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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 <조선일보>에 실린 김지하 시인의 특별기고 '한류-르네상스 가로막는 쑥부쟁이'
 12월 4일 <조선일보>에 실린 김지하 시인의 특별기고 "한류-르네상스 가로막는 쑥부쟁이"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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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파격적인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12월 4일자 <조선일보>의 특별기고 <한류 - 르네상스 가로막는 '쑥부쟁이'>에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김 시인은 4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 <한류-르네상스 가로막는 '쑥부쟁이'>에서 "못된 쑥부쟁이가 한류-르네상스의 분출을 가로막고 있다. 자칭 한국 문화계의 원로라는 '백낙청'이 바로 그 쑥부쟁이다"라며 열 가지 근거를 나열했다. 김 시인은 백 교수가 "긴 세월 내내 마치 한국 문화사의 심판관인 듯 행세해 왔고 그 밑천을 겨우 '하버드대에서 영문학', 소설가 몇 사람 공부한 것으로 내세워왔다"며 백 교수의 평론은 평론이 아니라 공연한 시비라고 폄훼했다. 

또 백 교수가 사상적 스승으로 일컫는 리영희씨도 '깡통 저널리스트'에 불과하다며 백 교수를 향해 "내가 '깡통 빨갱이'라고 매도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알라"고 노골적 비난을 퍼부었다. (주석 5)

그의 과격한 발언을 놓고 인터넷에서는 찬반 논란이 뜨겁게 전개되었다.

"자신에게 씌워졌던 '빨갱이'란 누명을 거꾸로 다른 사람에게 씌우고 있다", "유신독재와 박근혜의 나팔수가 됐다"는 비난이 대다수였지만, "고문 후유증" "박정희 정권의 피해자"라는 동정론도 등장했다.

백낙청은 12월 5일 '희망2013 승리2012 원탁회의' 좌장 격으로 출연한 라디오 방송에서 "한류-르네상스를 가로막을 힘이 있다면 그거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며 "김지하 형이 그런 얘기를 했다는 건 좀 슬프다. 나름대로 김지하 시인을 아껴왔다고 생각하는데 김 시인이 그렇게까지 생각이 바뀐 것은 아무래도 서운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시인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3 체제가 도대체 무슨 뜻이냐. (문재인에게) 편향된 짓이고 (북한과)어떻게 연합하느냐의 문제"라며 "이렇게 가면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부인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도 "이제 우리는 나이도 많고 편하게 살 수 있지만 지금 상황은 도저히 아니라고 생각해서 김 시인이 나선 것"이라며 "욕설만큼 칭찬과 격려도 엄청 들어온다. 말릴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김 시인은 백 교수의 '자질론'을 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백낙청 교수와의 정치적 입장차이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석 6)

시민기자 박주현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리영희ㆍ백낙청 '깡통'에 비유…박근혜 지지서글퍼"란 기고문에서 김지하를 비판한다.

그는 이번에도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보수신문을 통해 후안무치의 궤변을 쏟아냈다. 그동안 그가 이곳저곳을 돌며 열변을 토했던 '사상과 정치의 대변혁 필요성'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모습이다. 대선을 앞두고 왜 그는 무절제한 독설로 세간의 주목을 끌려는 것일까.

그는 실천적 비평과 민족문학 운동을 일관되게 펼쳐온 백 교수를 향해 뜬금없이 "북한 깡통들의 '신파조'를 제일로 떠받들고 있다"는 둥, "전혀 무식하다"는 둥, 심지어 그의 평론 행위에 대해 "그것은 공연한 '시비'에 불과하다"고 멸시하기까지 했다. 

그는 고인이 된 박경리 소설가의 작품평까지 언급하면서 백 교수의 문학평을 "너절하고 더러운 방담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훼했다. 참으로 민망하고 듣기 거북한 궤변이다. 더욱이 이같은 상식밖의 그의 행보가 최근 대선을 앞두고 자주 목격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주석 7)

1970년대부터 마당극과 판소리로 그와 함께하면서 담시 <오적>, <소리내력>, <똥바다> 등을 판소리로 만들어 공연해온 임진택은 "김지하는 그 일로 해서 어떤 안위나 이득을 취한 것이 전혀 없어요. 그의 질타는 배신이 아니라 동지 후배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에서부터 나온 것이고, 그의 포용은 변절이 아니라 더 큰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확장과 통합의 모색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라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김 시인의 신병에 대해 언급한다. 

이 두 개의 사건은 김지하 시인 스스로도 훗날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이라고 술회했지요. 그렇다면 이런 깊은 오해를 불러올 발언이나 판단이 도대체 왜 불거져 나왔을까? 여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어요. 지하 형님은 오랜 독감방 생활 속에서 깊은 병리학적 증세를 얻은 게 사실입니다. 가혹한 외상(外傷)으로 인한 트라우마의 일종인데, 감옥에서의 고통스런 인내와 사유는 섬광(閃光)과 섬망(譫妄)을 동시에 동반했어요.

섬광은 우주생명ㆍ자연생명ㆍ인간생명에 대한 깨달음으로 왔고, 섬망은 뇌 활동을 훼방하는 어두운 그물로 작동한 것이지요. 김지하가 불시에 저지른, 정상을 벗어난 언행은 대체로 섬망 속에서 일어난 일시적 정신착란과 연관이 있어요. (주석 8) 


주석
5> 앞과 같음.
6> 앞과 같음. 
7> <오마이 뉴스>, 2012년, 12월 5일.
8> 월간 문화전문지 <쿨투라>, 2022년 7월호, <김지하 추모 좌담>.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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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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