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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의 초췌한 모습이다.
▲ 수배 중에 1972년 설악산에서 친구가 찍은 것.  김지하의 초췌한 모습이다.
ⓒ 깁지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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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전진하기도 하지만 반동의 경우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

2013년 12월 실시된 제18대 대통령선거는 여당의 박근혜 후보와 야당의 문재인 후보가 박빙 끝에 박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명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보수의 승리였다.

"국정경험도 업적도 거의 없는 사람이 '박정희 딸' 이란 이유로 상당한 득표력을 보였으니 이 신드롬(박정희 신드롬)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박노자)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 직원들의 조직적인 선거개입과 민주주의 시계를 17년 전으로 되돌린 군의 정치개입, 국가보훈처의 선거개입 등이 속속 드러나면서 정통성에 심각한 문제를 안은 정권이었다. 선거부정이 전임 이명박 정권에서 저질러진 일이지만, 혜택은 고스란히 박근혜가 입었다. 국가기관들의 선거개입이 없었다면 과연 당선이 가능했을 것인가 의문이 따랐다. 

박근혜는 대선 후보로서 경제정의와 국민화합 등 장밋빛 공약을 많이 내걸었다. 하지만 취임 후 대선공약은 거의 폐기하거나 빌 공약이 되었다. '경제정의'는 대기업 등 재벌 이익으로 바뀌어 서민생계, 청년실업,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되었다. 검찰중립은 공염불이 되고, '국민화합'은 커녕 특정지역 인사들만 중용하여 지역차별을 심화시켰다. 국가의전 서열 10위권의 대부분이 특정지역 출신이고, 감사원장ㆍ검찰총장ㆍ경찰청장 등 5대 감찰기관장 역시 특정지역의 '동창회'로 구성하였다. 그러면서 '우수 인재'를 찾다보니 그리되었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타지역 인사들의 심장에 대못을 박는 언행이다. 
 
 김지하는 동아일보에 ‘저는 아직 석방 않됐읍니다’라는 백지광고를 낸다.
▲ 김지하의 시국선언  김지하는 동아일보에 ‘저는 아직 석방 않됐읍니다’라는 백지광고를 낸다.
ⓒ 김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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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문제 투성이의 인사들을 요직에 발탁하면서 국가의 기강을 흔들고 사회정의와 국민의 도덕 감정에 상처를 남겼다. 첫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을 시발로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전직 대법관은 전관예우라는 비법으로 1년 만에 15억을 챙기다 낙마하고, 두 번째로 지명된 언론인 출신 후보자는 일제의 한국지배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따위의 망말로 지명을 사퇴했다. 세 번째 지명자는 각종 비리로 만신창이가 되어 국회인준을 받았으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명단에 올라 70일 만에 사퇴하였다. 각종 비리 투성의 인사들만을 선호하는 것인지, 그들 세계가 온통 그런 자들 뿐인가 하는 개탄이 쏟아졌다. 

장모 박경리가 1999년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에 토지문화관을 열면서 예술가와 작가들의 창작과 저술을 위하여 창작실(귀례관)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후원하였다. 김지하도 가족과 함께 제2고향인 원주로 거처를 옮겼다. 

2010년 경암학술상 예술부문상, 2011년 민세상 사회통합부문상을 수상하는 등 상복이 이어졌다. 그는 법원에 민청학련사건 관련 재심을 신청하고 2013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따라 그와 그 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15억 원의 손해배상을 확정받았다. 6년 여의 옥살이와 심신이 찢긴 고문의 댓가이다.

시인 김지하(74)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5억 원의 손해배상을 확정받았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다른 과거사 손해배상 사건들과 달리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았다.

서울 고검은 김씨가 낸 소송에서 15억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한 지난달 8일 항소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고 25일 밝혔다. 송인택 서울고검 송무부장은 "검토 결과,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대해 내용이나 시효 문제를 다퉈도 승소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상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고검은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소송에서 국가 쪽을 대리한다.(…)

검찰은 그동안 과거사 배상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시효를 제한해야 하고 과거사위 조사 결과도 그대로 수용하면 안 된다며 대부분 상고했다. 대법원도 이를 상당 부분 받아들여 배상 규모를 줄여왔다. 송인택 송무부장은 "사실관계를 다툴 여지가 있거나 명확한 배상 기준이 없으면 기준을 만들기 위해 대법원까지 끌고 가지만, 이미 판례가 만들어져 소송의 실익이 없으면 국고 손실방지 차원에서 상고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국정원과 거사위 결정 때부터 시효를 계산해보면 김씨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석 2)   


주석
2> <한겨레>, 2015년 5월 26일.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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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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