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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을 주제로 엮은 <한겨레 21> 통권 7호 표지.
 비건을 주제로 엮은 <한겨레 21> 통권 7호 표지.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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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 같으면 신문처럼 한 번 쓱 훑어보고 말았을 주간지를 두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글자 하나, 사진 한 장 놓치지 않기 위해 책상 앞에 바른 자세로 앉아 밑줄 그어가며 정독했다. 학창 시절 교과서도 이렇게 꼼꼼하게 챙겨 본 기억이 없다.

비건(Vegan)을 다룬 <한겨레 21>의 통권 7호. <한겨레 21>은 꾸준히 하나의 주제에 집중한 통권 호를 발간해 왔는데, 작년 상반기에 나온 '쓰레기 TMI'는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혼자 읽기 아쉬워 여러 권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미리 <한겨레 21>에 부탁드리건대, 이번 통권 호도 부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잡지와 책이 주는 '물성'이 달라, 여기저기 선물하기도 좋고 사람들이 더 꼼꼼하게 읽게 될 것이다. 작년의 '쓰레기 TMI' 못지않은 바람을 몰고 올 것 같은 느낌이다.

전 지구적 이슈인 기후 위기와 맞물려 비건에 관한 관심이 세대를 넘어 커지고 있는 요즘 단연 시의적절한 주제라고 본다. <한겨레 21> 소속 기자 전원의 현장 취재와 인터뷰 등으로 완성해낸 '비건에 관한 모든 것'이다. 단언컨대, 이보다 더 포괄적이고 상세할 수는 없다.

특히 나 같은 소심한 '비건 지향인'에게 위로를 건네고 새삼 용기를 주는 고마운 멘토다. 지금까지 스스로 '페스코 채식주의자'라고 명명했지만, 앞으로는 남들 앞에서 '비건 지향인'이라고 소개할 예정이다. 이번 통권 호를 읽고 난 뒤 무릎을 치며 깨닫게 된 바다.

참고로 페스코는 소나 돼지, 닭, 오리 등 육류를 먹지 않을 뿐 해산물과 유제품, 달걀 등의 부산물은 먹는 단계를 일컫는 용어다. 페스코에서 해산물까지 먹지 않는 락토-오보 단계를 넘어가면 완전 채식인 비건 단계다. 비건은 먹거리뿐만 아니라 동물성 제품을 일절 소비하지 않는다.

페스코 아래는 폴로인데, 닭과 오리 등 가금류까지는 먹는 단계다. 채식의 가장 낮은 단계는 플렉시테리언으로, 평소 채식을 추구하되 상황에 따라 육류를 가리지 않고 먹는다. 예컨대, 주말이나 특정 요일에만 채식하거나, 퇴근 후 집에서는 채식을 실천하는 식이다.

그런데 단계가 세분화할수록 은연중에 채식의 문턱을 높이게 되는 결과가 초래돼 비건을 제외하곤 모두 '비건 지향'으로 묶는 추세라고 한다. 이젠 "채식주의자라면서 왜 생선은 먹느냐"는 타박에 더는 미주알고주알 설명하지 않아도 될 성싶다. 비건을 지향한다는 답변 하나면 족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채식 관련 질문을 받을 때면, 아무리 번거로워도 채식의 필요성 등을 장황하게 설명하곤 했다. 언젠가는 채식의 단계를 말하다 "채식에도 승급 심사가 있느냐"는 황당한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아무튼 채식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가는 게 급선무라면, '비건 지향'이 가장 적확한 표현일 듯하다.

365일 내내 고기 반찬, 학교 급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바람대로 단행본이 출간된다면, 곧장 교무실의 동료 교사들에게 선물할 계획이다. '비건 지향'이 가장 절실한 곳이 학교라는 생각에서다. 1년 365일 단 하루도 빠짐없이 고기반찬이 나오는 학교 급식은 변화가 시급하다. 요즘 아이들에겐 고기가 밥이고, 밥이 반찬이다. 하물며 나물류는 배식과 동시에 잔반통에 버려지기 일쑤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고기반찬이 없다면 아이들은 아예 급식을 거르고 매점으로 향한다. 어릴 적부터 고기에 길들어진 입맛을 바꾸긴 틀렸다는 푸념까지 나온다. 더욱이 '한창 클 나이엔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주장 앞에 교육청의 '채식의 날' 방침조차 흐지부지됐다.

고기반찬의 횟수와 양은 아이들의 급식 만족도에 정비례한다. 젓가락 한 번 닿지 않고 버려지는 잔반의 엄청난 양을 마주하노라면, 채식이 되레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일 수 있겠다는 착각마저 든다. 닥쳐올 기후 위기는 두렵지만, 육식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게 요즘 아이들의 공통된 정서다.

이럴진대, 과연 '비건 지향'의 학교는 가능할까. 고백하건대, 이번 통권 호를 읽기 전까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들은커녕 동료 교사들조차 비건에 대한 반감이 컸다. 영양학적으로 논란이 분분하다거나 우리나라의 현실에선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어김없이 튀어나왔다.

그들 앞에서 비건 이야기를 꺼내는 건, 마치 불교 신자 앞에서 예수 믿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기후 위기에 대해 가르치면서 비건에 색안경을 쓰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하면 이내 말다툼으로 번졌다. 적어도 식습관에 관한 한 교사들 사이에서 난 공공연한 '왕따'였다.

비건에 대한 편견, 이 책이 바꿔주길
 

회식 자리가 불편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처음엔 부러 삼겹살을 굽고 갈비를 뜯는 자리에 함께하며 채식의 필요성을 떠들어댔지만, '식물도 생명체'라는 등의 조롱만이 메아리 되어 돌아올 뿐이었다. 그럴수록 남들 앞에 채식주의자라는 것조차 숨기며 스스로 담을 쌓아갔다.

홀로 행정 업무를 하거나 학급 담임일 때는 별다른 갈등이 없었는데, 올해 학년을 총괄해야 하는 부장직을 맡고서는 채식이 자꾸만 걸림돌이 됐다. 회식 자리에 빠지기 곤란해서다. 난 동료 교사들의 눈치를 보고, 반대로 동료 교사들은 내 눈치를 보는 상황이 이어졌다.

회식은 고깃집에서 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메뉴가 소고기냐 돼지고기냐 양자택일의 문제일 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더욱이 2차도 십중팔구 치킨에 맥주였으니, 애초 회식 자리에 가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그것이 서로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었다.

"벌건 핏물이 고인 고깃덩어리를 보는 게 너무 괴롭습니다. 도축한 소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요."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무심코 내뱉은 이 말에 동료 교사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값비싼 음식 앞에 다들 군침을 흘리고 있는데 그 앞에서 소의 비명 운운했으니 설령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한들 적잖이 불쾌했을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꺼내지 말았어야 할 말이었다.

핏물 고인 소고기 스테이크를 보는 관점의 차이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할 순 없다. 난 접시 위에 올려진 그것을 '소'로 봤고, 그들은 '고기'로 여겼을 뿐이다. 난 접시 위에 올려지기까지 소의 일생이 떠올랐고, 그들은 고기의 맛과 값어치를 우선 따져봤을 것이다.

그들도 수업 시간에 공장식 축산의 폐해와 동물권에 대해 강조할 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교과서의 내용일 뿐이다. 그것과 자신의 식습관은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솔직해지자면, 자기 한 명 채식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고 여기는 거다. 소금 한 움큼 집어넣는다고 호숫물이 짜지겠냐는 식이다.

하지만 그들도 경험하면 달라질 거라 믿게 됐다. 악취 나는 양돈장과 숨 막히는 양계장에 가보고, 숨통이 끊어지기도 전에 도축되는 소들의 비명을 듣는다면 더는 고기로만 보이진 않을 것이다. 나아가 그곳에서 식탁 위에 올려지기까지의 과정을 속속들이 알게 된다면, 비건에 대한 편견도 눈 녹듯 사라지게 될 테다.

저명한 실천윤리학자인 피터 싱어의 일갈처럼,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은 교육받을 필요가 있으며, 더 윤리적으로 살도록 설득될 필요가 있다'. 모든 이가 참혹한 사육 환경의 양돈장과 양계장 등을 직접 체험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간접 경험으로써 독서가 훌륭한 대안일 수 있다.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이나 제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이 조금 읽기 부담스럽고, 존 맥두걸의 <어느 채식 의사의 고백>의 내용이 선뜻 동의가 안 된다면, 이번 통권 호가 제격이다. 이태 전 단숨에 읽었던 김한민의 <아무튼 비건>과 함께 최고의 채식 입문서로 감히 자부한다. 이번 통권 호의 뒷부분에 추천 도서 목록이 간단한 설명과 함께 실려있다.

이번 통권 호를 통해 하나 더 깨달은 게 있다. 육식을 줄이거나 끊도록 하는 게 최종 목표일지언정 먹거리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변화를 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비건은 완전 채식을 넘어 다양한 사회 문제와 그물망처럼 연결된 환경 운동으로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동물을 먹지 않고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것, 나아가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 역시 넓게 보면 비건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뜻이다. 다짜고짜 육식을 줄이자고 종용하는 것보다 차라리 함께 자전거를 타고,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벌이면서 '비건 지향'을 시작해봐도 좋을 듯싶다. 일단 시작하면, 비건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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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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