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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이라는 표현 하에 경쟁과 입시몰입교육을 지양하고, 자치와 상생을 위한 교육을 하며, 학생들이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곳에서 여러 존재들과 좌충우돌하며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전하고자 합니다.[기자말]
최근 들어 흑백필름을 애용한다. 꾸준히 컬러필름을 사용하면서도 항상 동경하던 것이 흑백사진의 세계였다. 하지만 나의 안목으로는 색채를 뺀 선과 면으로 화면을 구성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풍경사진을 주로 찍는 터라 사계절의 천연 색감을 흑과 백 사이로 숨기는 일이 너무 아쉽기도 했다.

흑백필름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생각보다 허무했다. 필름 가격이 심하게 올라버린 것이다. 평소 잘 사용하는 컬러필름의 중형 포맷의 가격이 한 롤에 2만 원에 육박하기게 이르렀다. 한 롤에 16장 밖에 찍지 못하니 엄청난 고급 취미가 돼버렸다.

'이제는 흑백만으로 화면을 구성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꾸준히 갖고 있기도 했으니, 비겁하지만은 않은 전환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흑백필름을 샀다. 평소 습관대로 찍다보면 깜짝 놀랄만큼 화면이 심심해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시행착오를 겪는 것만큼 빠른 연습은 없기에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런데 예상치 않았던 장점을 발견했다. 커다란 카메라와 아날로그 결과물에 대해 아이들이 느끼는 거리감이 눈의 띄게 많이 줄어든 것이다. 자신의 핸드폰으로 촬영을 스스로 해야만 안도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흑백이라 피부톤이 세세하게 안 나오니까 괜찮다'는 식으로 말하면, 그들은 순순히 얼굴과 포즈를 내어주곤 한다.

높은 산을 오르기까지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했다
 
(Ilford.XP2) 카메라를 들고 이름을 부르면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주는 녀석
▲ 산악인 포스 (Ilford.XP2) 카메라를 들고 이름을 부르면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주는 녀석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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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은 1614m로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설천봉까지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어 나들이 복장으로 향적봉까지 오르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지만 밑에서부터 올라가기에는 만만치 않다. 등산이 익숙하지 않은 10대의 청소년, 특히 여학생들이 이곳을 완등할 수 있었던 것은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몇몇 아이들은 현재 2년이 넘도록 꾸준히 아침 산책 혹은 조깅을 해오고 있다. 우리 학교는 기숙학교로 운영되고 있어서 아침 운동이 가능하다. 물론 강제가 아니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여건보다는 개인의 의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계절을 불문하고 거의 매일 오전 7시 10분부터 8시까지 진행하다보니 소소한 상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광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시나브로 쌓이는 사제 간의 정이 진하고도 돈독해진다. 
  
2분 간격으로 걷기와 뛰기를 50분 동안 반복한다.
▲ 고산천에서 2분 간격으로 걷기와 뛰기를 50분 동안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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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욕이나 체력이 앞서지만, 조깅 초반에는 정말 심신을 쥐어 짜내면서까지 겨우 과정을 따라오는 학생이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았기 때문인데 나는 그것을 몰랐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죽을 것같은 표정을 못 보기도 했다. 

천변길이지만 자동차가 간혹 오고가는 길로 조깅을 할 때였다. 아이들의 속도와 호흡을 조절하기 위해 나는 맨 앞에서 거꾸로 뛰고 있었다. 그때 내 뒤편에서 차 한 대가 다가왔고 도로를 구르는 바퀴 소리가 들렸기에 넉넉하게 아이들을 길 가로 인도했다. 그때 그 녀석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순간 선생님이 저 차에 치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 당시 나와 그 학생은 그다지 친하지 않았고 깊은 대화도 많이 나누지 못했던 상태였다. 마음 속으로는 대단히 당황했지만 전혀 티를 내지 않고,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말로 그 어색함을 달래야 할지 모르기도 했다.

한 5분쯤 더 걷고 뛰고를 반복했을까. 뺨을 산뜻하게 스치는 아침 바람에 어색함이 사뭇 날아간 듯해 이런저런 말을 건넸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정시에 학교로 다시 돌아와 일과를 시작했다. 몇 개월이 흐른 뒤, 서로의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볼 수 있을 때에서야 그 아이가 내게 말해줬다.

"친구들 말고 어른한테 한 번도 투정을 부려본 적이 없어요. 부모님한테도요. 선생님이 처음이었어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랬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간간이 기분이 나빴지."
"그래도 짜증내거나 화내지 않아서 고마웠어요."
"그게 내 장점이지. 포커페이스 말이야. 하하."
"쌤 기분 나쁜 거는 티가 안 나지는 않았거든요!"


참 다행이었다. 만약 그 아이가 처음으로 나에게 심술을 부렸을 때, "버릇없게 무슨 말이니?"라는 식으로 대응했다면 이런 대화는 영영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면 때문에 간혹 예비교사들에게 강의를 나갈 때면 '무대응'의 유용성에 대해 설파하곤 한다.

버릇없는 언행이나 심지어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만큼의 불손한 행동에도,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서 그 순간을 마치 태극권처럼 그대로 받은 뒤 차분하고 정제된 말투와 언어로 대화를 이어간다면 기도 뺏기지 않고 신뢰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이른 아침 풍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
▲ 아침 안개 이른 아침 풍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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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학생은 '2분 간격 달리기(2분 간격으로 걷고 뛰는 것을 반복)'를 두세 차례밖에 하지 못하는 약골이었다. 덕유산 등산을 한 달여 앞두고 본격적으로 등산로를 연습시키기 시작했다. 마침 학교 근처에, 올라야 하는 고도는 100m에 불과하지만 경사가 급해서 아침부터 땀을 쭉 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쉬지 않고 빠른 속도로 오르면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그 학생은 1분에 한 번씩 쉬기를 요청했다. '조깅 악마'라는 별명을 가진 나이기에 절대 그 요청에 흔들리지 않았다. "쉬면 더 힘들어. 지금 가야 해"라는 말을 끝도 없이 반복했다. 처음으로 목적지에 다다른 순간 그 학생은 나지막한 탄성을 뱉었다.
 
고산 읍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
▲ 구명산 정자에서 고산 읍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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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행복한 산행

모든 준비는 끝났다. 부푼 기대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6월 11일 아침 7시 반, 우리는 소양면 행정복지센터로 모였다. 모두들 안전교육 때 일러준 대로 등산화와 배낭 등 장비를 꼼꼼하게 잘 챙겼다. 학생 7명과 교사 5명이 한자리에 모여 물과 김밥 등 짐을 나누고 두 차로 나누어 몸을 실었다.

산행코스는 삼공리(덕유대)에서 출발하여 백련사를 거친 후 정상으로 바로 오르지 않고 오수자굴로 향한 뒤 중봉으로 올라 향적봉(정상)을 찍고 설천봉으로 진행하여 케이블카로 하산하는 경로였다. 총 길이가 12.5km이고 올라야 하는 고도가 1300m에 가까웠으니 결코 쉬운 산행은 아니었다.
 
장비를 갖춘 뒷모습은 학생, 교사를 불문하고 영락없는 산악회 회원들.
▲ 초입부 장비를 갖춘 뒷모습은 학생, 교사를 불문하고 영락없는 산악회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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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핸드폰으로 찍고 나서 바로 옆 교사에게 했던 말이 있다. "저 웃음소리까지 사진에 담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영상으로 찍을 수도 있고 요즘은 '쇼츠' 영상으로 올릴 수도 있으니, 기술적인 소망이 아니라 이 순간을 누군가에게 직관적으로 전달해 주고 싶은 열망이었을 것이다.

요즘 10대는 참 무섭다고들 한다. 풋풋함이 없고 이기적인 세대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되묻는다. 어떠한 위협과 불안감 없이 자신을 행복하게 알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미래의 안위를 볼모로 하여 현재를 감옥처럼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가르쳐온 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이 아니었는가. 또한 학생들에게, 더불어 사는 것은 차후 생각할 문제이며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안정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라는 것을 은연 중에 주입해오지 않았던가.

산에 오면 풋풋한 어린 영혼을 마주 대할 수 있다. 성적에 대한 불안이나 엄마의 기대에 대한 막막함은 숲과 나무들이 잠시 가져가는 듯하다. 계곡은 한술 더 떠서 그 걱정 보따리를 산 저쪽 아래로 흘려보내버린다.

싱그러워지는 것은 비단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스무살, 서른살의 나이 차이는 대자연 속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모두들 어린아이가 돼 천진하게 코를 벌름거리며 숲과 물의 정기를 젖 먹듯 빨아들인다.
  
'집중!'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숲에게 이목을 집중한다.
▲ 틈새 숲 설명 "집중!"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숲에게 이목을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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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동 계곡을 오르다 보면 첫 번째 쉬는 포인트가 나온다. 안심대라는 곳인데 출발점에서 3.5km 정도 떨어져 있고 이르는 길이 매우 쉬운 수준이라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호흡을 한 번 고르는 지점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안심대로 가는 길은 '어사길'이라 이름 붙어있고, 구천동 계곡의 흐름을 발 옆에 두고 걷는 길이다. 신선하기 그지없다. 40분 정도 걸었을까. 앞쪽에서 한 학생이 어디서 쉬냐는 질문을 했고 그때부터 짤막한 꽁트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학생1 : "우리 어디서 쉬어요?"
학생2 : "쌤. 어디서 쉴거냐는데요?"
나 : "안심대에서 쉴거야."
학생2 : "(학생1에게 외치며) 안심대~!"
학생1 : "안쉰다고?"
학생2 : "아니. 쉰대."
학생1 : "어디서 쉬는데?"
학생2 : "안심대~!"
학생1 : "아니, 쉰다며."
학생2 : "어! 쉰다니까?"
학생1 : "어디서 쉬냐고!"
학생2 : "안심대!!!"
학생1 : "......"


이쯤 되니 몇몇은 웃고 있고,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서너 명을 훌쩍 추월해 학생1 근처로 갔다.

"야. 쉰다고 계속 말하고 있잖아."
"아니, 쟤가 쉰다고 했다가 안 쉰다고 했다가 그러잖아요."
"그래. 안쉰대! 안쉰대에서 쉰다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쌤!!!"
"아, 가 보면 알아."


안심대에 이르기 전에 이미 학생1은 상황을 깨달았고 어떤 선생님은 멀찌감치에서 메아리처럼 들리던 이 오묘한 대화를 뒤늦게 전해 듣고는 배를 잡고 웃었다. 우리는 안심대에서 5분 정도 대열을 정비하고 다시 백련사를 향해 걸었다.

백련사 계단 밑 공터에서 배낭을 내리고 각자 김밥을 꺼냈다. 여기서 또 웃음이 터졌다. 안 그래도 각종 등산 장비 덕에 등산에 노련한 사람처럼 보였던 신입생 녀석이 갑자기 배낭에서 낚시 의자를 꺼내어 턱 앉는 것이 아닌가.

"어머, 쟤 좀 봐요. 웃겨 죽겠네"라며 선생님들이 먼저 웃었다. 그 웃음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은 다시 가방 더 깊은 곳에서 한 팩 가득 담긴 자른 오이를 꺼내어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모두에게 권했다. 등산과 오이가 찰떡궁합이라는 것을 아이들도 다 알긴 했는지 모두들 폭소를 터트리며 그 아이를 바라봤다.
 
(필름/Ilford.XP2) 장비에서부터 범상치 않더니 갑자기 낚시 의자와 오이를 꺼내서 모두의 웃음을 유발했던 학생
▲ 지도교사 같았던 학생 (필름/Ilford.XP2) 장비에서부터 범상치 않더니 갑자기 낚시 의자와 오이를 꺼내서 모두의 웃음을 유발했던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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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에서 점심 겸 사찰을 둘러보는 시간으로 40분을 제시했다. 항상 시간표를 철저하게 짜고 그대로 운영되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특히 산에서는 시간을 지키는 것이 곧 안전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되냐는 물음에, 나와 함께 몇 차례 여행을 다녔던 학생이 대신 대답한다.

"야. 사을쌤이 된다고 하면 되는 거고,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사을쌤이 가자고 하면 가야 돼."
"진짜요?"
"어. 안 그러면 너만 손해야. 나중에 뛰어와야 할걸?"


함께 교육 활동을 하며 아이들에게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그저 원칙을 설명하고 융통성을 발휘하되 휘둘리지 않았을 뿐이다. 윽박지른 적도 없고 짜증을 낸 적도 없는데 나의 마음을 잘 알고 따라주는 선배 학생들이 있기에 후배들 또한 자연스럽게 질서가 잡힌다.
 
(필름/Ilford.XP2) 열려 있는 문 사이로 불상이 보이자 두 손을 모으고 한참을 기도했다. 할머니를 따라 어릴 때부터 자주 절에 다녔다고 한다.
▲ 경건하게 (필름/Ilford.XP2) 열려 있는 문 사이로 불상이 보이자 두 손을 모으고 한참을 기도했다. 할머니를 따라 어릴 때부터 자주 절에 다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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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Ilford.XP2) 가을에는 이곳이 색색으로 물든다. 그때만큼은 다시 컬러필름을 넣고 싶다.
▲ 백련사를 내려가며 (필름/Ilford.XP2) 가을에는 이곳이 색색으로 물든다. 그때만큼은 다시 컬러필름을 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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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백련사에서 정상으로 바로 올라가는 길을 뒤로 한 채 오수자굴 방향으로 향했다. 중봉으로 돌아가는 경로라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길이다. 풀이 무성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국립공원이어서인지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발걸음은 안전했고 조금만 눈을 들어 바라보면 정글같은 숲이 우거져 있었다. 하루 전까지 비가 꽤 내렸기 때문에 계곡의 수량도 풍부했다. 산 아래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식물들이 커다랗게 생육하여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채 마르지 않은 촉촉한 이슬이 등산로를 아직 적시고 있어서 물아일체의 느낌을 더해줬다. 

함께 걷던 선생님은 끊임없이 내게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정도로 벅찬 감동이 있는 경로였다. 독자 분들도 초여름 백련사-오수자굴 코스를 꼭 걸어보시기 바란다.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덕유산의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다보니 군데군데 쓰러진 나무들이 보였다. 생태계의 한 장면이다. 뿌리와 떨어져 누운 나무들은 작은 벌레나 식물의 온상이 돼주며 서서히 흙으로 돌아간다. 큰 산에서는 이렇게 부러진 나무조차 멋진 풍경이 되곤 한다. 문득 학교의 교실이 생각났고 옆에 걷고 있던 동료 교사에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저 나무들, 이 풍경들이 마치 우리 학교같아요."
"왜요?"
"우리 학교는 저렇게 널부러져있는 아이들조차 풍경으로 받아들이잖아요."
"진짜 그러네. 이거 웃기다고 해야 해? 슬프다고 해야 해?"
"감동인 거죠. 풍경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그 행동을 잘못으로 인식하기보다 고유의 모습으로 생각하는 거고 거기에서부터 대화가 시작되는 것 아니겠어요?"


사실 웃기고도 슬프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리 양질의 수업을 준비해서 교실로 간다고 한들 태반이 책상 위에 부러진 나무처럼 엎어져 일어날 기색이 없는 광경이 종종 연출되곤 하기 때문이다. 학생 수는 적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는 우리 학교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교사들이 좀 더 나아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잠자고 있는 아이들을 향한 교사의 시선이다. '잘못된 행동'이나 '틀린 행동'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왜 이 학생이 잠들어있는지 미시적으로 접근하고 어떻게 내 수업에 참여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 학생 개인별로 면담을 통해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딱딱한 언어로 주장하고 논쟁하기보다 감성적인 언어로 부드럽게 표현한다면 '풍경'이라는 단어가 될 것 같았다. 똘망똘망한 아이들도, 맥아리 없이 처지거나 아예 널브러진 아이들 또한 교실 풍경의 하나인 것이다.  치워버리거나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보완해줘야 한다는 생태적 관점으로서의 풍경 말이다.
 
(필름/Ilford.XP2) 참선하는 선비의 모습을 닮은 돌탑.
▲ 오수자굴 안에서 (필름/Ilford.XP2) 참선하는 선비의 모습을 닮은 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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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Ilford.XP2) 오수자굴을 떠나 중봉으로 향하는 아이들
▲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필름/Ilford.XP2) 오수자굴을 떠나 중봉으로 향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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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자굴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오르막을 걸었다. 산행을 시작한 지 2시간 정도가 넘어가면 이제 시간의 개념이 달라진다. 시계를 확인하는 빈도가 줄어들고 시간이 빨리 흐른다. 지루하다는 생각은 뒤통수 너머로 사라지고 무념무상의 발걸음이 내 몸과 마음을 이끌 뿐이다.

이 시간을 참 좋아한다. 등산을 통해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궁극적인 점이 바로 이것이다.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동화되는 것이며, 정상에서 굽어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산 속에 담긴 작은 것들을 모두 훑고 지나는 것 또한 가치롭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필름/Ilford.XP2) 덕유평전과 남덕유의 능선. 옆에 있는 학생에게, 언젠가 저 곳을 2박 3일 동안 걸었다고 말해주었다.
▲ 중봉에서 바라본 풍경 (필름/Ilford.XP2) 덕유평전과 남덕유의 능선. 옆에 있는 학생에게, 언젠가 저 곳을 2박 3일 동안 걸었다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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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에서 향적봉까지는 금방이었다. 오르막 막판에 지친 사람들도 능선에서 펼쳐진 또 다른 풍경을 바라보자 힘을 내는 듯했다. 다행히 계획한 시간 내에 설천봉에 잘 도착하여 곤돌라 탑승권을 구매하여 낙오자 없이 안전하고 행복한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등산 후 먹는 밥은 언제나처럼 꿀맛이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은 참 뿌듯했다. 

에필로그.

"선생님. 다음부터는 저 등산 안 갑니다."
"왜?"
"몰라요.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너 저번에 운장산에서도 그렇게 얘기하고 여기 다시 왔잖아."
"아녜요. 이번에는 진짜예요. 저 설득하지 말아주세요."
"싫은데? 설득할건데?"
"으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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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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