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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민간인 강제납치 사건 피해자 김주삼씨가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이강혁 변호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받은 피해 사실 인정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북한민간인 강제납치 사건 피해자 김주삼씨가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이강혁 변호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받은 피해 사실 인정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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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

열아홉 살에 불과했던 황해도 출신 김주삼씨가 1956년 공군 제25 첩보부대에 의해 납치돼 남한으로 끌려와 산 기간이다.

어느새 여든다섯(1937년 생) 노인이 된 김씨는 10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대한민국 정부에 바라는 것이 없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김씨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북에 있는 남은 가족들에게) 연락만 할 수 있으면 거기서 더 좋을 게 어딨냐"며 "그걸 할 수 없으니, (가족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저녁에 꼬박 밤을 새울 때 있다. 가족들이 살아만 있다면 당연히 만나고 싶다"라고 어렵게 말을 이었다. 

팔십 중반이 된 납치 피해자
 
북한민간인 강제납치 사건 피해자 김주삼씨가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이강혁 변호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받은 피해 사실 인정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북한민간인 강제납치 사건 피해자 김주삼씨가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이강혁 변호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받은 피해 사실 인정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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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김씨는 황해도 용연군 용연읍 용정리 바닷가 부근에서 어머니, 동생 4명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그해 10월 10일 공군 첩보부대 출신 북파 공작원 3명에 의해 강제로 납치돼 백령도와 강화도 교동을 거쳐 서울 구로구 오류동 공군 첩보대 기지에 끌려왔다. 

"그날 밤에 동생들하고 자고 있는데 집으로 들어와서 (동생들은 많이 어리니) 나를 데리고 간 거다. 남동생 하나, 여동생 셋. 정확히 몇 살인지 이제 기억이 안 나지만 동생들은 나보다 많이 어렸다."

이후 김씨는 황해도에 대한 지리 및 군부대 위치에 대한 정보를 묻는 군 당국의 신문을 약 1년 정도 받았다. 그러나 조사가 종료된 뒤에도 김씨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군 당국에 의해 억류돼 해당 부대에서 차량 수리 보조 같은 잡일을 하며 약 4년 정도 무보수 노역을 했다.

아흔이 된, 사건의 목격자이자 같은 부대에서 함께 생활한 임중철씨는 당시 북에서 잡혀 온 김씨를 아래와 같이 기억했다.

"밤중에 자다 일어나서 우연히 보면, (김주삼이) 매일 북쪽의 철망을 붙잡고 울었다. 북에서 끌려와 군번도 없이 우리 부대에서 막내 생활을 한 거다. 같은 인간인데, 부대에 다 같이 있으니 불쌍하게 생각됐다. 그래서 있는 거 없는 거 따지지 않고 도움을 줬다."

군은 더 이상 김씨로부터 나올 정보가 없게 되자 부대에서 내보냈다. 남한에 기반이 전혀 없던 상황에서 김씨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한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경찰은 김씨에 대한 사찰과 감시를 이어갔다는 사실. 

"비닐하우스에 집을 지어 살고 있었는데 경찰이 구둣발로 들어와 집을 둘러보고 가곤 했다. 그런데도 가장 어려운 것은 먹고사는 일이었다. (여기 와서) 국민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그래도 근래에는 쌀도 갖다주고 부식 거리도 갖다주더라." 

진실화해위 "김주삼씨, 공군 첩보대에 의한 납치 맞다"
 
북한민간인 강제납치 사건 피해자 김주삼씨가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이강혁 변호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받은 피해 사실 인정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북한민간인 강제납치 사건 피해자 김주삼씨가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이강혁 변호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받은 피해 사실 인정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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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김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해 12월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2년이 넘는 조사 끝에 진실화해위는 지난 9일 오후 위원회 회의를 통해 "김씨가 공군 첩보대에 의해 납치된 것이 맞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김씨에게 납치 및 노역 행위 등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사과하고, 이에 대한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는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강제 이산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김씨에게 북한에 있는 가족과 상봉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물론 '군부대 첩보활동'이라는 사건의 특성상 진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실제 2020년 제기된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군 당국의 비협조 등 추가적인 증거 확보의 어려움으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북한민간인 강제납치 사건 피해자 김주삼씨가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이강혁 변호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받은 피해 사실 인정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북한민간인 강제납치 사건 피해자 김주삼씨가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이강혁 변호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받은 피해 사실 인정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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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실화해위 조사과정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김씨를 납치한 북파공작원들이 2008년 국방부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지원단에 자신들이 행한 '납치 공작 임무'에 대해 보상금을 신청한 사실이 확인 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2012년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지원단이 재조사를 통해 납치 당사자인 김씨의 진술을 확보해 실제 납치한 공작원에게 보상금을 지급한 사실도 확인됐다.  

김씨의 변호인인 이강혁 변호사는 "국가 쪽에서는 증거가 부족한 상태니 피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라며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으로 사실관계 부분에서는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빠르면 올해 안,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결과가 나오지 않겠나"라고 전망했다.

고령인 김씨는 현재 자신의 건강과도 싸우고 있다. 그는 기자회견 말미에 "당뇨와 고혈압, 협심증 등 질환을 앓고 있다"면서 "솔직히 건강이 나쁘다. 약 먹는 게 수십 가지라 힘들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 내내 귀가 어두워 질문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옆에서 이 변호사가 김씨의 귀에 대고 또박또박 질문을 다시 말해준 뒤에야 겨우겨우 답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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