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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초대 경찰국장이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에 마련된 행정안전부 경찰국에서 열리는 기자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김순호 초대 경찰국장이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에 마련된 행정안전부 경찰국에서 열리는 기자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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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에 대한 시행령 위헌성 시비가 가라앉기도 전에 초대 경찰국장 임명의 적절성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초대 경찰국장으로 임명된 김순호 치안감의 '수상한' 과거 행적이 이슈로 떠올랐다. 그가 1980년대 이른바 '프락치'로 활동한 대가로 경찰로 특채됐다는 의혹이다.

김순호 경찰국장은 서슬퍼런 제5공화국이 출범한 1981년 대학에 입학한 뒤 운동권으로 활동하다가 군에 강제 징집됐다. 그는 전두환 정권이 추진한 이른바 '녹화 사업'의 수많은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던 셈이다. 징집에 풀려나 제대한 후에도 그는 위장 취업을 통해 노동운동을 이어나갔다.

'녹화 사업'이란, 광주 학살로 권력을 탈취한 전두환 정권이 군부독재를 비판하는 대학생들이 좌경용공 사상에 물들었다면서 사상 개조를 명목으로 실시한 정책이다. 당시 운동권 대학생들을 군대에 강제 징집하는가 하면, 대학 내 '프락치' 활동을 강요하기도 했다. 1982년부터 3년 동안 대상자만도 1000여 명에 이르렀으며, 그 과정에서 사망자도 속출했다.

자취 감춘 김순호, 시작된 탄압... 이후엔 대공보안 전문가로 승승장구

과거 김순호 경찰국장은 1988년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 가입했고, 지역 내 활동의 책임자인 지구위원장에까지 올랐다. 당시 인천과 부천은 노동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곳이었다. 이듬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일부 인노회 회원의 구속영장이 신청되자 경찰의 탄압이 본격화됐다.

지역 조직의 책임자였던 그가 자취를 감춘 건 그즈음. 몇 개월 뒤 그는 경장 직급으로 경찰에 특채됐다. 얄궂게도 자신이 한때 신념을 공유했던 노동운동가들을 색출하고 처벌하는 대공 보안 분야의 전문가로서 승승장구하며 지금껏 경찰 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 국장은 과거 행적이 논란이 되자 여러 언론에 '주체사상에 경도돼가는 인노회의 활동에 회의를 느껴 잠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낙향해 고시 준비를 하다 경찰에 자수했고, 당시 경찰이 대공 특채를 제안해 경찰의 길을 걷게 된 것'이란 설명이다. '주사파에 물들까 걱정했을 뿐 동료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만한 진술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는다고 해도 의혹은 그대로 남는다. 인노회의 핵심 활동가였던 그가 신념에 회의가 일어 조직을 이탈해 그 조직을 와해시키고자 혈안이 된 경찰의 일원이 됐다는 건 '프락치'의 전형적인 궤도다. 더욱이 그는 그가 버린 신념, 곧 주체사상을 일망타진하려는 대공 보안 부서에서만 줄곧 근무했다.

그것도 인노회 사건을 수사한 치안본부 대공 수사 3과가 그의 첫 부임지였다. 그가 인노회를 탈퇴하고 자수해 경찰로 특채된 뒤 곧장 인노회를 수사하는 부서에 배치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조직은 배반했지만, 동료들을 밀고하지 않았다는 그의 해명은 당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여전히 남은 의혹... 민주화운동 희생자를 욕보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 내 게재된 최동 열사 관련 자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 내 게재된 최동 열사 관련 자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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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로 특채된 이후 그의 옛 동료들과 인연을 완전히 끊은 것도 '밀고설'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대학 선배이자 오랫동안 인노회에서 함께 노동운동을 해온 최동 열사의 비극적인 죽음조차 그는 외면했다. 장례식은 물론, 3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추모식에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다고 한다.

최동 열사는 그가 종적을 감춘 즈음 치안본부에 연행된 뒤 온갖 고문을 당했고 극심한 후유증을 앓았다. 최동 열사는 고문 후유증을 호소하며 주변에 "치본 들어간 이후 내 몸이 망가졌다"고 하소연했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료 참조). 그리고는 이듬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나이가 고작 서른이었다. 지난 7일은 그의 32주기였다. 노태우 정권의 노조 탄압이 극에 달하던 때로, 거리에 최루탄이 난무하던 나의 대학 새내기 시절이기도 했다.

아무리 신념에 회의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대학 이후 생사와 고락을 함께해온 선배의 황망한 죽음을 지금껏 나 몰라라 한 건 인간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백 보 양보해서, 밀고하지 않았다고 한들 한때 동지였던 선배의 죽음을 안다면, 치안본부의 후신이라는 경찰국의 수장 자리는 거절하는 게 순리에 맞지 않을까.  

최동 열사는 지금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 기념공원에 잠들어 있다. 그의 노동운동이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기여했음을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셈이다. 그의 1년 후배인 김순호 치안감은 불법사찰과 인권탄압을 자행해온 치안본부에서 활약한 공적으로 현 정부의 핵심 요직에 발탁됐다. 그의 경찰국장 임명은 최동 열사의 비극적 삶을 넘어 민주화운동을 하다 희생당한 수많은 이들을 욕보이는 짓이다.

그에게 '경찰국장'이란 어떤 의미일까
 
지난 2일 출범한 행안부 경찰국 사무실이 있는 정부서울청사 사무실에서 3일 관계자들이 통신선 공사를 하고 있다.
 지난 2일 출범한 행안부 경찰국 사무실이 있는 정부서울청사 사무실에서 3일 관계자들이 통신선 공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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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경찰국장 임명을 막고, 법적으로 단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저기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무질러버리는 형국이다. 진짜 '소설 같은 이야기'일 테지만, '주체사상의 발호를 막기 위한 구국의 결단'이었다며 순순히 고백한다 해도, 여론이 양극단으로 찢긴 현실에서 되레 박수를 보낼 사람도 없진 않을 것이다.

그의 과거 행적을 통해 일제강점기에 암약한 밀정을 떠올리는 이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당시 노동운동가를 독립운동가로, 전두환 정권을 조선총독부로 치환하면, 그는 영락없는 고등계 형사, 곧 '밀정'이다.

"(인노회 활동가들은) 노동운동을 한 게 아니고 주사파 운동을 한 것이다. 이들은 순수한 노동운동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의식화, 조직화 운동을 한 것이다. 민주화운동으로 미화시켜선 안 된다."

김 국장이 <한겨레>에 자신과 관련된 의혹을 반박하며 한 말이다. '색깔론'을 꺼내들어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 국장은 인노회가 이미 2020년 대법원 재심판결에서 노동운동 단체로 확정했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해명하면 할수록 그의 처지가 더욱 궁색해지는 모양새다.

이쯤 되면 특채 당시 동료들을 밀고했는지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한때 자신이 지녔던 신념에 대한 회의가 그 신념을 지닌 다른 이를 향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고, 나아가 스스로 앞장섰다는 점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인다. 그에게 과연 초대 경찰국장이라는 자리란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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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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