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7 15:15최종 업데이트 22.08.1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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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램지어 하버드 대학교 교수가 위안부 문제에 관한 신작 논문을 내놓았다. 지난 8일 엘스비어(Elsevier) 출판사가 운영하는 논문 사이트인 '사회과학연구 네트워크(www.ssrn.com)'에 아리마 데츠오 와세다대학 교수와 함께 쓴 그의 논문이 업로드됐다.

 아리마 교수는 작년 7월 30일 발간된 <위안부는 모두 합의계약을 했다(慰安婦はみな合意契約をしていた)>라는 책을 통해 '위안부는 피해자도 아니며 희생자도 아니다'라는 논리를 펼친 바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램지어 교수의 입장을 옹호했고, 램지어 역시 아리마를 위해 책 서문을 써주었다. 서문에서 램지어는 자신을 향한 미국 국내외 비판을 "엉망진창"이라고 불평했다.
 

존 마크 램지어 교수가 서문을 써준 아리마 데츠오 와세다대 교수의 신간 <위안부는 모두 합의계약을 했다>. ⓒ WAC문고

 
이번엔 위안부 북한 커넥션 주장

올해 69세인 아리마는 위안부뿐 아니라 독도를 소재로도 한국을 맹렬히 비판한다. 작년 12월 16일에는 "아메리카에 일본의 다케시마 문제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에 대한 지원을 호소해봅시다"라며 대(對)한국 전선에 미국을 끌어들이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이번 논문은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국 여론을 분열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듯하다. 그런 의도는 '위안부: 북한 커넥션(Comfort Women: The Korean Connections)'이라는 논문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위안부 문제를 레드 콤플렉스나 빨갱이 논리와 연결지어 한국 보수 세력의 행동을 촉구하려는 것이다.

논문은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극우세력의 주장부터 소개한다. 모집업자의 꾐에 빠지거나 부모의 압력으로 위안부가 된 여성들도 있지만 "나머지는 돈 때문에 그 일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한다. 강제연행이 아니라 자발적 참여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그는 위안부가 강제로 끌려갔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작가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들에 뒤이어 나오는 것이 북한 커넥션이다. "북한과 긴밀히 연계된 명백히 부패한 조직이 위안부 운동을 통제해왔다." 이 대목에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반일종족주의>를 연상시키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것이 지속적으로 남한 내에서 종족민족주의에 불을 붙이고 일본과의 화해를 지연시켰다."

그런 뒤, 논문은 한국 사회가 좌파의 독재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풍긴다. "남한 좌파의 압력 하에 정부는 날조된 기억에 기초한 이 운동의 기원을 지적하는 학자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형사소추를 제기한다"고 주장한다. '매춘부와 무엇이 다르냐', '궁금하면 한번 해볼래요'라는 발언으로 유명한 류석춘 연세대 교수 등에 대한 사회적 지탄의 배후에 좌파의 움직임이 있는 듯한 느낌을 풍기고 있는 것이다.
 

하버드대학교 램지어 교수. ⓒ 인터넷에서 갈무리

 
부패한 조직이 위안부 운동 통제?

위안부 운동이 북한과 연계돼 있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로 램지어 교수가 제시한 것은 지금은 정의기억연대로 불리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단체 성격이다. 그는 정대협을 친북 조직으로 간주한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정대협은 남한과 일본 사이의 그 어떤 화해도 차단함으로써 북한의 핵심적인 정치적 목표를 직접적으로 촉진시키고 있으며, 정대협이 북한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이면서 끈질지게 활동하는 조직이라는 점이 핵심으로 보인다." 

정대협이 종북 단체라고 주장하는 대목에서 램지어는 류석춘 교수의 주장을 근거로 제시한다. "사회학자 류석춘은 위안부 문제에 관한 논문에서 정대협이 북한과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류석춘 교수의 주장이 담긴 글의 제목을 각주를 통해 제시한다.

램지어는 초창기 정대협 활동에 관여했던 고 이우정(1923~2002) 한신대 교수가 북한과 연계돼 있었다는 주장도 근거로 내놓는다. 1992년에 전국구(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된 이우정이 일본 사회당 의원인 시미즈 스미코에게 '북한 여연구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한 사실을 언급한다. "그들은 KCIA의 감시를 피해 나카사키항의 배 위에서 은밀히 만났다." 

마치 드라마 속의 한 장면처럼 두 사람의 만남을 극적으로 처리했지만, 실상은 그렇게 묘사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이었다. 이우정·여연구·시미즈 세 사람이 국제학술대회를 위해 모임을 가졌다는 사실은 노태우 정권 당시의 언론보도로도 알려진 일이었다.

1992년 4월 11일자 <경향신문> 기사 '아주(亞洲) 평화와 여성의 역할 세미나 9월로 연기, 북측에 제의키로'는 "지난달 31일 일본 동경에서 남한 이우정 대표, 북한 여연구 대표, 일본 시미즈 스미코 대표 등 3인이 만나 일본의 사정을 감안, 잠정적으로 이 같이 합의했었다"고 보도했다.

국제학술대회 준비 차 일본인과 만나기 전에 국가안전기획부에 미리 알릴 필요는 없다. 램지어는 그것을 "KCIA의 감시를 피해" 라고 묘사했다. 항구의 배 위에서 만난 일을 두고도 굳이 "은밀히" 란 표현을 붙였다.
 

2021년 2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천480차 정기수요시위'에서 한 시민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를 규탄하는 팻말을 목에 걸고 있다. 2021.2.24 ⓒ 연합뉴스

 
엉망진창 램지어

램지어 교수는 정대협 운동을 이끈 윤미향 의원의 남편이 간첩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사실도 거론했다. "한국 경찰은 그의 남편 김삼석과 그의 여동생을 북한을 위해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체포했다" 고 서술한다.

김삼석 수원시민신문 대표는 간첩조작 사건인 '남매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다. 1993년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재심에서 간첩 혐의 부분은 무죄가 됐고, 재일동포에게 돈을 받은 부분만 유죄로 인정됐다. 이 때문에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까지 받았다.

램지어 교수는 김삼석 대표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재심의 공정성을 문제삼는다. "대법원은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직후인 2017년 5월에 김(삼석)의 간첩 혐의를 취소했다"고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의 재판이라는 이유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마크 램지어 교수는 한·일 극우세력을 모방해 위안부 운동을 북한 커넥션과 연결 짓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논리 전개 방식은 자신의 주장이 허술한 토대 위에 서 있음을 스스로 증명할 뿐이다. 램지어는 자신에 대한 세상의 시선을 엉망진창이라고 불평했지만, 램지어의 글을 볼 때마다 생기는 느낌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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