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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기사에는 소설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학기 초 교사 동아리가 몇 개 만들어졌다. 그 중 코바늘 동아리와 독서토론 동아리에 이름을 올렸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각자 자신의 생활을 얘기하며 코바늘을 배우거나, 부담 없는 책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비록 한 시간이지만 두 모임은 사실상 수다를 위한 시간이었다.

목적 없는 이야기가 있을 수도 없고 그럴 짬도 없는 학교 생활 속에서 비록 한 달에 한 번이지만 동아리 모임은 이곳도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부서가 다르면 만날 수도 없던 사람과도 내면을 터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되었다. 숨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바쁜 가운데서도 각각 두 번의 모임이 있었다. 그리고 7월의 책이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였다.
 
김영하 <작별인사> 책 표지
 김영하 <작별인사> 책 표지
ⓒ 복복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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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의 하루는 기계적 움직임 같다. 50분, 8분, 2분마다 울리는 음악에 따라 정해진 시간 교실에서 나오고, 쉬고, 다시 수업에 들어간다. 수업이 없으면 다시 음악이 울릴 때까지 행정업무를 처리하거나 학습자료를 준비한다. 쉬는 시간도 효율이 최우선이다. 자유로운 사고나 상상을 배제하면 하루가 알찼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면 잘 짜인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인간 아닌 로봇 통해 얻는 깨달음

<작별인사>는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 '철이'의 이야기다. 휴먼 매터스의 연구원인 아버지와 평화롭게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던 철이는, 어느 날 아버지에게 우산을 주러 나왔다가 등록되지 않은 휴머노이드로 잡혀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자신을 인간이라고 철석 같이 믿고 살아온 철이는 미등록 휴머노이드들이 갇혀 있는 수용소에서 자신이 정말 인간인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등에 관한 고민을 시작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나는 인류가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이런 의문들을 품어왔다는 것을 고전 SF 영화나 소설 등을 보면서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수용소는 철이에게는 혼돈의 세계다. 그곳에는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휴머노이드인 '민이', 무등록 휴머노이드와 다를 바 없는 복제인간 '선이'가 있다. 선이와 민이의 도움으로 철이는 그곳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고, 무사히 살아남는다. 그러다 수용소의 혼란을 틈타 셋은 탈출하고 철이는 아빠를 찾아 나선다.

작품은 철이의 여정을 따라간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고 철학적인 사유를 즐기는 철이의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의 이분법을 허무는" 여정이다. 인간의 따뜻한 감정마저 장착한 휴머노이드 철이의 선택과 그가 만난 사람, 로봇, 자연을 보여 준다.  

인간의 언어를 쓰는 셋, 민이와 선이와 철이의 탄생과 죽음, 다채로운 미완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셋의 선택은 치열하고 깊다. 작품은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나는 행운'과 그런 자들이 '마땅히 갖춰야 할 윤리'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바로 세상의 고통을 줄이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이 지구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압도적으로 생산해내는 존재는 바로 인간입니다. 누구도 인간만큼 지속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다른 종을, 우리 기계까지도 포함해서 착취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지독하고,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것을 동원해 닥쳐온 시련과 맞서 싸웠을 때만, 그렇게 했는데도 끝내 실패했을 때만 비로소 끝이라는 걸 받아 들"인다고 말하는 선이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인간에 대한 냉정한 성찰과 노력 때문인지 마지막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고요하게 무로 돌아가는 죽음. 그런 선이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는 철이도 완벽하게 무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나는 버튼을 누르지 않기로 했다. 선이의 생각이 맞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는 팔을 내려놓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하겠지만, 그래도 언제 어디서든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꿈도 없는 깊고 깊은 잠을 자면 된다."

둘은 마치 성숙한 인간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더 짧은 지금, 남은 삶의 모습이 어때야 할까를 숙제처럼 고민하며 산다. 더 많은 것을 지키고 소유하고, 자신이라는 존재의 흔적을 끝까지 남기려고 하는 인간의 욕심과 달리 휴머노이드 로봇 철이와 영적인 선이의 죽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를 잃지 않을 것

앞서 말했듯이 학교의 나는 사람이 아닌 로봇 같다. 몸도 마치 녹슨 기계처럼 삐걱거린다. 그런 상황에서 실수가 없이 완벽한 하루를 보내는 날은 분명 좋아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더 헛헛하다.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고 업무에 집중하고 한 시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서 하루가 저물면 피곤한 육신은 다시 완벽한 내일을 위한 오프 스위치를 허락한다.

그런 일상에서 동아리라는 이름으로 모이고 보내는 한 시간은 기계의 틀을 허무는 시간 같다. 비로소 내가 되는 시간. 허술하고 빈틈 많고 그래서 때론 실소와 담소, 폭소를 유발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의 시간이고, 다음을 잊고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긴장을 잊는 시간이다.

다시 본연의 업무로 돌아오면, '선이'의 말마따나 제정신으로는 살아 남기 어려운 일상이 반복된다. 이런 나에게 책은 직장생활의 자세에 대해 지혜를 준다. 정신 차리라고, 지금 내가 어떤 존재인지에 집중하라고, 오늘과 다름없을 내일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고, 그리하여 따르게 되는 불행을 피하라고 점잖게 충고한다.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집중하세요.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 집착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늘 불행한 것입니다."

방학이라는 쉼이 있고 2학기라는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미리 교재를 살피고 평가 계획을 세우고, 수행평가 과제를 정리한다. 그 사이에 작가의 말처럼 필멸의 존재로서의 마감의 시간도 생각한다. 앞으로 잊지 않아야 할 한 가지, 인간으로서의 번거로운 불편함을 소중히 여길 것. 그리하여 '나'를 잃지 않을 것. 

<작별인사>는 소설이지만 에세이 같고, 그러면서도 철학적 깨달음을 준다. 학기 중에도 나를 긴장에서 벗어나게 했던 동아리 활동은 방학중에도 제 역할을 다한다. 느긋하게 읽고 사색하고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래도 마음은 가볍다. 완벽하진 않아도 오롯이 내가 있었고 지금은 그래도 되는 시간이다.

작별인사

김영하 (지은이), 복복서가(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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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씁니다. 50대 후반, 남은 시간을 고민하며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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