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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의 초췌한 모습이다.
▲ 수배 중에 1972년 설악산에서 친구가 찍은 것.  김지하의 초췌한 모습이다.
ⓒ 깁지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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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덕과 반이성이 일상화되다시피한 공간에서 지식인이 붓 한 자루를 무기삼아 양심을 지키며 살기는 여간해서 쉽지않은 시대였다. 

한쪽에서는 그가 올올(兀兀)한 지사이기를 바랐고, 다른 쪽에서는 기름진 유혹의 손길이 따랐다. 세월의 물결은 피할 수 없어서 그도 이제 고인이 되었다. 김지하 시인 추모문화제를 준비한 이부영 위원장은 "김지하와 함께 한반도의 해방과 민주, 생명평화를 꿈꿨던 분들은 부디 그의 명복을 빌어주시고, 가슴의 응어리가 있다면 푸시도록" 사람들을 불러 추모제를 지냈다. 그리고 고인의 행적을 평한다. 
1974년 지학순 주교의 재판소식을 알리고 있는 <가톨릭시보>와 구속 중이던 김지하 시인.
▲ 1974년 지학순 주교의 재판소식을 알리고 있는 <가톨릭시보>와 구속 중이던 김지하 시인. 1974년 지학순 주교의 재판소식을 알리고 있는 <가톨릭시보>와 구속 중이던 김지하 시인.
ⓒ 가톨릭시보·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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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 김지하 시인이 발표한 <오적>에 이은 그의 일련의 시작(詩作)과 문예활동은 박정희 정권의 영구집권 기도에 정면저항하는 메시지를 국내외에 던지면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시와 노래, 판화와 전통 민중연희(탈출, 마당굿 등)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새로운 문화운동 형식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배 속에서도 생명력을 이어온 민중의 가락, 춤사위 등을 민주화운동에 접목시키는 작업이었음을 국내외의 문화예술인들이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망국, 식민지배, 전쟁, 분단, 독재, 가난의 대명사처럼 되어있던 한국, 그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서 생명의 외침, 가락이 힘차게 울려 퍼졌습니다. (주석 7)

고인과 민주화투쟁의 연고가 깊었던 함세웅 신부는 추도사에서 생전의 인연을 소개하고 덧붙인다. 

그 후 그는 너무 다른 길로 멀리 갔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에 저는 헤겔의 정반합(正反合) 원리를 기초로 김지하의 삶을 다음과 같이 종합합니다.

명  제 : 우리는 30대 청년 시인 김지하를 마음에 품고 예찬하며 기립니다.
반명제 : 후반기의 김지하, 그 일탈과 변절을 단호하게 꾸짖고 도려냅니다.
종 합 : 죽음을 통해 이제 그가 신의 반열에 들었으니, 청년 김지하의 삶과 정신을 추출해 그의 부활을 꿈꾸며 민족공동체의 일치와 희망을 확인합니다. (주석 8)

고인이 '죽음의 굿판'을 기고했을 때 민족문학작가회의 간부로서 매섭게 비판했던 김형수 시인은 추도사에서 "내가 아는 김지하 시인은 늘 강고한 자기 존엄의 정점에서 살았는데, 그러나 그 때문에 개체의 나약함은 없었는가 싶을 때마다 인간의 영혼이라는 광야가 너무 넓고 커서 슬프고 무서웠다."면서 덧붙인다. 
문학 행사장에서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김지하 시인.
▲ 문학 행사장에서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김지하 시인. 문학 행사장에서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김지하 시인.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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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지하 시인의 부음을 듣고 막막한 것은, 위대한 역사적 인격 하나를 잃었다는 사실에, 그 많은 후학을 남긴 스승이 '나머지 사람들'의 '섬김'을 못 받았다는 사실에, 그 장엄한 생애가 국가폭력으로 만신창이가 되어서 말년을 너무 적막하게 보냈다는 사실이 마구 겹쳐온 까닭이다. 

오호 애재라, 우리가 끝내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별리의 순간을 맞은 결과는 옛 선각들의 지혜를 '지금 이 자리'로 끌고 올 지도자를 잃은 참화이니, 이제 자칫하면 김지하의 역사가 '학문'이 되거나 소수의 '운동'으로 방치될 위기 앞에 놓여 있다. 나는 여전히 그 슬픔과 더불어 이기적 생각을 거두지 못한다. 아! 이제 누가 내게 그 길을 가르쳐 줄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오늘 시인의 그림자 뒤에 엎드려 운다. (주석 9)
 
김지하 시인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시인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시인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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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마지막 시집 <흰 그늘>에 실린 <모심>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글의 꼬리로 삼고자 한다. 

 모심

 오늘 
 종이 위에 
 분명히 쓴다
 '촛불은 모심이다.'
 내 말이
 아니라 
 수운(水雲) 선생님 말씀. 
 참으로 
 어제 
 제게 한 말씀! 
 그래서 
 나 
 오늘 
 나간다.
 '문바위'로! (주석 10)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주석
7> <김지하시인 추모문화제 자료집>, 10쪽.
8> 앞의 책, 14쪽.
9> 앞의 책, 46쪽.
10> <흰 그늘>, 14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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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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