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20 11:15최종 업데이트 22.08.2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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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리버풀FC 감독 빌 생클리 감독의 명언은 맥주 세계에도 적용된다. 트렌드에 따라 일시적으로 폼의 변동은 있지만 클래스, 즉 가치가 변치 않는 맥주들이 있다. 대개 영롱한 황금색과 청량함을 지닌 페일 라거(pale lager)들이 그 주인공이다. 칼스버그, 버드와이저, 하이네켄, 필스너 우르켈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맥주들은 100여 년 넘게 높은 인기와 상업적 성공을 누려왔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는 법, 황금색으로 통일된 맥주 세계는 점차 지루해졌고 역동성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20세기 후반 대형 맥주 회사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웠고 독과점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철저히 유지했다. 유독 맥주 세계에서는 희한하리만큼 파괴적 혁신을 찾기 힘들었다.

치코, 크래프트 맥주의 고향
 

1980년 문을 연 시에라 네바다 브루어리 ⓒ 시에라 네바다 브루잉 컴퍼니

 
1980년, 영원히 공고할 것만 같던 페일 라거의 벽에 작은 틈새가 생겼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근처, 거대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내려다보는 작은 도시 치코(Chico)에서 누군가 작은 반란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름은 켄이요, 성은 그로스먼인 이 청년은 동네 우유공장에서 버려진 장비로 맥주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허름한 창고 너머 보이는 그의 미래는 불투명함으로 가득했지만 이미 그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켄 그로스먼(Ken Grossman)이 맥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그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홈브루잉이 취미였던 아버지 덕에 미성년자 시절부터 맥주를 사랑하게 되었고 졸업 후, 맥주 재료 판매와 양조 클래스를 진행하는 매장을 오픈했다. 단순히 취미였던 맥주 만들기가 인생의 진지한 목표가 된 것은 앵커 브루잉(Anchor brewing)의 프리츠 메이텍(Fritz Maytag)을 만나고 나서 부터였다.

프리츠 메이텍은 1965년 샌프란시스코의 오래된 브루어리 앵커를 인수한 뒤, 라거와는 다른 스타일의 맥주를 시도한 선구자였다. 켄 그로스먼은 1978년 프리츠 메이텍을 만나 큰 영감을 얻었고 세상에 없던 맥주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 마침내 1980년, 자신이 자주 등반했던 산의 이름을 딴 시에라 네바다 브루어리(Sierra Nevada brewery)를 시작한다.

새로운 맥주 스타일의 탄생
 

아메리칸 페일 에일 시에라 네바다 ⓒ 윤한샘


그가 부활시키려 한 맥주는 강력한 라거 제국에서 사라진 영국 에일들이었다. 켄 그로스먼은 영국 페일 에일에 미국 자생종 홉인 캐스케이드를 넣은 앵커 브루어리의 리버티 에일(Liberty ale)을 경험한 후, 비슷한 마일스톤을 걷고자 했다. 폼은 잠시 떨어졌지만 클래스는 영원한, 또 다른 선수인 영국 에일들로 라거의 기득권에 대항하고자 한 것이다. 그 중심에는 주류 맥주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미국의 로컬 홉이 있었다.

미국 홉은 감귤류, 열대과일류, 솔과 같은 향이 강했다. 이는 유럽 홉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켄 그로스먼은 이런 미국 홉을 다량으로 사용해 강력한 향과 도드라지는 쓴맛을 자신의 맥주에서 보여주고자 했다. 청량함을 자랑하는 라거와 완전히 다른 노선이었고 다소 밋밋한 영국 에일과도 차별화된 방향이었다.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사업 첫 해, 허접한 장비와 주 7일의 노동 끝에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이 세상에 태어났다. 미국 토종 홉인 캐스케이드 홉이 가득 들어간 아메리칸 페일 에일(American Pale Ale)의 탄생이었다.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이 지닌 매력적인 자몽과 솔 그리고 섬세한 꽃향은 이전 어떤 맥주에서도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혀를 툭 치고 지나가는 상쾌한 쓴맛과 묵직하지만 깔끔하게 넘어가는 목넘김은 물처럼 마시는 라거와 달랐다.

또한 병 안에서 이차 발효를 통해 만들어진 자연 탄산으로 대량 생산 맥주에서 볼 수 없는 전통적인 면도 보여주었다. 맥주라는 정체성을 해치지 않으며 전혀 새로운 양조 철학과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크래프트 맥주의 출발
 

미국 캘리포니아주 치코에 시에라 네바다 브루잉 컴퍼니를 세운 켄 그로스먼 ⓒ 시에라 네바다 브루잉 컴퍼니


허나, 사업은 현실이다. 파괴적 혁신은 적응에 시간이 걸린다. 각고 끝에 출시한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은 초반 소비자들에게 크게 관심받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맥주의 전형과 달라 생소하기도 했고 가격도 두 배 정도 비쌌다. 게다가 궁합이 맞는 유통 파트너를 만나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작은 맥주에 관심을 갖는 유통사를 찾는 것도 어려웠지만 25% 정도의 수익을 넘기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재정적으로 어렵던 켄 그로스먼은 결국 개조한 밴을 타고 직접 소매점을 다니며 판매했다. 사업 초기 어려운 살림으로 직원들은 월급을 제때 받을 수 없었고 추가 투자도 기대할 수 없었다.

세상을 바꿀 제품이 있어도 그것을 소비해주는 고객이 없다면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수많은 혁신이 때를 잘못 만나 볕을 보지 못한 채 사라지는 일이 부지기수다. 가치를 알아보고 공유하며 팬덤을 이루는 것, 이 과정이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에 필요했다. 호불호가 없고 가성비가 중요한 대중 맥주와는 다른 고객, 가치를 공유하고 그 리스크를 함께 짊어질 수 있는 고객이 절실했다.

다행히 샌프란시스코는 시에라 네바다에 기회의 공간이었다. 60년대 이후 샌프란시스코는 미 동부와 달리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물결이 넘쳤다. 기득권의 질서를 거부하는 반문화 운동, 즉 히피 운동의 본진이었고 새로운 도전을 찾아 수많은 젊은 엘리트들이 정착하는 도시였다. 라거의 기득권에 대항하는 애송이 맥주를 기꺼이 소비해줄 수 있는 문화가 샌프란시스코에는 존재했다.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의 가치를 처음 알아본 곳은 셰 파니스(Chez Panisse), 버클리에 있는 진보적이고 트렌디한 요리를 추구하는 최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오너인 앨리스 워터스(Alice Waters)는 가장 신선한 로컬 푸드를 추구하는 자신의 철학과 시에라 네바다 맥주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몇몇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시에라 네바다를 눈여겨보고 있던 그녀는 주류 목록에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을 올린다. 이후, 여러 평론가들이 시에라 네바다에 주목했고 지역 신문과 잡지를 통해 샌프란시스코 전역으로 알려졌다.

켄 그로스먼 또한 대형 유통사가 아닌, 작은 맥주의 가치를 이해하는 부티크 유통사와 협력을 맺기 시작했다. 그가 맥주에 담고자 하는 여러 가치들, '지역성, 다양성, 진정성'을 공유하는 고객들은 비싼 가격에도 기꺼이 맥주를 마시고자 했다.

점차 이런 가치가 더해지면서 마이크로 브루어리 맥주는 대량 생산 공장제 맥주와 다른 지향점을 갖는다는 의미로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로 불리기 시작했다. 시에라 네바다는 바로 크래프트 맥주의 출발점이었다.

크래프트 맥주 혁명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 ⓒ 윤한샘

 
시에라 네바다의 성공적인 생존은 90년대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끈다. 독과점 대형 라거의 타도를 외치며 작지만 다양한 맥주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왔고 사람들은 이를 '크래프트 맥주 혁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2022년 미국에 9000여 개, 한국에 180여 개의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있으니 가히 혁명이라 해도 될 듯하지만, 사실 여전히 맥주 시장의 90%는 라거로 덮여 있다. 하지만 혁명이 아니면 또 어떤가. 한 번에 모든 것을 뒤엎는 '혁명'보다 다양성과 옮음을 꾸준히 실천하는 '운동'을 통해 맥주가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 작은 흐름이 빅뱅이 되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은 크래프트 맥주 운동의 특이점이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지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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