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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아바이트(Hausarbeit)는 일종의 소논문으로서 독일 대학에서 흔히 활용되는 평가 방식 중 하나다. 학생들은 하우스아바이트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을 채우는 방식으로 글을 완성한다. 그들은 강의를 바탕으로 주제를 정하며 자신만의 문제의식을 발전킴으로써 학문적 글쓰기를 연습한다. 강의에서 시작된 문제의식을 자신만의 관점에서 심도 있게 탐구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강의가 모든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거나 모든 학생들의 문제의식을 반영할 순 없는 상황에서 하우스아바이트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때의 글쓰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 아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자료들을 활용한다. 아마 하우스아바이트 작성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타인의 글을 읽고 정리하는 시간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밝힌 연구 결과 및 논지를 활용해 자신의 논지를 강화할 수 있다. 기존의 것에 대한 고려 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펼치는 글쓰기는 독자를 설득시킬 수 없다. <학자의 글쓰기>에서 하워드 베커는 이러한 과정을 학문에서의 협동 과정이라 말한다.

하워드 베커는 독창성은 기존의 것을 토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하나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선 다른 글쓴이들과 충분히 협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읽기'는 시/공간에 구애 받지 않고 이러한 협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때 타인의 글은 자신의 글의 재료가 된다. 재료는 직접 만들지 않았어도 이를 활용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사용자, 즉 글쓴이의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글쓴이에 따라 전혀 다른 글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협동적 글쓰기의 의미에서 타인의 생각을 활용하는 것과 표절을 동일시해선 안 된다. 전자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자신만의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라면, 후자는 타인이 만든 음식을 마치 자신이 만든 음식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다. 표절은 정신적 도둑질이라 불리며 타인의 글을 아무런 표식 없이 자신의 글에 활용하는 행위다. 이는 원저자의 독창성을 무시하고 학자 및 연구자로서 윤리적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문인(학자)들에게 공적 찬사는 그들이 받는 보상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이는 그들의 독창적인 연구물이 인정받았을 때에만 가능하다.  만약 표절 행위가 학계에서 용인되고 방치된다면, 학자들은 독창적인 연구를 할 외적 동기 중 하나를 잃게 된다. 자신의 독창성에 대한 공이 타인에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의 타락을 넘어 학문 발전의 저해를 가져올 수 있다.

독일 대학에선 학생들이 표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한다. 표절은 무지에 의해 의도하지 않게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학에선 학문적 글쓰기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필자가 다녔던 두 독일 대학에선 학문적 글쓰기를 위한 수업 매 학기 개설돼 필요에 따라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특히 현재 다니고 있는 튀빙엔 대학에선 매주 정기적으로 학문적 글쓰기 튜터링이 운영돼 다양한 측면에서 학문적 글쓰기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학생들은 과제를 제출할 때, 표절하지 않았다는 서약서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학교, 전공마다 양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약서는 이 글이 자신만의 독창적 작품이고 올바르게 인용을 했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 필자가 다니는 전공의 서약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허용되지 않은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언급한 자료만 활용해 글을 작성했다. 인용한 출판물이나 그 외의 타인의 진술을 의미적으로나 언어적으로 활용할 때, 인용 표시를 했다. 부정 행위의 경우 강의에서 성적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학문 후속 세대 양성은 대학의 대표적 기능이다. 이때 지식 및 기술 등과 같은 역량뿐 아니라, 학자로서 갖춰야 할 태도 함양 역시 대학의 책임 하에 있다. 이러한 이유로 독일 대학은 어디에 출간된 일도 없는 글쓰기 과제에 대해서도 위의 사례처럼 학자로서 양심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이를 어길 경우에 학생은 해당 강의를 이수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퇴학에 이를 수 있다. 이는 과도한 조치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학문 집단의 건강한 존속을 위해 대학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다.

이렇듯 대학은 학문 후속 세대가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예방함과 동시에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를 방치해선 안 된다. 문제 발생의 책임 소재를 밝히고 사후 조치를 즉각적으로 취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논문의 표절율이 학계에서 통용되는 기준보다 훨씬 높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표절이 아니라고 결정한 사례가 있었다. 이는 대학이 한 개인의 일탈을 용인하는 것을 넘어서, 또 다른 문제 사례가 재발할 토대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것과 같다. 과연 어떠한 선택이 학문 세계의 발전과 존속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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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사는 교육을 공부하는 학생. 교육을 혐오해서 교육 대학교에 입학했고 현재는 교육의 희망을 그리고 있다. 나의 궤도에서 나만의 방향, 속도로 꿈을 나아가고 있으며 평생 배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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