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9 10:47최종 업데이트 22.08.19 10:47
  • 본문듣기

새로운 알림을 받을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솔직히 말하면, 모르는 사람에게서 오는 메시지가 두렵다. 새로운 알림을 받을 때마다 혹시 욕설, 시비, 위협이 아닌지 신경이 곤두선다. 그따위 저열한 메시지 때문에 위축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두려움이 먼저 발동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잔뜩 긴장한 채로 메시지를 열어보고 우려했던 내용이 아님을 확인해야 비로소 안도한다. 그제야 마음 놓고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천천히 읽는데 이미 기쁨이 반감된 지 오래다. 테러 메시지를 보내는 이들이 정확히 이런 반응을 바랄 걸 생각하면 화가 난다.


높은 확률로 남성들이 보내는 테러 메시지의 내용은 짐작 가능한 대로다. '글을 왜 그렇게 쓰느냐', '부끄러운 줄 알아라', '앞으로 이런 글은 쓰지 마라' 등등.

테러 메시지와 양상은 다르지만 똑같이 자의식에 매몰된 메시지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기득권에 가까운지 장황하게 설명한다. '보수 일간지만 보는', '강남에 사는', '의과대학에 다니는' 등의 수식어가 빠지지 않고 온통 자기 얘기뿐이다. 결론은 '이처럼 훌륭한 내가 당신이 말하는 페미니즘에 공감한다'는 것. 읽다 보면 이쪽도 테러 메시지 못지 않게 말문이 막힌다.

결국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

이런 와중에 그는 호의가 가득한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을 운동 관련 업계 종사자로 소개한 남자는 내가 쓴 글을 읽으며 여성과 운동에 관해서, 남자인 자신이 이제까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돌아봤다고 했다.

그 무렵에 나는 <운동하는 여자>의 단행본 출간 소식을 여기저기 알리던 중이라서 그에게도 답장으로 이 소식을 알렸다. 그는 다시 메시지를 보내서 책이 출간되는 날짜를 물었고 그 무렵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의 말을 건성으로 흘려들었다.

그런데 정말 책이 출간되는 날짜에 맞춰서 그가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당당하게, 책을 한 권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공짜 책을 달라는 말이 반가울 리 없다는 걸 알아서인지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모임에 관해서 넌지시 알렸다. 모임에 내 책을 홍보하고 싶다나.

결과적으로 그의 말은 먹혀들었다. 확인한 바로 그 모임에 특별히 내 책을 읽어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또 홍보용으로 받아둔 책이 넉넉했다. 기자, 인플루언서, 유튜버, 평론가, 친구들에게 책을 보내면서 그의 집으로도 책을 부쳤다. 그때도 남자에게 집 주소가 노출되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무렵에는 안전보다 책을 알리려는 의욕이 더 앞섰다.

'가까이 사시네요.' 책을 받은 남자는 배송 정보에 적힌 연락처를 보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때부터 나는 주소와 전화번호가 노출된 일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 그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이런 메시지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아니면 알면서도 은근히 위협하려는 건가? 그 많은 작가 중에 왜 하필 나인가? 오만 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도 그의 신상과 주소를 알고 있지만 그런 건 아무 소용도 없다.

그는 다시 한번 내가 좋아할 만한 말로 책을 칭찬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모임에서 학회를 열게 됐으니 책 50권을 보내달라는 거다. 정확히는 학회가 열리는 날 내가 직접 와서 책을 전달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책을 소개할 시간이나 따로 발표할 기회를 주는 것도 아니면서 남자는 참으로 당당했다.

"책을 잘 나눠주는지 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는 이제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곧장 전화를 걸었고 재미도 없는 농담을 건넸다.

그 일은 다행히 출판사에서 책을 몇 권 보내줌으로써 일단락됐다. 문제는 연락이었다. 시시콜콜하고 딱히 답하고 싶지 않은 문자 메시지가 계속 오고 답이 없으면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책 홍보에 적극적이었던 나, 내가 한 모든 행동을 후회했다. 결국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

이게 책이 출간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겪은 일이다. 눈으로 보면서도 '내 책'이 세상에 나온 게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위협부터 당한 셈이다. 무엇보다 그가 주소를 안다는 사실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매일같이 주짓수를 배우고 건물 현관으로 들어갈 때마다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혹시 그가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공격할까 봐 두려웠다.

동시에 내가 너무 경계심이 없었다고 자책했다. 한 사람에게라도 더 책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결과는 왜 이 모양인가. 내가 남성 작가였어도 그런 메시지를 보냈을까. 적어도 차단당할 정도로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
 

매일같이 주짓수를 배우고 건물 현관으로 들어갈 때마다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 양민영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살아간다

근래 심의위원 자격으로 작품을 심의하면서 100권 넘는 에세이를 읽은 일이 있었다. 한 권씩 꼼꼼하게 살펴보다가 눈에 띄는 특이점을 발견했다. 작가소개에 이메일과 전화번호까지 거리낌 없이 공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들은 전부 남성이었다. 여성의 경우 이메일 주소를 공개하는 경우는 있어도 핸드폰 번호를 공개한 사람은 없었다.

보던 책을 잠시 덮고 스토킹, 협박, 성희롱을 걱정하지 않고 전화번호를 공개할 수 있는 삶을 상상했다. 아무런 걱정 없이 나를 드러내고 적극성을 무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삶을.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고도 자책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이렇게 전화번호를 공개하면 정말 전화가 걸려 올까? 어떤 사람이, 무슨 의도로 전화할까? 좋은 연락만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때로는 반가운 제안도 있지 않을까.

여성은 크고 작은 이득과 안전 사이에서 높은 확률로 안전을 선택하고 스스로 모든 문을 닫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조심, 그놈의 조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살아간다.

남성이 혼자 산다는 건 그 자체로 신변의 위협을 의미하지 않지만 비혼 여성의 처지는 그렇지 못하다. 폭력에 얽힌 불안이 클라우드처럼 머리 위에 따라다닌다. 당연히 자신을 드러내는 일도 어느 선까지만 허용된다. 너무 드러내고 너무 적극적이었다가는 안전을 무시한 부주의한 여자가 되기 십상이고 또 실제로 안전을 위협받기도 한다.

이처럼 움츠리고 피해 다닌 결과 우리는 무사, 그저 아무 일도 없는 정도의 안전을 누린다. 그마저도 고마운 일이다. 나는 그 남자가 더 이상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멈춘 걸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고마운데, 이보다 굴욕적일 수 없다. 여성이 겪는 굴욕에는 하한선이 없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