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31 05:15최종 업데이트 22.09.0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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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식을 보내오는 시민기자들과 함께 '2022 글로벌 리포트 : 불타는 지구... 이상기후 현장을 보다'를 내보냅니다. 폭염, 폭설, 산불, 홍수와 같은 각종 이상기후 현상과 현지인들의 반응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이에 대한 각국 정부의 대응, 전문가들의 진단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3000여 미터 높이의 오스트리아 키츠슈타인호른 '탑 오브 잘츠부르크'에서 보는 빙하. 이곳 역시 지구온난화 등 기후위기의 영향을 피해 가지 못했다. ⓒ 김보성

 
2022년 여름은 참 더웠다. 필자가 살고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도 역사상 가장 뜨거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7, 8월엔 땀을 엄청 흘리며 보냈다. 천장에 설치해둔 큰 선풍기를 틀지 않으면 자기 힘든 날도 며칠씩 이어졌다.

살면서 이런 날씨 처음이라는 오스트리아인 이웃은 커튼을 쳐서 집을 동굴처럼 해두고 살았다. 집안 환기도 해가 저문 뒤에나 했다. 여름이면 공원이나 다뉴브강가 어느 귀퉁이에 앉거나 누워 해바라기를 하며 책 읽고 수다 떨기를 좋아하던 오스트리아인들은 대체로 최대한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머물면서 일단 생존부터 확보하며 지냈다.


한국도 7월 초 전국 평균 기온이 50년 만에 가장 높았다고 하니 이곳과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유럽이나 중국, 아프리카,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 하천이 마르고 마실 물을 걱정하기도 한다는 소식을 접하며 기후학자들이 경고하던 것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싶었다.

이탈리아나 영국은 정원에 물주기, 세차, 수영장 물 채우기 등을 일시적으로 금지했고, 전력 생산 90%를 수력발전에 의존해온 노르웨이는 수력발전소 수위가 낮아져 당장 에너지 문제로까지 비화했다. 이는 기후 위기가 당장 사상자를 내는 재난일 뿐 아니라 식량 위기, 에너지 위기, 경제 위기로 이어진다는 걸 보여준다.

극과 극의 날씨

오스트리아도 가뭄으로 일부 호수가 마르고 있지만 다행히 내가 살고 있는 빈은 당장의 물 걱정은 없다. 빈에서는 알프스 자락의 산에서 나는 질 좋은 물을 150킬로미터씩 수도관으로 끌어다 도시 전체에 공급한다.

150년 이상 된 이 시스템은 각 집으로도 물을 공급하지만 길과 공원 한쪽에 '트링크브룬넨(Trinkbrunnen, 식수샘)'을 설치해 누구든 물을 쓸 수 있게 해둔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150년 이상 된 이 시스템은 각 집으로도 물을 공급하지만 길과 공원 한쪽에 '트링크브룬넨(Trinkbrunnen, 식수샘)'을 설치해 누구든 물을 쓸 수 있게 해둔다. 사진은 위 트링크브룬넨과 아래 네벨듀션(안개샤워) ⓒ wien.gv.at

 
여름에는 특히 도시 곳곳에 네벨듀션(Nebelduschen, 안개샤워) 시설을 운영한다. 아이들이 물장난을 하는 놀이터 등에서 가느다란 물방울이 안개처럼 뿜어져 나와 말 그대로 안개 샤워를 하고 몸을 식혀갈 수 있게 하는 시설이다. 이밖에도 다뉴브 강 곳곳엔 누구나 와서 수영도 하고 쉴 수 있게 잔디와 녹음이 조성되어 있다. 더위를 피하고 잠시 휴식을 누리는 것이 호사가 아니라 시민 누구나 누려야하는 권리라는 태도가 묻어난다. 주거나 교육 등 기본 권리에 대해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오랫동안 펴왔던 도시답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전체로 보자면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다를 바 없이 폭염과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가장 큰 호수이자 휴가지로 유명한 노이지들러 호수는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위를 기록했고, 포어아를베르크 주의 브레겐츠에서는 식수 탱크가 바닥나 식수와 위생상 꼭 필요한 용도 외에는 물 사용을 자제할 것이 권고됐다. 알프스 산 곳곳에서는 지난 몇 달 간 산불이 계속됐다. 그런가 하면, 폭염이 이어지던 포어아를베르크 주에서는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져 내려 지역 창고와 차도 등이 물에 잠기기도 했다.

티롤 주 알프스 빙하는 매년 평균 1미터씩 녹던 것이 올해 상반기에 1미터 이상이 녹아버렸는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름에도 스키를 타는 사람들로 붐비던 리조트들은 모두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방에 눈들이 녹아 이전의 루트들이 없어지고 바위가 돌출되는 등 안전상의 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최고봉인 그로스글로크너 빙하의 지난 7월 모습. 과거 사진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기후위기로 녹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 김보성

 
이렇게 순식간에 기후가 극과 극으로 치닫자, 정부는 캇반(KATWARN)이라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다양한 응급상황과 재난 위험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언론들은 어떻게 하면 물을 아낄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이와 관련, 최근 이케아는 오스트리아인 3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2/3 정도의 사람들은 한사람이 하루에 소비하는 평균 물소비량이 얼마인지 몰랐다. 답을 한 사람들도 61리터로 예측, 실제 평균 사용량인 130리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물론, 하루 물 사용량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2/3 이상의 사람들이 목욕을 하는 것보다 샤워를 하는 것이 물을 아낄 수 있다고 답했는데, 이 또한 실제와 달랐다. 대개 욕조를 가득 채우는 데에는 150리터의 물이 드는데, 이는 10분간 사워를 하면서 쓰는 물의 양과 같다고 한다. 그러니 샤워를 하더라도 이른바 퀵샤워(5분 내로 끝내는 샤워)를 해야 물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름보다 더한 겨울

그런데 유럽엔 여름을 어떻게 날 것인가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수출되던 가스 공급이 크게 줄어들면서 닥쳐올 겨울을 어떻게 날 것인가를 두고 여름내 공론이 이어졌다.

앞으로 전쟁 양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러시아의 대유럽 가스 공급에 대한 계획이 바뀔 것인지, 유럽연합의 가스 공급에 대한 공동 전략이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 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악의 경우 난방 없이 겨울을 나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시민들은 난방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겨울을 날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시베리아 한파용 침낭을 구비하거나 벽난로 설치하기, 나무 장작 때기 등이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탄소중립 정책을 위해 2020년 가동을 중단했던 멜라크의 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해 석탄으로 에너지원을 마련할 계획도 발표했다.
 

<쿠리어> 기사 '1억 유로 이상의 손실을 낸 가뭄' ⓒ kurier.at

 
어차피 가야할 길

한편, 최근 빈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이를 통해 경제 부흥을 도모할 계획을 담은 '그린 이코노미 보고서(Green economy report)'를 발간했다. 기후정상회의와 유럽 그린딜과 궤를 같이 하는 이 계획은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2030년까지 시 전체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3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2050년까지는 이를 70%로 증가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의 목표에 비해 10년 빠른 계획이다. 이를 위한 세부 계획으로는 교통수단 이용에 따른 탄소배출을 2030년까지 50% 줄이고 2050년까지 100%로 만들겠다는 것 등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는 동안 익숙해진 재택근무를 장려해 교통량을 줄이고, 19억여 유로의 예산을 투입해 기차수를 늘리고 전기화해 자동차 이용량과 기차를 이용하는 데 따르는 탄소량을 모두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7월부터 세금제도 개편됐다. 현재 톤당 30유로(4만원)인 탄소세를 2025년까지 톤당 55유로(7만4천원)으로 늘려, 기업의 탄소배출량을 줄이도록 유도한다. 거둬들인 세금은 탄소중립을 위한 사업에 쓰고, 일부는 사는 지역에 따라 주민들에게 보너스 형태로 재분배한다는 계획이다.

시 정부 차원에서는 단계적으로 집에 재생에너지 사용비율을 높이도록 보수, 개조하는 부동산 관련 계획도 추진 중이다.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 이른바 '그린 잡(green job)'을 만들고 경제 효과를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다. 이를 통해 빈에서만 16만여 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166억 유로 이상의 경제효과가 생길 거라는 추산이다.

코로나19 팬데믹 3년이 지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전 세계는 또 다른 어려운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잘 감당해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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