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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중에도 자발적으로 등교해 공부하고 있는 고1 아이들의 모습. 대견하기보다 안쓰러운 마음이다.
 방학 중에도 자발적으로 등교해 공부하고 있는 고1 아이들의 모습. 대견하기보다 안쓰러운 마음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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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중에도 아침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이 있다. 방과 후 수업이 진행되는 기간도 아닌데, 단지 학교에 나와 공부하고 싶다는 거다. 그들을 위해 상시 도서관 열람실을 개방하고 있다. 코로나 방역 차원에서 책상을 한 칸씩 띄어 앉기가 힘들 만큼 그 숫자도 많다.

고3도, 고2도 아닌 고1 아이들이다. 전교생 다섯 명 중 한 명꼴이다. 아직 중학생티를 벗지 못한 앳된 그들이 어째 좀 짠하다. 학기 중과 다름없이 밤 10시까지 남아서 공부해도 되는지 천연덕스럽게 묻는 아이 앞에선 기성세대이기 앞서 교사로서 솔직히 죄인이 된 느낌이다.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방학 중 도서관 풍경이 언뜻 낯설다. 숨죽이며 공부하는 그들의 책상 위에는 두꺼운 수험서가 쌓여있다. 아이들의 가방이 하나같이 제 몸보다 큰 건 그래서다. '고등학생에겐 방학식은 있어도 방학은 없다'고 호기롭게 말하는 그들이 대견하기보다 가엾을 따름이다.

"공부 왜 하니?" 질문에 돌아온 답

"방학 중에도 굳이 학교에 나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에 매달리는 이유가 뭐니?"

밤잠을 설쳤는지 퀭한 눈의 한 아이에게 다가가 부러 물었다. 실없는 질문에 그는 귀찮다는 듯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대학은 가야죠." 대화가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 외마디 답변이 모든 걸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대학은 우리나라 모든 아이들 삶의 종착역이다.

기실 그 '여섯 글자'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다. 우선, 명문대에 가야 한다는 것, 적어도 '인-서울'하겠다는 다짐이다. 대입 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자 수보다 많아진 현실에서 이른바 '지잡대'는 그가 말하는 대학에 포함되지 않는다. 중학생들조차 '지잡대'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라며 조롱한다.

'좋은 곳'에 취업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좋은 곳'이란 급여와 처우 등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직장을 말한다. 요즘 아이들이 생각하는 명문대의 기준은 사회적 평판보다 '좋은 곳' 취업의 유리함을 첫손에 꼽는다. 물론, 그 두 가지는 샴쌍둥이처럼 늘 함께 가지만 말이다.

또, 대입에 실패하면 회복 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절박함도 내포돼 있다. 몇 해 전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라는 반인권적 급훈은 아이들 내면에선 여전히 유효하다. 고등학교 3년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인식은 강고하다.

뒤집어 보면, 이는 학벌 구조를 수긍한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명문대생이 '지잡대'생을 조롱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모두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지잡대'생에 뭇매를 가하는 세태다. 아니꼬우면 공부 열심히 해서 명문대에 가면 된다고 비아냥거리기 일쑤다.

요즘 아이들은 학벌에 따른 차별이 노력에 대한 대가로서 정당하다고 본다. 심지어 'SKY'와 '지잡대' 출신의 급여 차이가 최소한 몇 배는 되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경우도 봤다. 그런 격차를 두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늦은 밤까지 열심히 공부하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저런 비참한 꼴 당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죠."

도서관 한쪽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내게 한 아이가 말 걸듯 한마디 건넸다. 지난 22일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과 하청업체들이 임금 4.5% 인상 등에 합의했다는 기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툭 내뱉은 말이다. 임금 올리자고 무려 31일 동안 1㎥짜리 철제 감옥에 스스로 몸을 가둔 걸 두고 비참하다고 표현한 거다.

아이들도 하청노동자의 현실은 대충 들어 알고 있다. 이곳 광주에서 이태 전부터 반복적으로 일어난 건물 붕괴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원청의 갑질과 관련 공무원의 태만에 대해 공분했다. 특히 이번 파업이 오랫동안 언론에 보도되면서 조선업계에 만연한 다단계 하청 구조와 임금 체불 등의 불법 행위에 대해 깨닫게 된 건 덤이다.

그런데, 정작 서글픈 건 따로 있다. 조선업계 하청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에는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면서도, 지금껏 불법이 자행되는 구조를 방치하고 묵인해 온 원청과 정부를 탓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조 개혁과 차별 철폐를 요구하기보다 설움을 겪는 하청노동자 신세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능사라는 인식이다.

아이들은 하청노동자에 대한 임금 차별을 '상수'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원청과 하청의 관계를 흡사 명문대와 '지잡대'의 차이에 견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의 임금 격차도 당연할뿐더러 공정한 것, 나아가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규정한다. 합리적으로 차별하는 것이 민주주의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솔직히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기도 뭣하다. 나고 자라면서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가치관을 철저히 내면화한 세대라서다. 그들에게 이 세상은 '위너'와 '루저', 이렇게 두 계급으로 나뉠 뿐이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게 만고불변의 진리일진대, 그들을 탓하는 건 기성세대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다.

나 역시 '공범'이다. 교사로서 지난 24년 동안 아이들 앞에서 가장 많이 건넨 이야기가 아마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이었을 게다. 다만, 지금껏 아이들 누구도 '왜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지' 반문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 이유를 전제하지 않았다. 이따금 공부가 학생의 본분이라고 에두르곤 했지만, 그것이 공부의 이유가 될 순 없었다.

아이들의 강퍅한 인식으로 미루어 보건대, "열심히 공부하라"는 훈화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하청노동자가 되어 차별을 겪게 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의도야 어떻든 차별을 당하기보다 차별하는 지위에 오르라고 부추긴 셈이다. 그것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합리적으로 차별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선선히 말하는 아이들에게 차마 되묻진 못했다. 과연 차별이 합리적일 수 있는지를. 백 보 양보해서, 어느 정도의 차별을 합리적이라 말할 수 있는지를. 당장 무려 31일 동안 1㎥짜리 철제 감옥에 스스로 몸을 가둔 '비참한' 하청노동자의 급여와 내 급여를 대조해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차별이 당연하다는 아이들, 기성세대 향한 죽비소리
 
지난 6월 24일 유최안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가로·세로· 높이 1m의 철 구조물을 용접해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농성을 한 모습.
 지난 6월 24일 유최안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가로·세로· 높이 1m의 철 구조물을 용접해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농성을 한 모습.
ⓒ 금속노조 선전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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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언론 보도를 통해 그의 쥐꼬리만 한 월급을 알게 됐다. 용접공과 교사라는 직업은 서로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연차가 비슷해 눈길이 갔다. 22년 차 용접공인 그의 올해 1월 실수령액은 207만5910원이다. 내 급여에 견준다면, 아이들 말마따나, 비참한 수준이다.

잘 알려진 대로, 조선업계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노동 강도를 고려한다면 사실상 노동 착취와 다름없는 액수다. 듣자니까, 원청 노동자의 급여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차마 정근수당과 명절휴가비까지 더해진 나의 1월 급여와 견주진 못하겠다. 몇 배에 가까운 액수라 그가 명세서를 본다면 까무러칠지도 모른다.

특별한 수당이 추가되지 않는 보통 달의 급여와 견줘봐도 그와 나의 임금이 천양지차다. 각종 세금과 보험료, 연금 등을 제한 실수령액이 360만 원이 훌쩍 넘는다. 그의 급여 총액과 공제 액수가 얼마인지는 확인할 길 없으나, 실수령액만 놓고 봐도 대략 1.6배 차이다. 적어도 직무와 노동 강도가 급여 책정 기준은 아닌 셈이다.

거친 비유일지언정, 급여가 같다면 당신은 용접공과 교사 중 어느 직업을 선택할 텐가. 아이들은 이구동성 설령 급여가 적다고 해도 교사를 선택할 거라고 말한다. 이는 곧 용접공이 교사보다 급여가 많은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미다. 그들의 말마따나, 합리적 차별이 민주주의라면, 지금의 구조는 민주주의에 반한다.

합의한 대로 4.5%가 인상되면, 하청노동자들은 한 달에 고작 몇만 원 더 손에 쥐게 될 것이다. 무려 31일 동안 1㎥짜리 철제 감옥에 스스로 몸을 가둔 이의 '목숨값'이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민망하고 어처구니없는 액수다. '불법점거 과정에서 발생한 위법행위에 대해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는 매몰찬 엄포는 정부의 불합리와 몰상식을 방증할 뿐이다.

앞으로는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조차 저어하게 될 듯하다. 자아실현과 사회봉사를 위해 공부한다는 건 도덕 시험에서나 나올 법한 응답이 됐다. 아이들이 '비참한 꼴 당하지 않기 위해 공부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건 실상 성마른 기성세대를 향한 죽비소리다. 부디 유최안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부지부장의 쾌유와 건투를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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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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