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24 11:06최종 업데이트 22.08.25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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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 지하의 <세종이야기>, 광화문 광장이 새로 개장되면서 더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 최준화


새로 열린 광화문 광장 덕에 광장 지하에 있는 '세종이야기'도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이곳은 광장의 세종 동상 뒤쪽 지하로 내려가 관람하는 일종의 지하 도시다. 세종대왕의 각종 업적을 국내, 국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보는 곳이다. 그런데 2009년 개장한 이래 13년이 흘렀는데도 오타, 오기가 많아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부정확한 정보, 틀린 서술이 많은 '세종이야기' 
 

<세종이야기> 출입구가 있는 세종대왕 동상 뒤(왼쪽)와 들어가자마자 있는 <세종대왕 연보> ⓒ 김슬옹, 최준화


'세종이야기' 출입구는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뒤쪽에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세종 연보 가운데 '광화문' 관련 역사가 잘못 기술되어 있다. "1431년(세종 13년, 35세) 광화문이 이룩되다"라고 되어 있는데, '광화문'이라는 현판이 내걸린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광화문' 현판이 내걸린 것은 <세종실록>으로 보면, 1426년(세종 8년)이었다. 세종 8년 10월 26일자 기록에 "집현전 수찬(修撰)에게 명하여 경복궁 각 문과 다리의 이름을 정하게 하니, 근정전 앞 둘째 문을 홍례(弘禮), 세 번째 문을 광화(光化)라 하고(생략)"라고 돼있기 때문이다.

내부에는 세종대왕의 다양한 업적이 전시되는데 훈민정음 관련 기록이 비중이 가장 높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글꼴부터 중요 역사에 이르기까지 대략 50여 군데 이상이 잘못돼있다.
 

세종이야기의 훈민정음 제자도, 잘못된 ‘ㅁ’ 상형도와 해례본에 맞지 않는 자음 글꼴들 ⓒ 최준화

 

모음자(중성자) 11자 구성도, 발음을 글꼴로 오인한 이중모음자(ㅛㅠㅑㅕ) ⓒ 최준화


훈민정음 관련 내용들은 보완해야 할 곳이 많았다. 특히 훈민정음 제자 원리 그림은 정확해야 한다. 상형도에서 'ㅁ'은 다문 입술 모양으로 그려야 하는데 벌린 입술로 그려 놓았고 그 밑에 자음자 34자의 도형은 'ㅿ'를 제외하고는 100% 훈민정음 제자 원리에 어긋나는 글꼴로 되어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제자 원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점과 원, 직선만으로 글꼴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런 간결한 직선과 원 중심의 제자 원리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훈민정음의 실용적 가치로 이어졌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데 현대의 붓글씨 꼴로 되어 있다. 이럴 경우 곡선이 들어가 있어 직선 위주의 훈민정음 가치가 사라진다.


모음자 역시 해례본의 차례를 지키지 않았고 이중모음자는 발음 특성을 글꼴 특성으로 오인하게 만들었다. 이중모음 설명에서 'ㅣ+ㅏ=ㅑ, ㅣ+ㅓ=ㅕ, ㅣ+ㅗ=ㅛ, ㅣ+ㅜ=ㅠ'라는 도식은 발음 특성이지 글꼴 특성은 아니다. 이 설명은 'ㅑ, ㅕ, ㅛ, ㅠ'는 'ㅣ'자리에서 발음이 시작된다는 훈민정음 해례본 설명을 반영한 것인데 글꼴 도형 특성으로 기술하면 옳지 않다.

디지털 소개 영상에서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소개하고 있다. 해례본은 세계기록유산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최초 한글 글꼴 모음(김슬옹 글·강수현 그림, <누구나 알아야 할 훈민정음, 한글 이야기 28>, 44~45쪽) ⓒ 글누림


또한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를 혼동하게끔 기술한 곳도 있었다. 훈민정음 창제 연도인 1443년도 '훈민정음 완성'이라 하고, <훈민정음 해례본> 간행 연도인 1446년도 '훈민정음 완성'이라 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연구의 권위자인 정우영 동국대 명예교수는 "1443년은 훈민정음 창제로 1446년 훈민정음 해례본 완성으로 또렷하게 구별되도록 기술해야 하고 <세종실록> 1446년 9월 29일 자에 나오는 "<훈민정음 완성>(訓民正音成)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완성"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잘못된 정보를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훈민정음> 원본의 본문(예의)을 번역한 언해본으로서 세조 5년(1459)의 간행으로 추정되는 <월인석보(月印釋譜)> 권 1책 첫머리에 실려 있다. 총 15장으로 되어 있다. 한문으로 된 훈민정음의 본문을 먼저 쓰고, 그 아래에는 한글로 새로이 한문을 풀이하는 방식으로 쓰여 있어 한문을 모르더라도 훈민정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종이야기'에 등장하는 '훈민정음 언해본' 설명)

원래 "<훈민정음> 원본"은 1446년에 나온 "<훈민정음> 해례본"초간본을 가리키는 것인데, 여기서 '원본'은 초간본을 가리키는 것인지 언해본의 뿌리로서의 '원본'이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훈민정음>(1446) 해례본"으로 표기하는 것이 가장 좋다.

'본문(예의)'은 여기서 해례본에서 세종대왕이 직접 저술한 '정음편'을 가리키는 것으로 '정음편'은 이른바 '세종(어제) 서문'과 '예의'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세종이야기의 설명은 정확하지 않다. '권 1책'은 지금과 다른 15세기 용어이므로 지금 용어를 사용해 '1권'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총15장으로 되어 있다"라는 내용을 번역한 "Consisting of 15 chapters"에서 'chapters'는 오역이다. 여기서 '총 15장'은 모두 열다섯 장(엽), 다시 말해 30쪽이라는 의미이지 내용 구성으로의 장이 아니다. 한국어 기술이 모호하다 보니 잘못된 영어 번역으로 이어졌다.

장영실과 앙부일구에 관한 기록도 잘못이 있다. 장영실은 태종이 발탁했는데도 세종이 발탁해 놓았다고 기술해 놓았고 아주 공들인 대형 조형물이기도 한 앙부일구는 세종과 장영실 정신에 어긋나는 후대의 잘못된 앙부일구를 전시해 놓았다.

1434년에 완성된 앙부일구는 한자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동물 그림(시신)으로 시각 표시를 해 놓았는데(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세종이야기> 앙부일구는 중국인들도 잘 모르는 추상화에 가까운 전서체 한자로 표기해 놓았다. 누리집의 전시유물 해설에서는 '양(←앙)부일구'라고 표기해 놓아 오타 수준이 안타까움을 더해 준다.
 

<세종이야기>에 설치된 <앙부일구> 세종과 장영실이 한자 모르는 백성을 배려해서 만든 <앙부일구>가 아닌, 중국인도 알기 어려운 한자로 잘못 복원한 앙부일구 ⓒ 최준화


<용비어천가>에 대한 기술도 잘못되었다. "1445년(세종 27)에 우리말 노래를 먼저 싣고 그에 대한 한역 시를 뒤에 붙인, 한글로 엮은 최초의 책이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들고 나서 반포하기 전에 제일 먼저 용비어천가를 지었다. 이 노래는 조선 왕조 건국의 당위성을 널리 퍼뜨리고자 지은 것이다. 총 125장 10권 5책으로 되어 있다"라고 기술해 놓았다. 그런데 <용비어천가>는 1445년에서 1447년 간행에 이르기까지 무려 3년에 걸쳐 저술·간행된 것이므로 1445년으로 한정하여 기술해서는 안 된다.

내가 쓴 <조선 시대 훈민정음 발달사>(2012) 연구에 의하면 1445년 한문시 정도의 일부만 저술되었고 훈민정음 표기 서사시 125장은 해례본이 나온 1446년 이후에 온전히 완성되어 1447년에 간행된 것이다. 내용 기술에서도 '조선 왕조 건국의 당위성을 널리 퍼뜨리고자 지은 것'이라고 기술한 것은 오해의 여지가 많은 부족한 진술이다.

<용비어천가> 내용은 조선 왕조 건국의 정당성 내용도 있지만, 후대 임금들이 백성을 위한 정치를 잘하라는 내용이 더 많고 125수 서사시 외 주석에서는 우리의 역사, 지리, 언어 등에 관한 방대한 내용으로 우리 겨레의 문화 정통성을 굳건히 하고 있다.
 

<용비어천가> 저술과 간행 과정(<조선 시대의 훈민정음 발달사> 241쪽에서 발췌) ⓒ 김슬옹


광화문 광장 착공 초기에 기자는 세종과 훈민정음 전문가로서 자문회의에 참석해 이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광화문 광장 사업에 포함하여 전면 개정해야 함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세종이야기는 서울시가 만들었지만, 운영은 세종문화회관 직영으로 이루어진다.
세종문화회관이 만든 세종이야기 누리집에서는 해설사(전문 도우미)를 '도슨트'라는 정체불명의 외국어로 표기하고 있기까지 하다. 세종문화회관 뒤 세종예술정원에는 'S theater'라는 외국어 조형물을 크게 앞세워 오가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세종이야기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심지에 놓여 있는 곳이므로 최고의 맵시와 정확한 내용으로 기술되어야 한다. 관련 전문가들의 재검토를 받아 바로잡지 않으면 '세종이야기'는 국내외 수많은 관람객들에게 잘못된 지식과 정보를 알리는 격이 된다. 매우 시급한 사안이다. 세종은 15세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표준과 국격을 세운 분이다. 그런데 그런 위대한 업적을 더욱 널리 알리기는커녕 오히려 그 품격을 '세종이야기'가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훼손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8월 11일, 17일 두 차례 방문하여 현장 실무자와 대화를 나눴으나 이런 잘못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19일 휴가에서 돌아온 담당 책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오기가 바로잡히지 않은 원인에 대해 문의한 결과 2009년 개관 당시 전문가 자문을 거쳐 만든 것이기에 잘못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한다. 지적 내용을 알려주면 확인해 보고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정체불명의 영어를 사용한 <세종이야기> 누리집과 세종문화회관 앞 세종예술정원 디자인 ⓒ 김슬옹


대한민국의 자존심인 세종 정신을 훼손하는 '세종이야기'의 이런 문제를 언제까지 내버려 둘 것인지 서울특별시와 대한민국 정부에 묻고 싶다. 세종이야기는 광화문 광장의 뿌리이다. 뿌리가 굳건해야 광화문 광장의 존재 가치가 높아지고 대한민국의 품격이 높아진다.
덧붙이는 글 참고 도서 : <세종학과 융합인문학>(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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