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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
▲ 김지하 시인. 김지하 시인.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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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젊은시절 폐결핵을 앓고 있을 때 머리맡에 써 놓은 투병의 좌우명이 있었다.

독립운동가 무정(武亭) 장군의 전략표어다. 
"단대심소(旦大心小), 간담을 크게 갖되 마음은 잘게 가지라!" (주석 9)

'단대심소'는 자신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박정희 독재에 맞선 반독재 투쟁은 아무나 하기 어려운 결기이었다. 또 그 딸인 박근혜 지지선언 역시 민주진영의 명망가라면 변절 정치인 몇 명을 빼 놓고는 드문 일이었다. 

<조선일보>에 쓴 곡필은 뒷날 사과를 하고 화해를 하고자 했으나 박근혜 지지와 민주인사들에 대한 폄훼발언은 그런 형식이나 절차도 없이 그는 노령에 들었다. 

생애의 마지막 10여 년에 보인 그의 정치적 행보는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고 비판했습니다. 그 비난ㆍ비판의 일정한 정당성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병고에 시달리다 노년에 들어선 김지하는 지난날처럼 그 비난과 비판 안에 들어 있는 합리적 핵심을 붙잡아 자신의 인간적 성장을 위한 거름으로 삼을 힘을 이미 잃었던 것 같습니다. 그 점이 김지하를 사랑했던 동료와 후배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합니다. (주석 10)

김지하는 병약하고 불운했던 그러나 독일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된 프리드리히 횔덜린을 좋아하고 경외심을 가졌다. 시집 <화개>에 '횔덜린'이란 시를 실었다. 반평생을 가난과 정신착란에 시달리며 불운한 삶을 산 횔덜린은 프랑스혁명을 지켜보며 혁명의 이상에 고취되기도 했지만 자코뱅파의 급진 정치에 반대하였다. 

괴테ㆍ피히테ㆍ노발리스 등 대문호와 사귀면서 문학적 소양을 키우고, 자신을 돌봐주던 싱클레이지가 반체제 활동의 이유로 구속되고 그도 공모 혐의로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되었다. <그리스의 은자>ㆍ<엠페도클레스의 죽음> 등을 남겼다. 김지하는 횔덜린에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던 것 같다. 두 시인은 닮은 대목이 적지 않다.

    횔 덜 린

 횔덜린을 읽으며
 운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즐거워서 사는 것도 아니다

 어둠이 지배하는 
 시인의 뇌 속에 내리는

 내리는 비를 타고
 거꾸로 오르며 두 손을 놓고
 횔덜린을 읽으며
 운다

 어둠을 어둠에 맡기고
 두 손을 놓고 거꾸로 오르며

 내리는 빗줄기를 
 거꾸로 그리며 두 손을 놓고
 횔덜린을 읽으며
 운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즐거워서 사는 것도 아니다'


주석
9> 김지하, <단대심소>, <문학과학사>, 20쪽, 2001.
10> 염무웅, <수난과 구도의 삶을 기억하며>, <김지하 시인 추모 문화제>, 42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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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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