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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된 반지하방에서 구출되지 못해 3명이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빌라의 반지하방의 지난 12일 오후 모습. 침수된 방은 정리되지 않은 채 소방대원들의 현장조사가 실시되고 있다.
 침수된 반지하방에서 구출되지 못해 3명이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빌라의 반지하방의 지난 12일 오후 모습. 침수된 방은 정리되지 않은 채 소방대원들의 현장조사가 실시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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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도대체 왜 건물을 저렇게 지었을까? 땅 위에 지으면 될 것을 굳이 땅을 파고 사람이 사는 주택을 지었을까? 반지하는 돈벌이도 되지 않는다. 지상에 곧바로 건물을 올리는 것보다 땅을 파고 지하에 기초를 쌓아 건물을 올리는 것이 훨씬 비싸다. 그렇다고 이렇게 만들어 놓은 반지하 주택이 비싼 것도 아니다. 지상에 있는 주택보다 훨씬 가치가 떨어진다.

그렇기에 주로 경제적 약자들이 반지하에 산다. 지난 8일 폭우로 목숨을 잃은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세 식구도 경제적 약자였다. 그런데 도대체 이처럼 건축비도 비싸고 지어놓아 봤자 비싸게 팔 수도 없는 반지하는 왜 서울 시내 곳곳에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은 국가가 만들라고 했기 때문이다.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반지하 

1968년 1월 17일 북한군 제124군 소속 김신조 등 무장공비 31명이 서울을 향해 침투한 사건이 발생했다. 소위 김신조 사건이다. 김신조 사건 이후 정부는 안보체제를 대폭 강화하는 일련의 조처를 했다. 이러한 조치 중 하나로 일정 규모 이상 도시에 연면적 200평방미터 이상 건축물을 건축할 경우에는 지하실의 설치를 의무로 규정했다(1970. 3. 2.시행 건축법 제22조의 3, 동법 시행령 제106조). 유사시 방공호로 사용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당시 건축법은 지하를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당시 지하실은 모두 창고나 보일러실 등 용도로만 사용됐다. 하지만 서울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주거난이 심각해지자 지하실을 불법으로 개조해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하실을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증가하자 정부는 이를 금지하기보다는 오히려 양성화했다. 지하실의 주거용 사용을 금지할 경우 발생한 주거난을 해결할 방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하실을 주거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환기 및 위생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1976. 2. 1. 시행 건축법 제19조).

하지만 아무리 환기와 위생을 신경 쓴다고 해도 지하는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 됐다. 창문도 없는 지하실에서 환기와 위생을 이뤄내는 것도 어려웠다. 그러자 정부는 지하실의 요건을 완화했다. 지하층의 천장이 지표면 밑에 위치해야 지하실로 인정되었던 것을 절반만 묻히고 나머지 절반은 지상에 올라와 있어도 지하실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건축법을 개정했다(1984. 12. 31. 시행 건축법 제2조).

기존보다 절반만 땅을 파고 지하실 설치 의무를 충족할 수 있게 됐다. 절반이라도 땅 위에 올라와 있다는 것은 창문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만 창문은 지상에 있는 부분, 즉 천장 바로 아래에 위치해야 했다. 이로써 머리 위에 창문이 있는, 길가에서 창문을 통해 방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의 반지하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반지하는 땅을 절반만 파니 건축비를 절감하면서도 지하실 설치 의무 규정을 충족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건축구조였다. 여기에 창문이라도 있어 그나마 사람이 살만한 곳이니 전세든 월세든 더 높이 쳐 받을 수 있었다. 건축주들이 이렇게 매력적인 반지하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반지하는 하나의 트렌드가 돼 버렸다.

반지하는 정부의 강제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렇게 반지하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 역시 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른 결과였다. 주거난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주차난이 더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자 정부는 주택의 지하실 의무 설치 규정을 삭제했다(1996. 1. 6. 시행 건축법 시행령 제62조). 동시에 주차장 규정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1층을 벽을 없애고 기둥만 만들어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필로티 구조는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주차장을 확보할 수 있는 공법이었다.

'삶'이 부재한 반지하 논의 
 
오세훈 서울시장이 9일 발달장애 가족이 침수로 고립돼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수해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9일 발달장애 가족이 침수로 고립돼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수해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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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는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방공호로 사용한다며 민간 주택에 지하실 설치를 강요했다. 돈 들여 지어놓은 건물을 놀릴 수 없던 건물주들은 지하실을 주택으로 개조했다. 그리고 정부는 오히려 이를 장려해 반지하 주택을 만들었다. 땅 밑에 있으니 수해에 가장 취약한 것은 당연하다.

정화조 바로 위에 위치하니 폭우로 정화조에 물이 차면 똥물이 변기에서 역류하기 일쑤였다. 영화 <기생충>의 화장실 역류 장면은 픽션이 아닌 현실이다. 이렇듯 사람이 살만하지 않은 곳을 오히려 정부가 주택으로 장려했으니 사고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신림동에서 세 식구가 도심 한복판 자신의 집에서 물에 빠져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사람이 죽고 나서야 반지하에 대한 대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은 "반지하에 사는 사람을 다 어디로 보내냐"며 반대하고 나섰다.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장소다. 삶에 대한 고민 없이 주거를 생각할 수 없다.

반지하는 삶에 대한 고민이 부재한 주거대책의 결과다. 사람에 대한 고민 없는 제도가 사람의 죽음을 가져왔다. 하지만 지금 여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지하 논쟁에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사고수습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런 식으로는 비극을 멈추기 어려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은 경기도의회 의원(민주당, 부천시 제5선거구)이며 현직 변호사입니다.


태그:#반지하, #수해, #신림동 세모녀, #오세훈, #원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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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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