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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설명 시작] 까만 선으로 나선이 그려져 있고, 그 끝은 화살표이다. 나선에서 가장 작은 원의 중심에는 ‘탐색 역량, 주제 - 나’라고 적혀 있다. 그보다 조금 더 큰 중간 원의 테두리에는 ‘연결 역량, 자원 연결 - 제 3의 어른’이라고 적혀 있다. 마지막으로, 나선의 끝에는 ‘실행 역량, 결과물 - 일반 대중’이라고 적혀 있다. [그림 설명 끝]
▲ "리얼 월드 러닝"의 과정 [그림 설명 시작] 까만 선으로 나선이 그려져 있고, 그 끝은 화살표이다. 나선에서 가장 작은 원의 중심에는 ‘탐색 역량, 주제 - 나’라고 적혀 있다. 그보다 조금 더 큰 중간 원의 테두리에는 ‘연결 역량, 자원 연결 - 제 3의 어른’이라고 적혀 있다. 마지막으로, 나선의 끝에는 ‘실행 역량, 결과물 - 일반 대중’이라고 적혀 있다. [그림 설명 끝]
ⓒ 김하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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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편 기사에서는 '리얼 월드 러닝(real-world learning)'이란 배움의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바로 학생들이 (1) 나의 관심사에 기반을 둔 주제를 탐색하고, (2) 그 주제와 관련된 사람들과의 연결을 주도적으로 도모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3) 사용자 혹은 청중이 있는 프로젝트 산출물을 만드는 것이다(관련 기사: 학교와 세상의 시차를 좁히는 교육, 바로 이겁니다).

이번엔 이 '리얼 월드 러닝' 모델을 수업에 성공적으로 적용해 온 미국 공립학교 세 곳의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 교육을 예찬만 하려는 건 아니다. 사실 그래서도 안 된다. 미국 공교육은 교육예산 삭감, 기초학력 저하, 지역·인종별 교육격차 등의 문제를 안고 있어 미국인들 사이에선 비판의 목소리 또한 꾸준히 나온다. 

그러나 동시에, 더는 학생들에게 현실과 유리된 지식을 가르칠 수 없다며 학교를 혁신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미국에는 Kauffman Foundation, Big Picture Learning, XQ Institute 등 교육혁신을 위한 씽크탱크와 재단이 다수 존재하며, 이런 기관들은 지역 교육청 및 일선 학교와의 협업을 통해 리얼 월드 러닝을 학교 현장에 적극 도입해나가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업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사는 지역이 기후위기로 사라진다면? 학생들이 직접 소설 써봤다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 시에 있는 뉴하모니고등학교(New Harmony High School)는 환경과 기후위기라는 주제를 중심에 놓고 교육과정을 구성한 차터 스쿨(charter school: 재정은 각 주에서 지원하나, 법 규제에서 벗어나 커리큘럼, 예산, 채용 등을 독립운영할 수 있는 학교, 한국에선 '자율형 공립학교')이다. 이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은 인근의 미시시피 강, 멕시코만, 습지, 늪지대 등 파괴되어 가는 루이지애나의 독특한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2019년, 9학년(한국 기준 중학교 3학년) 인문학(Humanities)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 제프 카버(Jeff Carver)는 환경 문제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신선한 수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바로 기후위기가 더욱 심화될 미래를 상상해서, 자신들이 사는 뉴올리언스 지역을 배경으로 해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기후위기에 관해 공부한 뒤 그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한 학생은 해산물이 대거 멸종하여 루이지애나 문화를 대표하는 음식인 검보(gumbo)가 사라진 미래를 그렸고, 또 다른 학생은 도시가 홍수로 모두 잠긴 상황에서 펼쳐지는 긴박한 탈출기를 썼다. 개개인의 관심사가 소설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학교 밖의 전문가와 연결되는 경험을 했다. 826 New Orleans이라는, 청소년 작가를 양성하는 지역 비영리단체의 도움을 2주간 받으며 소설을 쓰고 피드백을 받은 것이다. <Losing Earth>라는 기후위기 르포를 쓴 작가 나다니엘 리치(Nathanial Rich)도 학교를 방문해 조언자가 되어 주었다. 교사인 제프 카버는 학생들에게 문법과 문장구조 등 꼭 필요한 교과 지식을 가르쳤다.
 
[그림 설명 시작] 바탕은 진한 주황색이다. 표지 하단에는 하얀색 파도가 그려져 있고, 사람의 형상을 한 까만색 캐릭터의 머리가 물 아래 잠겨 있다. 표지 상단에는 책 제목이 쓰여 있다. [그림 설명 끝]
▲ 학생들의 작품을 모은 소설집 <옛날 옛적에 뉴올리언스라는 도시에서> 표지.  [그림 설명 시작] 바탕은 진한 주황색이다. 표지 하단에는 하얀색 파도가 그려져 있고, 사람의 형상을 한 까만색 캐릭터의 머리가 물 아래 잠겨 있다. 표지 상단에는 책 제목이 쓰여 있다. [그림 설명 끝]
ⓒ 826 New Orl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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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학생들은 각자 쓴 소설을 한데 묶어 <옛날 옛적에 뉴올리언스라는 도시에서>라는 120쪽짜리 소설집을 냈다. 826 New Orleans와 함께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했는데, 가족과 지역 주민을 초대해서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기후위기에 대한 학생들의 경각심이 지역사회로 확산된 것이다. 리얼 월드 러닝에서는 이렇게 프로젝트 결과물을 교실 밖의 청중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랜 기간 열정과 고민을 쏟아 만든 작품이 실제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볼 때, 학생들의 성취감과 학습 동기 또한 껑충 뛰고는 한다. 
  
떨어지는 달걀 무사히 착륙시키는 우주선 만들기

이과 과목의 경우 세상과 연결된 프로젝트 수업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선입견을 깨는 사례도 있다. 미국 워싱턴 주 터코마 시에 있는 Science and Math Institute(SAMi)는 수학·과학을 특별히 좋아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작은 공립 고등학교다. 

학교가 2.84km²에 달하는 공원(Point Defiance Park)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덕분에, 학생들은 원시림, 해변, 해양과학센터, 동물원, 실험실 등을 제2의 교실처럼 누비며 생활한다. 그러나 이런 공간적 특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교의 교육 철학이다. SAMi는 '직접 해 보면서 배우기(learning by doing)'와 지역사회 자원 및 전문가와의 연결을 중시한다.  

그렇다면 이 학교의 물리학 수업 시간에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담당 교사인 조니 디바인(Johnny Devine)은 학생들에게 조별로 '미니 우주선'을 만드는 과제를 주었다고 한다. 달걀 네 개를 우주선에 넣고 높은 곳에서 떨어뜨렸을 때, 달걀이 깨지지 않는 최적의 구조를 찾으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만드는 달걀 보호장치 자체는 소박하지만, 이 과정에서 실제로 고민하게 되는 것은 '우주선이 화성 표면에 착륙할 때 안에 든 내용물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프로젝트 이름도 '화성 착륙 미션(Mission to Mars)'이며, 학생들은 이 프로젝트가 현실과 이어져 있음을 알기에 실제 NASA 과학자가 된 것처럼 진지하게 임한다.

이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전문가와의 연결'이다. 학생들이 조별로 '미니 우주선'을 완성하면 조니는 항공우주 분야에서 일하는 현업 엔지니어들을 학교로 초청한다. 학생들은 이 심사위원단 앞에서 자신이 어떤 과정과 판단을 거쳐 결과물을 만들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냥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물리학적 개념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볼 수 있듯, 프로젝트 수업은 지식 전달을 소홀히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교과 지식과 프로젝트는 단단하게 엮여 있어야 한다. 지식을 배우되, 프로젝트를 통해 그 지식을 현실에까지 적용해 보는 것이 리얼 월드 러닝의 핵심이다. 또한, 전문가를 만나 교류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학교에서 하는 공부가 어떤 진로나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홈리스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행동해보기

마지막으로, 코로나 이후 심화된 사회 문제를 잘 포착해 수업으로 연결한 사례를 소개한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모건힐차터스쿨(Charter School of Morgan Hill)은 프로젝트 기반 학습(project-based learning, PBL), 지역사회와의 연결, 학생 가족의 적극적인 참여를 중시하는 학교이다. 

7학년(한국 기준 중1) 학생들에게 인문학(Humanities)을 가르치는 교사 티그 투바크(Teague Tubach)는 코로나 때문에 경제가 악화되고 많은 지역 주민들이 주거불안을 겪게 된 현실에 주목했다. 그는 학생들과 상의한 끝에 '홈리스'를 해당 학기 프로젝트 주제로 정했고, 수업을 어떻게 구성할지 머리를 맞댔다. 

학생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자료 조사'였다. 책과 기사,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홈리스 문제의 근본 원인을 공부했고, 노숙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이렇게 얻은 문제의식을 논설문과 시(詩)에 담아내기도 했다. 교사인 티그는 학생들이 똑같은 과제를 하더라도 각자 글의 주제는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이 저마다의 관심사를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놓은 것이다. 

이후 학생들은 심각해져 가는 홈리스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전시를 기획했다. 직접 어두운 터널을 만들고, 그 안을 다양한 예술작품으로 채워서 관람객들이 실제처럼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구현했다. 이 전시는 결과적으로 총 600여 명의 관람객을 불러모으며 홈리스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바꾸고, 강력한 성찰을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사진 설명 시작] 교실 바닥에 PVC 소재 천이 깔려 있고, 여덟 명의 학생들이 그 위에 앉거나 엎드린 채 마커로 천을 꾸미고 있다. [사진 설명 끝]
▲ 홈리스 문제를 알리는 전시회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모습.  [사진 설명 시작] 교실 바닥에 PVC 소재 천이 깔려 있고, 여덟 명의 학생들이 그 위에 앉거나 엎드린 채 마커로 천을 꾸미고 있다. [사진 설명 끝]
ⓒ Teague Tu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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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시작] 하얀색 구조물에 천을 덮어 씌워서 만든 터널 안에 여러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장 가까이 보이는 작품은 캔버스를 갈색으로 칠한 뒤 울고 있는 한 여성과 그녀를 차갑게 응시하는 여러 개의 눈을 그린 것이다. 작품에는 'I suffer yet they just stare'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설명 끝]
▲ 학생들이 직접 기획한 홈리스에 관한 전시회.  [사진 설명 시작] 하얀색 구조물에 천을 덮어 씌워서 만든 터널 안에 여러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장 가까이 보이는 작품은 캔버스를 갈색으로 칠한 뒤 울고 있는 한 여성과 그녀를 차갑게 응시하는 여러 개의 눈을 그린 것이다. 작품에는 "I suffer yet they just stare"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설명 끝]
ⓒ Teague Tu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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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홈리스들에게 좀 더 직접적인 도움이 되고자 봉사활동을 계획했다. 무료급식소에서 음식을 배식하고, 통조림 식품을 기부했으며, 200개 이상의 위생 키트를 만들어 홈리스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교회와 시민단체 등 지역사회 파트너와 소통하고 협업하는 법을 익혔다. 한 발 더 나아가 주 의원에게 편지를 보내서 지역의 홈리스 문제를 알린 경우도 있었다. 
 
리얼 월드 러닝, 어렵지만 '그럼에도'


여기까지 읽고 나서 '대단하다' 혹은 '어렵겠다'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면, 맞다. 리얼 월드 러닝은 학생뿐 아니라 교사에게도 큰 도전이다. 지역사회 및 외부 전문가와 연계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관리하려면, 당연히 기존 수업보다 훨씬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더 많은 교사가 리얼 월드 러닝을 시도했으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소개한 홈리스 프로젝트를 이끈 교사 티그 투바크에게 이를 직접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저는 세상과 연결된 프로젝트 수업(project-based learning, PBL)를 통해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 협업, 창의력 등의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PBL은 자기 주도적 학습을 독려합니다. 학생들은 단순히 지식과 역량을 수동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과 역량에 대한 주도권을 갖게 되죠."

첫술에 배부르기는 어렵다. 그래서 교사 티그 투바크는 PBL, 즉 프로젝트 수업을 시도하는 첫해에는 딱 하나의 프로젝트만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소소한 프로젝트 단 하나라도 리얼 월드 러닝의 세 가지 요소인 '탐색, 연결, 실행' 역량을 충실히 반영해 설계한다면, 이 또한 학생의 의미 있는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통적 '수업'의 정의를 확장하려는 시도가 더 자주, 더 많은 곳에서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사례 1)
New Harmony High School. "About Us." New Harmony High School, 2018. https://newharmonyhigh.org/about-us/

Team XQ. "Hope, empowerment, and saving the planet at New Harmony High." XQ Institute, 5 June 2019. https://xqsuperschool.org/rethinktogether/hope-empowerment-and-saving-the-planet/

Team XQ. "How a class of young writers explored climate change through storytelling." XQ Institute, 23 January 2020. https://xqsuperschool.org/rethinktogether/how-a-class-of-young-writers-explored-climate-change-through-storytelling/

(사례 2)
Science and Math Institute. "Apply to SAMi." Science and Math Institute. https://sami.tacomaschools.org/about/apply

Suzie Boss. "How Can We Successfully Land a Rover on Mars?" Edutopia, 26 July 2018. https://www.edutopia.org/article/how-can-we-successfully-land-rover-mars

(사례 3)
Teague Tubach. "Using PBL to Teach About Homelessness." Edutopia, 15 June 2022. https://www.edutopia.org/article/using-pbl-teach-about-homelessness

Layla Aviles and Teach Tubach. "Students at Charter School serve their unhoused neighbors." The Morgan Hill Times, 2 June 2022. https://morganhilltimes.com/students-at-charter-school-serve-their-unhoused-neighbors/

덧붙이는 글 | 유쓰망고는 학생이 주도성을 가질 수 있는 공교육 환경을 만드는 교육 비영리단체입니다. 이 글은 유쓰망고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https://blog.naver.com/youthma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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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글 쓰고, 목소리 내는 사람. 유쓰망고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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