 위용을 자랑하는데, 사실 서애는 여기보다 훨씬 단출한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오늘날 화려한 종택이 된 이유는 서애의 손자 유원지가 조부의 업적을 추모하기 위해 유림의 도움을 받아 지어서 그렇다.
 
보물 제306호 양진당. 풍천 류씨의 큰 종갓집이다. 현판에 쓰인 입암(立巖)은 겸암 류운룡과 서애 류성룡의 아버지인 류중영의 호다.
 보물 제306호 양진당. 풍천 류씨의 큰 종갓집이다. 현판에 쓰인 입암(立巖)은 겸암 류운룡과 서애 류성룡의 아버지인 류중영의 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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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414호 충효당.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다. 서애가 후손들에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강조한 뜻을 받들어 '충효'라 이름 지었다.
 보물 제414호 충효당.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다. 서애가 후손들에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강조한 뜻을 받들어 "충효"라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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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암과 서애 형제의 흔적은 마을 내 다른 건물과 건너편 부용대에도 남아 있다. 먼저 겸암의 경우 하회마을에 노년에 서재로 쓴 빈연정사와 부용대 왼편 학문연구를 위해 세운 겸암정사가, 서애의 경우 역시 마을 내 서재 원지정사와 그의 말년 징비록을 저술하고 후학양성을 했던 부용대 오른편 옥연정사가 만송정 숲과 낙동강을 가운데로 하여 마주보고 있다.

하회마을을 전체로 감상한 느낌은 깊이 들어갈수록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는 느낌이다. 100년 역사의 하회교회부터 450여 년 전의 겸암, 서애의 형제 이야기로 역사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서애의 서재였던 국가민속문화재 제85호 원지정사. 부친상을 당해 낙향한 후 1576년에 지었다.
 서애의 서재였던 국가민속문화재 제85호 원지정사. 부친상을 당해 낙향한 후 1576년에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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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건너편 부용대. 부용대 오른편에 서애가 징비록을 썼던 옥연정사가 있다. 원지정사와 낙동강을 사이로 마주보고 있다.
 마을 건너편 부용대. 부용대 오른편에 서애가 징비록을 썼던 옥연정사가 있다. 원지정사와 낙동강을 사이로 마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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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가 징비록을 저술했던 국가민속문화재 제88호 옥연정사
 서애가 징비록을 저술했던 국가민속문화재 제88호 옥연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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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로 가득한 병산서원

7월에 하회마을을 방문한다면, 마을 동편 화산의 남동쪽에 있는 병산서원을 절대로 지나치지 말자.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서애 류성룡을 배향했다는 점, 또 다른 하나는 배롱나무에 분홍빛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기 때문이다.

서원은 뒤편 화산을 등지고 앞에 낙동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형태다. 재미있게도 내가 6월 말 방문했던 도산서원과 비슷하다. 원래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을 서애가 이곳으로 옮긴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인데, 이후 철종 14년(1863)년 임금으로 '병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서원이 되었다. 서애의 스승이 퇴계 이황이었으니, 그 스승에 그 제자다운 풍수지리 안목을 지녔다. 게다가 도산서원이 병산서원보다 더 상류에 있으니 스승의 물결이 제자의 터전을 앞을 지나는 느낌이라 할까.

출입문인 복례문을 바라보니 좌우로 분홍빛 배롱나무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분홍빛에 취하며 들어가다 보면 거대한 누각인 만대루를 볼 수 있는데, 누각 앞의 양쪽에 서 있는 배롱나무들이 여름 서원의 정취를 더욱 뽐낸다. 혹시나 만대루에 올라가 낙동강을 바라볼까 했는데, 아쉽게도 통제되었다.
 
7월 배롱나무 분홍꽃들로 가득한 병산서원 앞
 7월 배롱나무 분홍꽃들로 가득한 병산서원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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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2104호 만대루. 누각 앞에도 배롱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보물 제2104호 만대루. 누각 앞에도 배롱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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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병산서원의 강당인 입교당 시원한 마루에 앉아 만대루와 낙동강을 동시에 볼 수 있으니 참고하자. 나는 입교당 뒤편 창문에서 낙동강을 바라보았는데, 강당의 마루와 앞의 누각 그리고 누각 너머 낙동강이 잘 어우러진 느낌이다.

참고로 병산서원도 도산서원처럼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을 피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를 넘어 서원의 유지는 오늘날 안동 풍산고등학교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에서 아직까지 교육의 명맥을 이어가는 사실상 유일한 서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산서원의 강학공간 입교당
 병산서원의 강학공간 입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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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당 뒷 창문으로 바라본 만대루와 낙동강
 입교당 뒷 창문으로 바라본 만대루와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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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운룡, 류성룡 형제와 후손들 그리고 풍산 류씨의 일대기가 담긴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보통 하회마을 하면 유교풍이 강한 곳인 것 같은데, 100년 역사의 교회와 600년이 넘은 삼신당 나무를 보며 다른 신앙에도 관대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역사에 이름이 남은 류운룡, 류성룡 형제의 터전이 하회마을을 도는 낙동강을 대칭으로 하여 흔적이 남은 것이 인상 깊다. 화산 너머 남동쪽에는 병산서원이 7월 분홍빛 배롱나무 꽃과 함께 서애를 기념하고 있다. 7월 안동에 혹시 놀러올 일이 있으면 두 곳을 보는 것을 잊지 말자.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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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 동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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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행테마 중앙선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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