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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초기 조선의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위해 젊음을 바쳤으나, 청나라로부터는 모략당했고, 조선으로부터는 추방당했으며, 본국 정부로부터는 해임당했다. 어느 날 일본의 호젓한 산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의인 조지 포크에 대한 이야기다. 이해를 돕기 위해 조지 포크의 시점을 가상으로 설정해 서술한다. 내용은 각종 문헌과 자료 등에 근거했다.[기자말]
George Clayton Foulk(1856-1893)
▲ 조지 클레이턴 포크 George Clayton Foulk(1856-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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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아마 여러분들은 서양에 물들기 전의 조선인의 삶을 실감하기 어려울 거예요. 온톤 서구화됐기 때문이죠.

나는 1884년 11월 1일부터 한 달 반 동안 조선의 남부 지역을 여행했답니다. 그야말로 조선의 심연 속으로 들어간 거죠. 이제 그 때의 체험과 관찰을 얼핏 설핏 불러내 보겠습니다. 

내가 서울을 나선 것은 11월 1일이었는데 일종의 이문명 탐험이므로 나로서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죠. 당시 조선의 실세 민영익, 그리고 나의 절친 서광범이 도와줬습니다.

행차는 조선의 벼슬아치 같았지요. 동행으로서는 일본어를 구사하는 전양묵이라는 양반과 정수일이라는 나의 수행비서, 한 명의 하인, 12명의 가마꾼, 2명의 말잡이 소년(11월 5일 공주에서 한 명이 추가돼 3명이 됨)이었지요. 그러니까 나까지 포함하여 인원이 총 18명이었어요. 거기에다 말이 두필, 가마가 3대였지요. 휴대품으로는 트렁크 5개, 손가방 3개, 사진기, 삼각대, 총기 상자, 돈 바구니였지요.
  
우리 일행이 청계천 수표교 근처의 내 집에서 출발한 것은 11월 1일 오전 8시 58분이었습니다. 그 후의 여정을 나는 분단위로 남김없이 기록했습니다. 뿐더러 자연 지리와 물산, 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또한 적었지요. 인상적인 몇 장면만 불러내 볼까합니다. 

11월 7일 나는 유명한 은진미륵을 보았습니다.

미륵불상은 지상 약 100피트 높이에 위치한 암벽을 깍아 만들었더군요. 스님들의 말에 의하면 고구려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나는 산스크리트어를 좀 알기 때문에 혹시 산스크리트로 적힌 글이 없나 살펴 보았지만 그건 없었고 한문이 적혀 있는 판대기가 보였습니나. 그 의미는 이러했습니다.
 
고구려 시대에 시골 소녀 하나가 산 비탈에서 땔나무 감을 모으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서 큰 바위가 솟아 오르더라. 놀란 소녀는 관아로 달려가서 이를 고했고 관아에서는 조정에 고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무슨 뜻인가? 사람들이 놀라워 하며 이건 필시 부처님이 오신다는 뜻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나라에서 이 불상을 만들었다.

미륵불을 뒤로 하고 전라북도 용안(Yongan, 현재 익산)에 도착하니 4시 45분. 매우 피곤한데 온 마을 사람들 나를 보러 나왔더군요. 나는 떠밀리듯 관아의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 테이블이 있었습니다! 등받이 의자가 네 개가 있고 중국식 탁자보가 덮혀 있었습니다.

이곳 용안은 금강 남쪽 언덕배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민가 150채 정도의 작은 마을입니다. 숲이 우거져 있는 그림같은 곳이었어요. 나는 수행 비서 전양묵에게 나의 명함과 여권을 주면서 현감에게 인사를 전하라고 했지요. 

미 해군에 USS Alert호라는 군함이 있었는데 예전에 용안에서 진수했을 때 현지 관리로부터 친절한 평의를 제공받았다는 사실을 나는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혹시 그 고마운 관리가 현재의 현감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양묵에게 알아보고 오라고 했지요. 만일 그가 그 사람이라면 나는 정중히 예방해 감사를 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현감을 만나고 돌아온 양묵이 현감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즉, Alert호의 진수식이 여기서부터 강경 사이에서 이루어졌는데 자신과 은진 현감이 Alert호에 관리와 짐꾼과 음식물을 보냈다고요.

그렇다면 나는 내일 제복을 차려 입고 현감을 방문해야겠다, 미국 정부를 대신해 그에게 감사를 표해야겠다, 이건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현감이 나의 숙소로 일본어 통역을 대동하고 찾아 왔습니다.

현감은 젊은 사람으로 매우 쾌활했으며 흥분된 표정이었습니다. 아마 술을 한 잔 한 것 같았습니다. 그는 나를 보자 기뻐했습니다. 그는 서양 문명에 열정적이었는데  놀랍게도 서양풍의 바지 저고리를 입힌 소년 하나를 대동하고 왔습니다. 매우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소년은 그런 차림을 자랑스러워 하는 양이었습니다. 나는 소년에게 옷에 달 수 있도록 해군 제복의 단추를 한웅큼 집어주었지요. 이에 소년도 주위 사람들도 즐거워하더군요. 

현감은 호들갑스럽고 과장된 인사말을 했습니다. 틀림없이 내게 과공을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지요.

일본어 통역관은 인근에 있는 조세창의 수세관이었습니다. 수세관은 미곡 창고를 감독하는 정부 관리의 이름으로 창 한 곳에 한 명씩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에 대해 오래 전부터 들었는데 여기에서 만나게 되니 매우 기쁘다고 말하더군요.

정수일은 예전에 현감이 일본 방문했을 때에 동행한 적이 있어 서로 아는 사이였습니다. 또한 양묵은 일본어 통역관의 형과 매우 가까운 사이더군요. 이렇게 되자 그날 밤 내 방에서 이 사람들이 모여 몹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지요. 이건 내가 서울을 떠난 이래 어떤 곳에서도 겪지 못한 기이한 체험이었습니다.

그곳 관리들은 내가 내일 여기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의 환대는 더 이상 극진할 수가 없었습니다. 헤어진 뒤 이내 현감이 많은 꽃을 보내와 내 방을 화사하게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문명의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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