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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하아~ 쓰읍~ 후우~"

톈산산맥 만년설을 타고 넘어 드넓은 초원을 달려온 바람은 달고도 깊었다.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시원하고 맑은 산소가 온몸을 깨어나게 했고,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맞바람으로 맞는 바람결이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했으며, 눈앞에 펼쳐진 초원은 갑자기 눈을 맑아지게 했다.

여기가 바로 유목민의 나라구나!
 
부라나탑은 '초원의 등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 초원의 등대 부라나탑은 "초원의 등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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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거 정말 대단한 초원이네."

유목민의 나라라고 했지만 정작 초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민둥산 사이로 고속도로를 달리며 가끔 말들이 풀 뜯는 초원을 보기는 했지만 생각했던 초원 이미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서 한눈에 초원을 바라보니 여기가 유목민의 나라라는 것이 확 와닿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감흥이 올라왔다. 펼쳐진 풍광을 가만히 눈에 넣고 있으니 마음이 평온해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한참 동안 이 시간을 말없이 즐겼다. 설명하지 않아도 왜 이곳을 '초원의 등대'라고 불렀는지 금방 깨닫게 되었다.
  
부라나 탑에서 바라보면 탑이 초원 한가운데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 부라나탑 위에서 바라본 초원 부라나 탑에서 바라보면 탑이 초원 한가운데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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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게 펼쳐진 초원이 가슴을 뻥 뚫어 주었다.
▲ 부라나 탑 정상에서 바라 본 초원 드넓게 펼쳐진 초원이 가슴을 뻥 뚫어 주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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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은 길을 만들고 그 길은 따라 이동하는 인간은 새로운 땅을 찾아낸다. 새로 난 길을 따라 만난 두 문명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인류 역사는 진보해왔다. 각자의 문물을 가지고 이동하는 길목마다 쉬어 갈 마을이 생겨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도시가 생겨났다.

먼 옛날 척박한 땅이었던 중앙아시아 벌판에도 사람들의 호기심으로 길이 만들어지고 그 길을 따라 마을이 생겨나고 도시가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그 길을 실크로드(Silk road)라고 불렀다. 실크로드는 중국 대륙과 중앙아시아, 유럽의 지중해를 잇던 동서 교역 루트를 총칭한다.

그 길 중 한 갈래가 키르기스스탄을 관통하는 길이며 그 길을 사람들은 초원길이라 불렀다. 그 길을 오가던 상인들이 쉬어 가던 도시 중 하나가 바로 사통팔달의 도시 토크목(키르기스어: Токмок, Tokmok, 러시아어: Токмак, Tokmak)이다.
 
토크목은 이태백의 출생지라는 설이 있다.
▲ 토크목 시내 토크목은 이태백의 출생지라는 설이 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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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토크목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 자는 태백太白)의 출생지로도 알려져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의 출생지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는데 중국 측은 쓰촨(四川) 성의 장요우(江油) 또는 후베이(湖北) 성의 안루(安陆), 간쑤(甘肃) 성의 톈수이(天水) 등을 주장을 하고 있으며 키르기스스탄에서는 토크목이 출생지라고 주장한다.

2008년 키르기스스탄 문화정보부는 이곳 토크목이 이백의 고향이라고 인터뷰까지 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태어났건 이곳에서 태어났건 이태백의 아버지가 무역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어린 시절 이곳에 잠시라도 머물렀던 점은 사실일 것 같다. 그렇다면 분명 어린 시절 이곳에 살며 브라나 탑에도 올랐을 것이라 생각하니 교과서 속에 들어온 것 같아 신기하기도 하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주차장을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 50m 쯤 걸어가면 입구 같지 않은 입구가 나온다.
▲ 부라나 탑 입구(매표소) 주차장을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 50m 쯤 걸어가면 입구 같지 않은 입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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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라나탑 입장료는 60솜으로 한화 1020원 정도이다.
▲ 부라나탑 입장권 부라나탑 입장료는 60솜으로 한화 1020원 정도이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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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등대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탑

부라나 탑(Burana Tower)은 토크목 시내에서 도시를 벗어나 시골길로 한참을 가야 했다. 유명 유적지와 어울리지 않게 울퉁불퉁 흙바닥 주차장이었고, 작은 다리를 건너 50여 미터를 걸어가니 매표소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한 입구가 나왔다.

우리를 보더니 허름한 매표소에서 10살쯤 보이는 아이가 문을 열고 나와 유적지 입장표(인당 60 솜=한화 1020원)를 발급해 주었다. 엄연히 입장료를 받는 유명 유적지인데 들어가 보니 울타리도 없이 탑만 우뚝 솟아 있었다.

원래 이 탑의 높이는 45m였지만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 특성상 풍화되고 16세기 있었던 큰 지진으로 현재 높이인 24.6m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 높이로도 멀리서 눈에 확 들어오는데 원래 45m였을 때 이 탑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멀리 보이는 이 탑 불빛이 긴 여정에 지친 상인들에게 주었을 안도와 위로를 생각하니 '초원의 등대'라는 별명이 참 잘 어울렸다.

부라나 탑은 10세기경 소그드인들이 세운 천문대 겸 전망대이다. 이 탑은 먼 길을 헤쳐온 상인들이 잠시 쉬며 육신과 영혼의 위로를 받았던 곳이며 무슬림들은 이 탑을 신성시 여기는 장소이기도 하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무슬림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이곳에 와서 탄생을 축복해 주며 제사장들은 이곳을 기도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한다. 
  
부라나탑은 좁은 내부 통로를 통해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 부라나탑 입구 부라나탑은 좁은 내부 통로를 통해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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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 좁은 통로를 통해서 오르내릴 수 있다.
▲ 부라나탑 통로 어린이도 좁은 통로를 통해서 오르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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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라나 탑은 내부 통로를 통해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탑 옆으로 난 철제 계단을 5~6m 올라가면 본격적인 탑 내부 통로가 나오는데 딱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좁고 조명도 없다. 통로 중간 지점에 다다르니 너무 깜깜 해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야 했다.

유적지 보존을 위한 조명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나, 안전을 위해서는 조명은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오지랖 넓은 생각이 들었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깜깜한 계단을 낑낑대며 기어오르니 갑자기 하늘이 밝아지며 평평하고 둥근 정상이 나왔다. 

워낙 길이 좁아 올라오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이 중간에 만나면 낭패일 것 같았으나 신기하게도 그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신호기나 안내해주는 사람도 없는데 누가 올라오면 알아서 기다리고 누가 내려가면 딱 알아서 대기했다. 기다림에 익숙한 유목민의 후예들이라 그런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부라나탑 주변에는 암각화가 그려져 있는 작은 바위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사람 모양을 한 투르크인들의 묘비들도 다수가 남아 있었다.
▲ 부라나 탑 주변 유물들 부라나탑 주변에는 암각화가 그려져 있는 작은 바위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사람 모양을 한 투르크인들의 묘비들도 다수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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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라나 탑 주변에는 고대 상업 민족이었던 소그드인들의 성채 잔재와 마부조레이라고 하는 장군들의 묘지가 남아 있다. 주변 곳곳에는 암각화가 그려져 있는 작은 바위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사람 모양을 한 투르크인들의 묘비들도 다수가 남아 있었다.

이곳 토크목이 고대부터 사통팔달의 무역 거점 도시였음을 알려주는 유물들이다. 이 지역에서는 먼 옛날 발해와의 교역을 알 수 있는 유물들도 출토되었다고 하며 발해의 옛 땅인 연해주 근처에서도 여기 살았던 소그드인의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멀기만 한 줄 알았던 이곳 중앙아시아 초원이 결코 우리와 멀기만 한 곳이 아니었던 셈이다.

돌아와 여행기를 정리하다 보니 우리는 실크로드를 내 준 키르기스스탄에 은혜를 받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이기 중에는 초원길을 타고 들어온 것들이 많았을 테니 동서교역의 루트인 실크로드를 내 준 키르기스스탄과 그곳 땅 주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내가 이 나라 대표자도 아니니 우리나라를 대표할 순 없고 그저 이번 여행자들을 대표해 키르기스스탄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키르기스스탄 유목민의 격언 중에 '손님은 신이 준 선물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런 문화 때문인지 여행 중 만났던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사고가 열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어디를 가도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은 없어 보였다. 부라나 탑 꼭대기에서 만났던 꼬마들도 그랬다.

얼굴형, 피부색, 머리카락 색깔마저도 다른 꼬마 유목민의 후예들은 낯선 이방인에게 경계심도 없이 밝게 웃으며 사진도 같이 찍고 포즈도 취해주며 재잘거렸다. 이렇게 부라나 탑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그때 그 꼬마 유목민 후예들의 얼굴이 다시 보고 싶어 진다.

덧붙이는 글 | 14일까지 일산 킨텍스에 열리는 대한민국 국제관광박람회에 가면 키르기스스탄 행사부스에서 더 많고 자세한 관광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게재 후 브런치 개인 계정에 게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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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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