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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날이 이어지니 그간 억눌려 있던 아내의 여행 욕구가 되살아났다. 매주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밑밥을 까는 아내는 퇴근한 나에게 멋진 풍경과 맛있는 음식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것 봐, 전 객실이 바다 뷰야~ 너무 예뻐! 그리고 여기 조식이 그렇게 맛있대!"

흔들리면 안 된다. 흔들리지 않으리. 결연한 각오로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나는 그만 "와~" 하고 감탄을 뱉어내고 만다. 즐거운 여행의 일면에 존재하는 번거로움과 익히 겪어 온 피곤함은 푸른 바다 풍경에 희미해져 버린다.
 
언제나 바다 풍경은 여행욕을 불러 일으킨다.
 언제나 바다 풍경은 여행욕을 불러 일으킨다.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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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아이가 넷이나 되는 6인 가족을 반기는 숙소가 많지 않은데, 이곳은 8인까지도 받아 준다는 너그러움도 있었다. 아... 이미 마음이 기운 탓인지 어느새 가야 하는 이유를 슬며시 찾고 만다. 마음의 방향에 맞춰 이유를 찾는 인간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엑셀을 띄우고 아내와 계산을 시작했다. 숙박과 워터파크, 객실 인원 추가에 조식까지 포함해도 바닷가 풀빌라 가격보다 저렴했다. 아이들 물놀이를 위해 풀빌라를 알아 볼 때, 워낙 비싼 가격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있던 지라 경제적이라는 프레임까지 씌워져 버렸다. 그래. 가자. 가!

어머니! 여행 갑니다

8인까지 받아주는 이곳. 자동적으로 어머니가 여행 인원에 추가됐다. 어머니의 의향은 여쭙지 않았다. 적어도 세 번은 거절하실 게 분명했고 나의 끈질긴 조름에 결국엔 승낙하실 것을 알기에 동의 과정은 과감히 생략했다.

숙소 예약을 마치고 나서야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이번 주말 거제에 있는 리조트에서 놀기로 '결정'했고 따로 준비하실 건 없다고. 갑작스런 통보에 허를 찔린 어머니는 잠시 전열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하이고~ 내는 빼고 가세요~ 신경 쓰이게 뭣하러 달고 다닐라 쌌노..."

역시나 예상했던 거절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곤 도대체 무엇이 괜찮은 것인지 주어도 목적어도 없이 자꾸 괜찮다고만 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마냥 리조트의 각종 시설과 즐길 거리를 설명했다. 그리고 몸이 건강할 때 많이 돌아다니고 손주들이랑도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한다는 진리도 빼먹지 않았다.

일방적인 서로의 말이 돌림 노래 같이 맴돌았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마지못해 알겠다는 어머니의 대답으로 돌림 노래가 끝났다. 생각보다 길었던 설득의 시간이었지만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이뤄졌다. 비로소 여행 준비가 끝났다.

여행 당일, 날씨가 이렇게 좋을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았다. 한 차에 옹기종기 앉아 거제로 향하는 모두의 만면엔 날씨만큼 환한 미소가 퍼졌다. 분명 무슨 고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나 여행은 어제까지 무슨 고민을 했는지 떠오르지 않게 하는 기억상실을 유발한다. 여행이 퍼뜨리는 아름다운 병이다.
  
3년 만에 찾은 워터파크
 3년 만에 찾은 워터파크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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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기로 한 숙소의 체크인 시간이 오후인 탓에 워터파크로 바로 입장했다. 코로나로 인한 3년 만의 워터파크. 아이들은 탄성을 내질렀고 아내와 나는 정말 오랜만이라며 감탄을 쏟아냈다. 그리고 주변을 한참 두리번거리던 어머니가 말했다.

"와... 내는 이런데 생전 처음 와봤네... 와..."

결혼 전엔 친구들과, 결혼 후엔 아이들과 다녔던 워터파크에 처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와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이번에도 아이들을 위한 장소이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엄마'와 물놀이 왔다는 사실이 내심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오늘 어머니랑 재미나게 놀아야지!'

함께 물놀이 한 적이 언제인가.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강으로 바다로 다니며 보냈던 즐거운 시간들이 단편적으로 떠오르며, 추억의 긴 공백을 오늘 조금 채워 보기로 결심한 중년의 아들이었다.

괜찮다는 분이 이럴 수가

아이들이 주변 시설에 익숙해질 즈음 어머니를 모시고 '익스트림 리버(인공파도를 일으키는 순환 풀)로 향했다. 다시금 '내는 괜찮다'를 남발하시는 어머니. 이미 유아풀에서 흠뻑 젖어 온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도 어머니는 언행불일치를 눈치 채지 못하는 듯했다. 어쩐지 미소가 지어지는 언행불일치. 
저는 눈빛을 믿겠습니다. 어머니.
▲ 말과 눈빛의 불일치. 저는 눈빛을 믿겠습니다. 어머니.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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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는 어머니의 손을 이끌고 들어간 풀의 초입에서 튜브를 두 개 골랐다. 물에 뜨는 용도 외에도 물살로 인한 충돌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범퍼용 대형 튜브다. 그리고 우물쭈물 서있는 어머니를 튜브에 끼워(?) 드렸다. 팔을 뻗어 거대한 튜브를 잡고 뒤뚱거리며 풀로 향하는 어머니. 무슨 캐릭터 같았고 뜻하지 않게 귀여웠다. 벌써부터 추억이 쌓이기 시작한다.

아내와 먼저 시험 삼아 타보곤 어머니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노년의 반열에 들어선 여인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풀에 들어서며 맞이한 첫 번째 물살에 얕은 비명과 함께 어머니 특유의 호탕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흐~ 으~ 하하하하하하하!"

혹시라도 힘들어 하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자 자취를 감춰버렸다. 역시 어머니는 즐길 줄 아는 분이었다.

놀람, 기쁨, 공포, 안도, 아쉬움, 기대.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어머니가 보여 준 리액션은 실로 다양했다. 그 중 저 뒤에서 사람들을 밀어 올리며 다가오는 파도를 보며 뒷걸음질 치는 모습은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쩜 그리 표정이 리얼하신지, 나는 파도와 함께 긴장도 타버렸다.

파도가 덮치기 전의 긴장된 표정. 파도를 맞닥뜨리고 잠시 놀라는가 싶더니 곧바로 신나 하는 모습. 그리고 금세 지나간 파도에 이내 아쉬워하고 다음 파도를 '티나게' 기다리는 모습은 어머니가 얼마나 몰입하여 즐기고 있는지 알게 했다.

그렇게 몇 바퀴를 더 돌고 밖으로 나온 어머니는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워터파크를 즐기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무서워 별 일 없으면 두문불출했던 어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바깥 생활(?)을 만끽했다. 그리고 나는 부모가 잘 노는 모습이 자식이 잘 노는 모습만큼이나 뿌듯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경험은 신나고 노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하루를 불태우고 피곤해 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걱정보다 뿌듯함이 더 크게 밀려 든 것은 아마도 하루 가득 즐거움과 웃음을 채웠기 때문일 테다.

환하게 웃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앞으로도 어머니의 거절을 거절해가며 추억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렇게 쌓은 추억이 행복과 가장 가깝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부모님의 '괜찮다'는 말은 가끔 흘려들어도 '괜찮다'.

저녁 식사 내내 하품을 하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어머니. 부디 그날 식탁에 뿌려진 어머니의 감탄과 웃음이 오래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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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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