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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필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기자의 기사를 자필로 적어봤습니다.
 자필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기자의 기사를 자필로 적어봤습니다.
ⓒ 장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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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전 팀 회의를 한다. 일일 회의 외에도 다양한 회의의 향연이 수시로 펼쳐진다. 상반기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다이어리 두 권을 다 썼다. 과거에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나이와 직급이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일인 듯하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알아야 할 것, 챙겨야 할 것, 보고해야 할 것들이 점점 늘어난다. 반대로 기억력은 줄어들고 있으니 받아 적는 일에 더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다.

매일 꾸역꾸역 메모를 하고 며칠 뒤 다시 펼쳐보면 그날 회의를 대한 태도가 보인다. 내용이 아닌 글씨체가 증거다. 새 물건을 대할 때처럼 새 공책을 쓸 때의 마음가짐도 다르다. 처음 몇 장은 정성스레 작성하고 몇 장만 넘어가면 괴발개발 글씨가 등장한다. 내용을 번역해야 할 만큼 지저분한 페이지도 많다.

필체에는 인품과 성격이 묻어있다

"필적은 '뇌의 흔적'이자 '몸짓의 결정체'입니다. 행동 습관인 필체를 의식적으로 바꾸면 성격도 바꿀 수 있습니다. 성격이 바뀌면 다시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결국 인생이 달라집니다."

대한민국에서 필적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구본진 변호사의 말이다. 구 변호사는 도서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책에서 "글씨에는 인품과 성격이 묻어있다"는 통념을 넘어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라고 강조한다.

필체 하나로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인품과 성격이 묻어있다는 의견은 공감한다. 중학교 1학년 때 내 글씨만 보고 선생님이 서기를 시켰다. 그 뒤로 3년 내내 서기를 했다. 그저 선생님 말씀을 학급 일지나 칠판에 받아 적는 일이었지만 정성을 다했다. 글씨뿐만 아니라 공부도 열심히 하고 마음가짐까지도 바르게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올해의 첫 번째 다이어리는 시작 페이지부터 너저분했다. 정신없이 바쁘게 한 해를 시작했다. 두 번째는 A4용지만 한 두툼한 공책으로 바꿨다. 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끝까지 정성스러운 글씨를 유지하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그날 해야 할 업무를 정리하고 팀원들 업무 보고 내용을 차분한 마음으로 받아 적는다. 매일 아침 인격 수양의 기회를 얻어 실천하고 있다.

회의 시간은 가끔 글씨 연습 시간이다

요즘 자필로 무언가를 작성하는 일은 드물다. 낭만의 상징이었던 자필 편지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일반인이 볼펜을 쥘 일은 관공서 등에서 직접 이름을 쓰거나 사인을 해야 할 때 정도 아닐까. 때문에 회의 시간에 무언가를 받아 적을 수 있는 시간은 소중하다. 중요한 회의에는 노트북을 들고 들어가거나 녹음을 해 텍스트를 추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소한 회의 시간에는 여전히 다이어리에 정성을 담은 자필을 즐긴다.   

시대가 바뀌어 아이들도 자필로 무언가를 적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학교나 학원에서 노트 필기 시간도 없다. 시험에서 주관식 답을 적을 때 정도려나. 요즘은 일기 숙제도 없다. 아쉽다. 일부 분실했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쓴 자필 일기를 열 권 넘게 보관하고 있다.

글쓰기와 글씨 쓰기 연습에 일기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가족 일기장을 만들었다. 글씨체에서 가족 성격이 보인다. 신기하다. 급한 마음이 글씨 쓰는 속도를 넘어서는 아들 글씨는 훨훨 날아다닌다. 딸내미는 자신의 글씨를 감상하고 즐기며 감탄하느라 글씨에서도 여유가 느껴진다.

글씨는 사람의 마음을 담는다. 자필로 무언가를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성을 다해서 적어보는 것을 권한다. 지겨운 회의 시간을 가끔은 글씨 연습 시간이라 여겨보면 어떨까. 상사의 짜증 나는 잔소리가 정성 어린 글씨에 묻혀 조금은 중화되지 않을까. 글씨 쓰는 재미에 회의가 조금은 덜 지루해지지 않을까. 더불어 '난 지금 인격 수양 중'이라는 마음은 하루를 넉넉하고 차분하게 채워줄 것이다.
 
기자의 자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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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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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직장인, #글쓰기, #글씨쓰기, #자필, #인격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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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직장인,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아빠, 매 순간을 글로 즐기는 기록자. 글 속에 나를 담아 내면을 가꾸는 어쩌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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