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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4월 명지대 강경대의 죽음 이후 학생들의 분신이 잇따르자 시인 김지하는 5월 5일 <조선>에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우라"는 글을 게재, 학생운동을 비판했다.
 1991년 4월 명지대 강경대의 죽음 이후 학생들의 분신이 잇따르자 시인 김지하는 5월 5일 <조선>에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우라"는 글을 게재, 학생운동을 비판했다.
ⓒ 조선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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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죽음의 굿판'필화는 오랫동안 트라우마가 되었다.

생명운동ㆍ율려운동 등을 벌이고, 대학에 출강, 각종 매체에 기고와 인터뷰를 하면서 명성이 따라도 민주진영의 문인, 후배, 청년들은 여전히 그의 행위를 사시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조선일보> 기고가 남긴 지우기 어려운 상처였다. 

민주진영에서는 그가 지난날의 '과오' 또는 '실책'을 사과하고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대하였다. 그의 발언에는 어김없이 날선 비판ㆍ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래서 트라우마는 좀체로 아물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죽음의 굿판' 일주일 후 같은 신문에 쓴 기고문에서 <척분(滌焚)>이란 제목의 시를 덧붙여서 '사과'의 뜻을 밝힌 바 있다. "물로 불탄 곳을 씻음"이란 뜻이 내포된 <척분>이다.

 스물이면
 혹
 나 또한 잘못 갔으리
 가 뉘우쳤으니
 품안에 와 있으라 
 옛 휘파람 불어주리니 
 모란 위 사경(四更) 
 첫이슬 받으라
 수이
 삼도천(三途川) 건너라. (주석 1)

공식적으로 그가 필화사건 관련하여 사과한 것은 1999년 여름이다. <월간 말>과 인터뷰에서였다. 

- 진보진영과 불화를 겪으신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는데요. 이제 화해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 내가 오늘을 빌어서 두 가지 사과할게요. 첫 번째, 글이 너무 날카로워서 흥분해 있던 젊은이들 마음을 상하게 한 것 사과할게. 두 번째는 내가 그때 아팠기 때문에 선배로서 조금 더 따뜻하게 조언을 못한 거. 즉 적절한 루트나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공개적인 매체를 통해서 갈긴거, 이건 지금도 내가 그렇게 잘했다고 생각 안해. 이 점 사과할게요. 그런데 이건 잘 모를 거요. 그 글 쓰고 난 뒤 일주일 후에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문이 또 나갔어. 마지막으로 천도되도록 진혼가도 썼어. 

나한텐 조금 이상한 게 있어요. 귀신의 울음소리를 다 들었다고, 삼도천을 못 건너는 거야. 내가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거, 아파했다는 거, 그것만은 기억해 달라고 하고 싶어. 내가 절대로 젊은이들에게 무자비한 사람이 아닙니다. 젊은이들한테 이 말은 부탁하고 싶어요.  

이제부터는 나에게 완전히 동의는 못하더라도 서로 끈을 만들면서 같이 갈 수는 있지 않겠느냐. 그렇게 같이 가다보면 과거 문제는 다 풀릴 것이라고 봐요. 그때 유행했던 말처럼 3억을 받았느니 뭐니,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 그것은 좀 믿자. 그 말만은 하고 싶어요. 참 변명이 길었네. (주석 2)

두 번째는 <실천문학> 2001년 여름 김영현(발행인, 소설가)과의 대담 '대립을 넘어 생성(生成)의 문화로' 에서이다. 관련 부문이다.

김영현 : 어쨌든 그 당시 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은 운동권뿐만 아니라 일반 청년들까지 전체 사회에 대해 큰 좌절감과 배신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그들이 30대 초반에 이르렀는데 그 세대들에 대해서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씀은 없습니까? 

김지하 : 지나간 10년은 참으로 덧없는 세월이었어요. 돌아간 분들에 대해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쓰라려 그때의 상처가 젊은이들의 가슴에 생각보다 더 아프게 새겨진 것 같아. 유구무언(有口無言)입니다.

수운 선생의 시에 호소호언고래풍(好笑好言古來風)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좋게 웃고, 좋게 말하는 것이 우리 조선의 오랜 풍습이고 인심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대신하며 이제 피차 서로 그만 잊고 웃음 속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앞으로 새로운 일 서로 힘을 합쳐 했으면 좋겠어요. (주석 3)

그의 사과와 관련 다음과 같은 증언도 있다.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이후 어느 날 갑자기 김지하 시인이 박정희기념관 반대 1인 시위를 마치고 작가회의 사무실에 들렀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김지하 시인은 '생명운동'을 위한 네 개의 고언 중 하나가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인데, 하필 그 글을 1번으로 조선일보에 발표한 게 잘못이라고 까마득한 후배들과 마주 앉아 사과했습니다. 이때 저는 개인적으로 '매우 위대한 역사적 인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이것이 우리 문학사에서 거장이 자기 발언을 사죄한 최초일 겁니다. (주석 4)


주석
1> <회고록(3)>, 222쪽.
2> <월간 말>, 1999년 9월호, 인터뷰어 안철홍 기자.
3> <실천문학>, 2001년 여름호.
4> 김형수, <생명사상의 선구자 김지하를 위한 변명>, (김지하 추모좌담), <쿨투라>, 53쪽, 2022년 7월호.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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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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